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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박철곤 전)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自敍傳 想念

"머슴이나 보내지 공부는 무슨"자서전..."어려운 일은 있어도 안 되는 일은 없다"
등록날짜 [ 2019년02월07일 11시42분 ]

박철곤 전)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의 자서전이야기

 

"어려운 일은 있어도 안 되는 일은 없다"고 박철곤 저서 "머슴이나 보내지 공부는 무슨"이라는 자서전에서 가장 눈에 띈 글귀는 결코 갑남을녀의 삶에서도 잊혀지지 않을 진취적 기상으로 기억한다.

 

"어려운 일은 있어도 안 되는 일은 없다"라는 글 자체가 압도해 오는 느낌은 도전적이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센 결기가 느껴지고 "머슴이나 보내지 공부는 무슨"이라는 책제목만 접하더라도 흔히 동물의 세계에서 그러하듯 낭떠러지에서 사자가 자기새끼들을 절벽으로 데리고 가 밀어버리는 상황을 바라보는듯해 섬뜩해질 정도로 공포를 몰고 오는 제목이기도하다.

 

이렇게 4~5년 만에 "머슴이나 보내지 공부는 무슨" 著者(저자)를 만나러 가기위해 지난 달 128() 한양 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박철곤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장을 504관 사회과학관 2층 연구실로 들어섰다.

 

이미 수년전에 面識(면식)이 있는 박철곤 소장을 필자가 知人(지인)의 소개를 받고 찾아 나섰음에도 본 글에서 末尾(말미)에도 언급하겠지만 나름의 기대감으로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성 명 : 박철곤

직 위 : 한양대학교 갈등문제연구소장

한양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특훈교수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출 생 : 전라북도 진안

 

常套(상투)적인 인사이후 박철곤소장은 著書(저서)인 첫 장에다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어려운 일은 있어도 안 되는 일은 없다" 글귀를 말없이 적어주며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어갔다.

 

이 책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여느 재미있는 이야기책처럼 쉼 없이 끝까지 讀破(독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족집게 같은 박소장의 추정적인 말처럼 성급하게 인정하자면 사실이 그랬다.

 

그냥 페이지가 넘어갔다.
책을 보면서 당시 시대상과 내 자신과 주변을 反芻(반추)하면서 간간히 떠올려 보기도 하였다.

 

이 땅에 태어나 그 누군들 스토리가 없고 한 권의 소설이 되지않으리오 마는 "머슴이나 보내지 공부는 무슨" 자서전은 지난한 세월 속에 가난과 역경의 혹독했던 한 해 한 해를 누에 펼쳐지는 듯 그려냈으며 오로지 가장 잘할 수 있는 학업에 대한 열정이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승화되어 하나의 집념으로 꽃피우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晩學(만학)의 나이에 쉽지 않은 과정으로 두 번의 좌절이 찾아왔음에도 不屈(불굴)의 투지로 25회 행정고시에 당당하게 합격하였고, 공직에 투신하여서는 틀에 짜여진 공무원의 생활에서 逸脫(일탈)을 꿈꾸면서까지 번득이는 창의력의 사고로 틀에 얽매이는 업무를 벗어나 진취적으로 이끌어가고 그 누구보다도 가장 앞장서서 수많은 진기록을 세워보였다는 게 놀랄만했다.

 

특히 그가 총리실 재임 시절, 사스(SARS) 퇴치와 통합방송법 제정, 교육개혁 법안 처리 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정책 사안들을 특유의 그만의 감각과 조정술자다운 역량으로 풀어내며, '국무총리실 해결사'로까지 불리게 된 사연과 24년 동안 25명의 총리를 대한 것은 그의 탁월한 행정전문가 감각 때문이었다.

 

, 공무원조직이 上命下服(상명하복)의 위치에서 上司(상사)의 눈치를 어쩔 수없이 보는 조직의 생리이지만 청와대 수석과의 면담에서 담판을 짓는 모습은 실로 혀를 내둘릴 정도로 칭찬을 더할 수 있는 건 그가 행정전문가이면서 達辯(달변)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후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으로 재직 중에도 부하직원들과 隔意(격의)없는 疏通(소통)으로 참신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마무리해 나가는 모습은 공직자들이 언제 어디에서든지 꼭 배워야 하는 適材適所(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창시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박철곤소장은 이렇게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돈과 권력보다는 공직자의 명예를 위해 25명의 총리를 모시면서 아낌없이 국가에 헌신했기에 저서인 자서전에서도 다큐멘터리로 독자들에게 심금을 울리듯 가슴에 잔잔하게 파도일 듯 들려줄 수 있는 것이며 공직자로서 처신한 당당한 모습의 멋지고 아름다운 광경이 한 눈에 그려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처하고 만다.

 

여기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추어 더 흥미를 더하자면 1968년에 필자의 큰누이가 전북 진안군 마령면으로 시집을 갔었다.

당시에는 직행버스가 드물고 완행버스로 영광까지 나가고 영광에서 전주로 전주에서 진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다보면 꼭 들리는 곳이 진안군의 관문인 관촌면이다.

 

기억하건테 관촌면은 진안군 관내에서는 제법 큰 면소재지이다.

거기를 거쳐 성수면과 마령면 그 다음 옆 마을이 백운면이다.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하루 종일 걸렸다. 아침 일찍 출발해도 저녁에야 도착되는 곳이 마령면인데 거기서 더 들어가 옆마을이 박소장이 출생했다는 그 유명한 백운면이니 더 말해 뭐하겠는가?!

 

지금도 가끔 유년시절 큰매부집을 찾아 헤매고 다녔던 기억들이 꿈속에 나타난다. 박소장의 자서전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주변 환경이 그러져 있어 새삼 놀라울 정도로 반가우면서도 기억하기조차 싫은 유년시절의 기억이 다가와 흠짓 놀랐으며 책에 소개된 일부 내용들이 마치 내 자신과도 간접적으로나마 연관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당시 鄙陋(비루)했던 생활해 온 모습과 시대상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져 더욱 더 관심을 갖고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가 있었다.

 

여기서 한 발짝만 옆길로 가 보자!!

치욕적인 일제의 만행은 우리민족과 뗄레야 뗄 수가 없는 惡緣(악연)임에도 그들은 지금까지도 大悟覺醒(대오각성)하지 못하고 악순환의 연결고리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아니 놀랠 수가 없다.

 

일본인들은 크게 말하자면 백제민족의 후예라고 까지 말하는데 그들의 잔혹성은 정말 하느님, 부처, 마호메트가 저 위에서 바라보고 있다면 이럴 순 없는 것이다.

 

이른바 노에전쟁이라고도 말하는 7년의 임진왜란 이후 이순신장군에게 대패한 보복성 짙은 1597년 정유재란을 일으켜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은 원흉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체 씻기도 전에 박소장의 아버지는 일제강제징용의 수많은 강제징용피해자중 望鄕(망향)의 일념으로 성공해 귀국하였으나 이미 몸은 망가진 체 귀국하여 잇따른 사업 실패를 맛보았다.
<다음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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