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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길 위의 호남 선비 - 시조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 (12)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이이첨을 탄핵하는 소 올려 파란 일으킨 1617년 1월9일 함경도 경원(慶源)으로 유배 길( 31세)
등록날짜 [ 2018년05월28일 18시12분 ]

1616년 12월21일에 예조판서 이이첨을 탄핵하는 소를 올려 정국에 파란을 일으킨 윤선도는 1617년 1월9일에 함경도 경원(慶源)으로 유배 길을 떠났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경원은 조선 최북단 두만강 변에 있는 고을로, 동쪽은 경흥(慶興), 남쪽은 바다, 서쪽은 온성(穩城), 북쪽은 두만강과 인접해 있고, 서울과의 거리는 2천 1백 44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0권 / 함경도)

이곳은 여진족과 대치하고 있는 접경으로 세종 때 김종서가 개척한 육진 중 하나였고 또한 1583년에 이순신이 근무한 건원보도 경원에 있다. 1) 


의금부 도사는 경원으로 속히 가고자 윤선도의 걸음을 재촉했다. 중간에 윤선도는 교통의 요충지인 홍원에 들렀다. 홍원(洪原)은 함흥 근처에 있는 고을로 지금은 함경남도 홍원군인데, 서울과의 거리는 9백 75리이다.

홍원에서 윤선도는 ‘길에서 만난 이에게 장난삼아 주다(戱贈路傍人)’란 시 한수를 짓는다. 


내 하는 일이 진실로 때가 아닌 것을  
그대는 아는 데 나는 알지 못했노라.
글을 읽었지만 너 보다 못하니
가히 타고난 천치라고 이를 만하구나.

吾事固非時
汝知吾不知
讀書不及汝
可謂天生癡   

그런데 윤선도는 이 시에 주를 달았다.

(원주) 이하는 경원에 유배 갔을 때 지은 것이다.  노방인(路傍人)은 홍원(洪原)의 기녀 조생(趙生)이다. 정사 (1617년) 

이 시에서 ‘나는 윤선도이고 너는 기생 조생’이다.

관북(關北)의 교통 요충지 홍원에서  기생 조생이  귀양객 윤선도를 눈여겨보고 직접 빚은 술을 가지고 와서 정을 나누고 전송하였다.

그러면서 조생은 의리만을 생각하고 적절치 못한 상소를 올려서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니냐고 윤선도를 질책했다. 대의는 맞지만 때를 잘못 선택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윤선도는 그녀의 말을 수긍하면서 나야말로 천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시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1660년(현종1년)에  윤선도는 예송논쟁에서 서인에게 패배하여 나이 74세에 함경도 삼수로 귀양을 간다. 2)

이 때 고산은 43년 전에 만난 홍원기생 조생의 두 딸을 만나게 된다.
윤선도는 옛날을 생각하며 시를 짓는다.


“다시 이전의 운을 써서 홍헌의 예순과 승례 두 낭자에게 지어 주다.”
 (復用前韻 , 贈洪獻禮勝二娘)

다시 와도 그 당시와 같은 감회인데 
이 심사를 알아줄 이 누가 있으리오.
낭자는 홀연히 세상을 떠났으니 
나의 어리석음을 논할 이도 없구나.

重來如一時
心事有誰知
娘子忽焉沒
無人論我癡

이 시를 쓰면서 윤선도는 “예순(禮順)과 승례(勝禮), 두 기녀는 조생(趙生)의 딸이다. 이때 조생은 이미 죽은 뒤였다. 뒤에 들으니, 승례는 조생의 질녀인데 데려다 길러 딸로 삼았다” 는  내용도 함께 적었다. 

한편 1660년 예송 논쟁으로 유배 사는 윤선도를 옹호한 조경(趙絅 1586∼1669)은 조생을 의기(義妓)라고 평했다. 「홍헌의 의기, 조생의 시첩 뒤에 제하다〔題洪獻義妓趙生帖後〕」라는 시, 서문에 나온다.

조경은 관북에 귀양 온 수많은 사람들 중에 기생 조생이 특별히 후대하며 전송한 사람은 백사 이항복과 고산 윤선도뿐이라고 적었다. 

백사 이항복(1556∽1618)은 윤선도가 경원으로 귀양 간 1년 후인 1618년에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여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 갔다. 철령을 넘으면서 그는 이런 시를 읊었다.    

철령 높은 재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3)
고신원루(孤臣寃淚)를 비삼아 띄워다가
님 계신 뿌려본들 어떠하리.

1) 육진(六鎭)은 세종 때 동북방면의 여진족에 대비해 함길도 절제사 김종서가  개척한 두만강 하류 남안에 설치한 국방상의 요충지, 종성(鐘城)·온성(穩城)·회령(會寧)·경원(慶源)·경흥(慶興)·부령(富寧)을 말한다.

2) 1660년의 기해예송은 효종이 죽자 인조의 계비 조대비가 상복을 얼마동안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서인은 1년 복을, 남인은 3년 복을 주장하였는데 서인이 이겼다. 이로 인해 남인 윤선도는 함경도 삼수로 유배를 갔다. 

3) 한편 “자고 가는 저 구름아”는 월탄 박종화(1901∼1981)의 대하 역사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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