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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도쿄기행 5 :메이지 신궁에서(6) 일본 화폐의 인물들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일본의 메이지 시대 부국강병과 개화문명 꽃피워
등록날짜 [ 2019년03월11일 10시03분 ]
일본인들은 새해 연휴에 신사나 절에 가서 참배하는 ‘하츠모우데(初詣)’라는 풍습이 있다지만, 300만 명이 메이지 신궁을 찾는 것은 열광에 가깝다. 메이지 시대는 일본이 스스로 ‘세계열강 대열에 오른 휘황찬란한 시대’로 평가한다.


특히 도쿄 사람들은 메이지 천황(1852~1912)을 사랑한다. 1) 메이지는 도쿄를 일본 수도로 정하고, 에도성을 황거(皇居)로 하여 1912년 7월30일 서거 때 까지 도쿄에서 살았다. 1868년 7월에 메이지는 에도를 서쪽의 교토(京都)에 대응하는 도쿄(東京 : 동쪽의 서울)로 개칭하고 9월20일에 교토에서 도쿄로 출발했다.


2,300명의 수행원이 천황을 따랐다.
한 달 간의 행차에는 천황을 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제 천황은 황궁에만 있는 상징적 존재가 아니라 백성을 만난 통치자였다. 1869년 3월에 천황은 다시 교토에서 도쿄로 행차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는 교토에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상 천도였다. 이러자 정부기관도 도쿄로 이전했다.


한편 일본인들이 메이지 시대(1868-1912)를 동경한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일본화폐이다.
일본은 1천 엔 지폐에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1876∽1928), 5천 엔은 여류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1872∽1896), 1만 엔은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의 초상이 있다. 모두 메이지 시대의 인물이다. 2)


1천 엔 화폐 인물은 장애를 극복한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이다. 그는 노벨화학상 후보로 여러 번 올랐는데 아프리카에서 황열병을 연구하다가 죽었다. 폐결핵으로 24세에 요절한 5천 엔의 인물은 여류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의 필명 이치요(一葉 한 장의 잎사귀)는 달마대사가 양자강을 잎사귀 한 장을 타고 건넜다는 고사에서 따 왔다. 그녀는 자신을 세상 풍파에 떠다니는 잎사귀 한 장으로 비유했는데 대표작은 ‘키재기’이다.

1만엔은 개화론자이자 게이오 대학 설립자 후쿠자와 유키치이다.
그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책에 대항하여 일본의 독립을 유지하려면, 하루빨리 서구화를 이룩하여 열강의 반열에 들어서는 길밖에 없다고 역설하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서구화를 달성한 다음에는 서구 열강과 똑같은 방법으로 청과 조선을 취급하면 된다는 「탈아론 (脫亞論)」을 주장했다. 유키치의 「친구론」은 한 술 더 뜬다.


그는 좋은 친구를 사귈 것과 나쁜 친구를 배격할 것을 주장했는데, 영국과 미국을 친구로 하고, 청나라와 조선을 배격하라고 했다. 그랬다. 일본사회는 서구문명 우월관이 지배했고, 동양문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겼다.


그러면 여기에서 일본 화폐의 역사를 살펴보자.
일본은 1945년 패전 후에는 모든 화폐에 백제로부터 불교를 유입한 쇼토쿠 태자(574-622)의 초상이 있었다. 그러다가 1963년부터는 일본 초대 총리이자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1841-1909)가 1천 엔의 화폐인물이 되었다.


1984년에 일본은 1천엔은 영국 유학을 하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6) 소설로 스타가 된 나쓰메 소세키(1867∽1916), 5천엔은 유엔 사무차장을 역임한 니토베 이나조(1862∽1933), 1만엔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초상이 들어갔다.


2004년에는 1천엔은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로, 5천엔은 여류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로 인물이 교체되었고, 1만엔권 후쿠자와 유키치는 계속 유지되었다.

사진 1 1만 엔 지폐

사진 2 5천 엔 지폐

사진 3 1천 엔 지폐

한마디로 메이지 시대는 부국강병과 개화문명 그리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대만과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시대였다. 1) 메이지 천황의 이름은 무쓰히토이고 연호가 메이지이다.


그는 1868년 10월에 연호를 메이지(明治)로 정했다. 중국의 『역경』에 나오는 ‘성인남면청천하 향명이치(聖人南面聽天下 向明而治 남쪽을 향해 천하의 의견을 들어서, 밝은 것을 향하여 다스린다.)’ 중 ‘향명이치’의 구절 중 ‘명치(明治)’를 인용한 것이다. 2) 우리나라 지폐의 인물은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 등 모두 조선시대 전기(前期)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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