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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30회

김세곤 (칼럼니스트)대간 이수공과 최부, 대신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다.
등록날짜 [ 2019년02월22일 09시20분 ]

연산군 재위 3년(1497년) 1월16일에 천둥과 번개가 쳤다. 이러자 1월 25일에 사헌부 장령 이수공이 경연에서 아뢰었다.           
      

"16일 밤에 뇌성하는 변이 있었는데, 전하께서 하교하시길 재변이 아니라고 하여 신등은 깜짝 놀랐습니다. ... 윤씨는 폐비(廢妃)인데도 사당을 세우고 신주를 모셨으며, ... 삼공(三公)은 음양을 섭리하고 그 아래인 찬성(贊成)은 교화를 넓혀야 하는데 지금 모두 사람답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삼정승과 좌 · 우찬성이 ‘사람답지 않다’는 이수공의 표현은 지나치게 직설적이며 신랄했다. 그  파장은 엄청 컸다. 당장 좌의정 어세겸·우의정 한치형, 좌찬성 이극돈 · 우찬성 성준이 사직을 청했다. 연산군은 "대간의 말은 나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간은 국문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직은 감행하지 않은 것이다. 사면하지 말라." 고 하였다.

1월 26일에는 영의정 신승선·좌의정 어세겸·우의정 한치형이 사직하였다.


연산군은 사직을 말리면서 전교했다.

"대간이 삼정승을 사람답지 않다고 했으므로, 나는 매우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삼정승은 나와 함께 정치를 하는 사람인데 삼정승을 사람답지 않다고 하니, 이것은 나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 지금 경들은 원로 대신인대, 내가 어찌 자신을 책망하지 않고 경들을 문책하여 사직시키겠는가.”



이윽고 1월26일에 예조판서 박안성· 병조판서 노공필· 형조판서 박건·공조판서 신준· 호조판서 이세좌도  사직을 청했으나 들어 주지 않았다.
1월27일에도 좌의정 어세겸과 우의정 한치형, 좌찬성 이극돈 · 우찬성 성준· 좌참찬 유지가 또 사직을 청했다. 

연산군은 어필로 소장의 끝에 쓰기를,
"여러 번 사면하는 소장을 올리니, 이것은 그 인군을 가볍게 보고 대간을 두려워하는 것이니, 대신의 체모가 아니다. 번거롭게 굳이 사양하지 말고 속히 그 직책을 이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그런데 2월14일에 사간원 사간(종3품) 최부가 그때까지 대신을 겨냥해 제기한 탄핵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구체적이며 직설적이라고 평가할 만한 내용이 담긴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연산군일기 1497년 2월14일 3번째 기사) 1)    

사간 최부의 상소를 읽어보자. 

"근래에 천재가 자주 일어나고 도적이 횡행하며 풍속이 날마다 박하여져 심지어는 대낮에 큰 도성 안 가운데서 행인을 쳐 죽이는 자까지 있으니, 나라에 기강과 법도가 있다면 그렇겠습니까. 그것은 전하와 같은 인군을 만났어도 좌우에서 도와 인도하는 자가 마땅한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중략) 

지금 삼공의 우두머리 영의정 신승선은 여자처럼 나약해 나라의 큰일을 당하여도 가타부타 하는 일이 없으며, 게다가 병이 심하여  자리를 비우고 집에 있은 지 수년이 지났습니다. 이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는 막중한 자리가, 죽 쑤어 중이나 먹이고 병을 보양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신승선 다음은 좌의정 어세겸인데 재주와 학문은 칭송할 만해도 선왕 시절부터 근무에 태만하여 오후에야 출근하는 당상관으로 불렸습니다. 전하께서 그를 정승으로  발탁하셨지만, 한 번이라도 훌륭한 계획을 아뢰거나 한 번이라도 선한 정사를 협찬하였다는 말은 아직도 들을 수 없으며, 날마다 술 마시는 것으로 일을 삼으니, 어찌 왕실을 생각하는 대신이겠습니까.

또 우의정 한치형은 자질은 아름답지만 배우지 못한 자입니다. 정승이 된 후 의정부에서 건의한 것으로는, 내원(內苑)에 담을 쌓는 것을 정지시키고, 새 묘소에 사대석(沙臺石) 설치하는 것을 정지시킨 두 가지 일뿐입니다. 이 두 가지 일도 반드시 한치형을 기다려서야만 되었으니, 전일 삼공이 녹만 축내고 있던 죄를 알 수 있습니다. (후략)”  2)

이러자 우의정 한치형이 즉시 사직을 청하였고, 2월16일에는 이조판서 유순, 이조 참판 안침, 호조 판서 이세좌가 사직을 청했다. 하지만 연산군은 들어 주지 않았다. 2월17일에는 승지 강귀손이 사직을 청하고, 우의정 한치형이 거듭 사직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2월19일에는 좌의정 어세겸, 이조의 당상(堂上) 유순·안침·김경조가 사직을 아뢰었으나 들어 주지 않았다.

유순·안침이 굳이 사퇴하려 하니, 연산군은 전교했다. 
"만일 대간의 말 때문에 육경(六卿)을 다 바꾼다면 이것은 권세가 대간에게 있는 것이다."

이렇듯 연산군은 자신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사사건건 문제 삼은 대간에 대하여 화가 치밀었다. 이는 1498년에 무오사화가 일어나는 한 가지 이유가 되었다.  3)

사진 30-1 무양서원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최부를 모신 서원이다.) 



1) 최부(1454∽1506)는 1498년 무오사화 때 유배 가서, 1504년 갑자사화로 참형을 당했다. 연산군일기 1504년 10월25일자에는 최부에 대한 사관의 평가가 실려 있다.

“최부는 공렴(公廉) 정직하고 경서와 역사에 능통하여 문사(文詞)가 풍부하였고, 간관(諫官)이 되어서는 아는 일을 말하지 아니함이 없어 회피하는 바가 없었다.”

2) 이외에도 최부는 5가지 사항을 상소했다.

첫째, 심술(心術)을 바로 하는 것입니다. ...
지금 전하께서 즉위한 이래로 경연에 납신 날을 손가락을 꼽아 헤일 정도이니, 성학(聖學)이 근면하신지 신 등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성학을 좇아 행하고 간하는 말을 받아 들여, 그 마음을 수양하되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지 마소서.



둘째, 사소한 오락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원컨대, 눈앞의 노리개를 다 철거하시어 덕을 끝까지 보존하도록 하소서.

셋째, 사면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가볍게 사면하여 용서하지 마시고, 강상죄 같은 것은 엄히 다스리소서.

넷째, 내치(內治)를 엄격히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내치(內治)를 엄격히 하여 내알(內謁)을 방지하시며, 환관이  아내를 맞아들이는 것을 허락하지 마시고 교만 · 방종 하는 조짐을 막으소서.]

다섯째, 쓰고 버림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사람을 쓸 때에 그 사람이 어진 가 그렇지 않은가, 사특한 가 바른가를 살피어 쓰거나 버리십시오.
3) 김범 지음,  연산군  - 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  글항아리,  2010,
  p 11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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