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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칼럼>송전 선생의 극일(克日, over-Japanese)

이 세상상만사(世上萬事)가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가 아니던가??
등록날짜 [ 2017년10월11일 22시40분 ]
소위 말하자면 국민들을 위해 너무도 암담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면서 처음 글을 접할 때의 심경이 지금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벅찬 감격에 피가 끓고 가슴이 청년처럼 뛰어 밤새 잠 못이룬 적이 있었다.

80이 넘으신 한 대선배가 계신다. 호가 송전(松田)이시다. 직역하자면 푸르름으로 가득한 소나무들판이니 그 얼마나 젊음을 구가하시며 살아가시는지를 다들 짐작하시겠다.

지금부터는 사족이 필요없다!! 아래 글을 읽어 보시면 다들 그 뜻과 그 의지에 우리 가슴속에 가득한 긍정적인 국민성을 지금이라도 끄집어 내야만 하지 않겠는가 싶다,
 
지금부터라도 나부터서 개혁하자!!

정말로 바꿔보자.!!
이 세상상만사(世上萬事)가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가 아니던가??


◆ 우리는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한국인 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일본, 하면 핏대를 세운다.
 
불구대천,

같은 하늘아래 함께 살 수 없을만큼
큰 원한을 가진 원수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국권을 강제로 찬탈했으며
우리를 식민지화 했고,
우리말을 못하게 하고 한글을 없애려했으며
조상이 물려준 이름까지 바꾸려고 했다.
온갖수탈로
이땅의 물자를 뺏어갔으며
젊은이들은 총알받이 군인으로,
장년들은 강제노동의 징용으로,
젊은 여자들은 성 노리개로 끌고갔다.
2차대전 말기 물자가 부족해지자
가정집의 놋그릇까지
공출이라는 명분으로 뺏어갔었다.
나는
내 눈으로 그것을 본 세대다.
그들은
차마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없는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1945년 8월 15일에야
이 야만적인 노예생활이 끝난 것이다.
그래서
그날을 광복절 이라고 부른다.
 
식민지(植民地)란,
정치적, 경제적으로 다른나라의 지배를 받아
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한 나라다.
경술국치는,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에 의해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주권을 강제로 빼앗겨
식민지가 된 수치스로운 날이다.
일제가 대한제국에게
그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조약을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것이 그것이며,
직전인 8월 22일,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총감인 데라우찌 마사다께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으며
8월29일 그 내용이 공표됨으로서
대한제국은 국권을 상실했다.
이후 1945년 8월까지,
35년동안
이땅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
민족인 수모와 고난을 겪은 것이다.
 
시인 이상화는 이렇게 썼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우리가 일본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이와같은 아픈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다 알고있는 얘기다.
바둑에 복기(復棋)라는게 있다.
바둑을 둔 후
그 결과를 검토하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그 순서대로 벌여놓는 일이다.
이유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않기 위해
원인을 찾는데 있다.
광복이 된지 7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우리가 왜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었는지
반성한 일이없다.
 
복기를 안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 대해 계속 핏대만 세웠지
식민의 이유를
공부하고 검토한 일이 없다.
나는
초중고, 대학, 대학원까지 다녔지만
식민지의 복기에 대해 배운적이 없다.
일본에 대해
분노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식민지가 되었었는지를 반성하고
학문적으로
검토하는 일도 그것만큼 중요하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을 안 당할수 있다.
특히
이 복기는 초등교육에서 고등교육까지
분명한
커리큘럼과 역사관에 의해 진행돼야 한다.
참으로
알다모를 일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일본의 입장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8월14일에 발표된
아베총리의 ‘종전 70년담화’ 에서는
‘대전에 있어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해서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표명해 왔다’ 고 했으며
‘일본은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인구의 8할을 넘고있으며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아들과 손자,
그 뒤의 자손들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남겨줘서는 안된다‘
고 천명했다.
이미
반성과 사죄는 충분히 했으며
전쟁과 상관이 없는 세대가
계속해서
사과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인륜을 처절하게
짓밟은 위안부 문제는 언급도 없었다.
극단적인 대비의 하나는,
우리에게 안중근은 의사(義士)다.
나라을 위해 그 한몸을 바친 애국자다.
그러나
일본의 입장에서는
한일합병의 주동자이며
1905년
초대 한국총감을 지낸 이또 히로부미를
하르빈역에서 암살한 살인범일 뿐이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근원적인 것이기 때문에 중간이 없다.
영원한 것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도 같은 범주로 보면된다.
일본의 자기입장에 대한 주장은 계속된다.
그들은
‘조선식민지기간’을 통해 미개한 나라 조선을
‘근대화’ 시켰다고 주장한다.
그건
측면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이어
전쟁이 끝난후,
국가건설에 책임이 있는 파트너로서
1954년부터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경제지원을 제공했다면서,
한국의 지하철 1호선 개통,
소양강 댐공사,
그리고
포스코 제철소의 건설을 꼽는다.
대일청구권
자금 5억달러(무상 3억, 유상2억)가운데
1억2천만 달러가 들어간 포스코는
그 엄청난 설비가
일본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동의한 것이며,
소양강 댐 건설비 2900억원중 104억원은
일본이 이자를 받고 빌려준 돈 이었으며
1974년
서울역-청량리역 사이의 지하철 1호선도
건설비 330억원중 150억원은
연리 4%의 해외협력자금 차관이었다.
일본인들의
제품 포장기술은 세계최고다.
지하철 1호선, 소양강 댐, 포스코를 포장하는
기술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가 속게돼 있다.
 
언제나
자기보다 힘센 짐승들의 공겨을 받고있는
꼬마가 신에게 기도했다.
‘왜 모든 짐승들이
저만보면 잡아먹으려고 합니까.’
‘얘야, 난들 어쩌겠니
나도
너를 보면 그렇게 하고싶단다.’
식민지의 시인이었던 타고르가
인도 국민들에게
들려줬다는 유명한 얘기다.
힘이 없으면 공격받는 것이고
최선의
방어책은 강해지는 것이다.
힘이 없으면
자유도 정의도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 한지도 반세기가 되었다.
2014년 4월까지의 계산으로
대일무역적자 누적이 4,944억 달러다.
모두가 우리들이 만들어
수출하는 제품의 중간재들이며
첨단기술부품들 때문이다.
2014년 10월,
노벨물리학상에
일본인교수 3명이 공동선정되자
일본대학과
과학계의 저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은
이날 수상자 3명을 포함,
22명(미국적2명포함)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
그중 물리학상이 10명,
화학상이 7명,
생리의학상이 2명이다.
같은분야에서
우리는
단 한명의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미 언급한대로
나는 대학원까지 다니는 동안
단 한번도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제대로 배운바가 없다.
분노만 들끓고,
그들을
비난하고 매도한다고 해서
알아지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우리도
이제는 좀더 차분히
이 문제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식민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일본보다 크게 약했기 때문이다.

식민지가 될 정도로 약했는지
제대로 알아야
같은 일을 당하지 않을수 있다.
이율곡이 선조에게 올린
장문의 상소문이 만언봉사(萬言封事)다.
그중 한 부분을 읽어보자.
‘이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썪어 무너지고 있는 집과 같습니다.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않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집니다.‘
지금은
영토적 식민지는 의미가 없는시대다.
무역적자 4.944억달러는
아직도
우리가 경제식민상태라는 뜻이다.
 
세계최강인 미공군의 첨단무기들도
일본이 만드는
정밀유도부품이 있어야 제조가가능하다.

일 본은 되는데 우리는 안될까.
이미
그들보다 앞서는 분야도 여러개다.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얘기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도 없다.
메이지대학의
오누마 야스아끼 교수는
오래동안 위안부 할머니들과
사할린동포들을 돕고있는 친한파 교수다.
그는
얼마전 아사히신문 기고를 통해
‘일본도 잘못했지만
한국도 피해의식에 얽매여있다’ 고 지적했다.
새겨들어야 할 얘기다.
 
한편 지난 8월12일
일본의 전총리인 하또야마 유끼오는
서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방문,
헌화한뒤
무릎을 꿇고 사죄의 뜻을 전했다.
그와 아베총리의 입장과 태도가
이렇게
다른 것이 일본의 다양성이다.
일본 안에도 양심이 있으며
그들이 조선에 저지른
만행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한가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인구8할에 이르는 전후세대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교과서 교육을 통해
과거일본-일제가
조선에 대해 저지른 야만적 폭력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지금의 이웃나라
한국이
왜 자꾸 사죄를 요구하는지
그 뜻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미
간극은 그만큼 벌어져 있다.
 
지난 7월 30일,
일본에서 귀국한 박근영씨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90도로 머리숙여 사죄한
히로히토 천황을 포함해
일본이 4번이나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한국정부가 일본에 과거사 사과를
계속요구 하는 것은 부당하다.
또 한국에서
일본정치인들의 신사참배를 지적하는 것은
‘내정간섭 이라‘ 고 했으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국이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였으며
유무상 지원을 받은바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보살펴 드려야 한다‘ 고 했다.
표현의
직접성과 투박함 때문에
비난의
집중포화를 맞은게 사실이다.
그럴만 했다.
그러나,
우리도 이제는
비난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하며
좀더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할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분위기로 변해야 한다.
모두가
똑같은 방법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하나의 독재다.
 
한쪽으로만 몰고가는
언론에도 큰 책임이 있다.
일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그렇다.
지정학적 으로나 국제정세에서
일본을
우리편에 서게해야할
정치적 필요성 때문이다.
특히
통일을 위해서는
강력한 발언권을 가지고있는
주변4개구중 하나가 아닌가.
그래서
실리를 취하는 지혜가 필요해진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는다’ 는
이스라엘을 참고해야 한다.
이제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열 살난 아이가
아버지를 졸라 미국여행길에 동행했다.
아버지가 놀란 것은,
미국에 대한
아들의 반응이 시큰둥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만 못하다는 것이다.
공항시설도 한국이 더 좋고,
뉴욕의 멘하턴은 거리가 지저분하고
도로도 더 나쁘다고 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쳐다보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9세기말
한국이 미국과 관계를 가진이후
어려서부터
미국을 한국만 못하다고
말하는 신세대가 나타난 것이다.
친미도, 반미도, 혐미도, 용미도 아닌
등미(等美)세대가 나타난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똑같이
일본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등일(等日) 이되어야 한다.
생각도 없는 상대에게
계속
사과하라고 외치는 것은
어떤 면에선 열등감일수도 있다.
일본은
절대로 사과할 수 있는 민족이 아니다.
그점을 똑바로 알아야 된다.
‘국화와 칼’ 인 것이다.
우리가 강해지고,
현명해지고,
유연해져야 풀리는 문제다.
 
햇볕을 받으면 곰팡이는 저절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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