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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36회

김세곤 (칼럼니스트)이심원, 현석규 사건은 임사홍이 사주한 것이라고 아뢰다.
등록날짜 [ 2019년04월09일 09시09분 ]
1478년(성종 9년) 4월29일에 종친 이심원은 임사홍의 비리에 대하여 계속 아뢰었다. "전하께서 한 사람의 간신을 보호하고자 하여 스물 한 명의 군자를 내치시니, 이는 소인이 더욱 꺼리는 바가 없게 되는 소이(所以)입니다.

신이 사관(史官) 표연말에게서 듣건대, 이전의 현석규의 일은 모두 임사홍이 몰래 사주(使嗾)한 바로서, 그때 한 대간(臺諫)은 바로 임사홍의 심복이었습니다.


우승지 임사홍은 도승지 현석규를 사사로이 살펴서 대간에게 전했으니, 대간들이 임사홍의 술책에 빠져 그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폭탄발언이었다.
 
‘이전의 현석규 일’은 임사홍이 몰래 사주한 것이라니. ‘이전의 현석규 일’이란 현석규가 1477년 (성종 8년) 7월에 도승지로 있을 때 대간들의 탄핵을 받은 일이었다.

사진 1

창덕궁 궁궐도 사진 2

창덕궁 선정전(궁궐의 사무공간)과 희정당 사이 (앞뜰에는 예전에 승정원등 관청이 있었다.) 그 사연은 조금 복잡하다. 1477년 7월8일에 동부승지 홍귀달이 도승지가 어전에 없는 가운데 성종에게 조식의 사건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심(李諶)의 처 조씨(趙氏)가 과부로 살았는데, 그녀의 오라비 조식(趙軾)과 조식의 매부(妹夫)인 송호(宋瑚)는 의지할 데 그녀를 돌봐주기는 커녕 노비를 빼앗아 차지하는 등 재산을 가로채 왔다.

그런데 전(前) 칠원현감 김주(金澍)가 중매를 통해 조씨와 결혼하기로 날을 잡았다. 조식과 송호는 김주가 조씨를 강간했다고 고발했다. 하지만 의금부에서 조사를 한 결과 조식의 무고(誣告)가 드러났고, 조식 등은 처벌을 받게 되었다.

이에 조식과 송호는 죄를 면하고자 송호의 친척인 좌부승지 한한(韓僩)에게 로비를 했다. 송호의 부탁을 받은 한한은 도승지 현석규를 제외한 승지들을 설득했다.

그러면 동부승지 홍귀달이 성종에게 아뢴 내용을 살펴보자. (성종실록 1477년 7월 8일 2번 째 기사) "신 등은 육조(六曹)의 일을 분장(分掌)하였으나, 생각한 것이 있으면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의금부에서 조식·송호를 형문(刑問)하기를 청하였습니다마는, 신이 생각하기에는 조식 등이 김주가 과부가 된 누이 집에 와서 유숙한 것을 듣고 강간으로 고발하였으니 비록 그 누이와 불화하였다 하더라도 이런 일이 소문나는 데 미치었으니, 어찌 경악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무고하였다고 형문하면 이치에 안 맞습니다. 이것은 홀로 신(臣)만의 말이 아니고, 실로 좌승지 이하가 한 가지로 의논하여 아뢰는 것입니다." 동부승지 홍귀달은 도승지 현석규이 어전에 없는 상태에서 이런 보고를 한 것이다.

더구나 좌승지 이하 승지들이 담합을 하였다. 다음날인 7월9일에 성종은 회의에서 "홍귀달이 아뢴 바는 그 뜻을 알지 못하겠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좌승지 이극기 등이 대답했다. "신 등이 김주를 추국한 일을 보건대,

이는 강간이 아니고 화간(和奸)입니다. 그러나 조식은 중매를 통해 예(禮)를 갖추고 방문한 것을 알지 못하고, 갑자기 그 집에 투숙하였다는 것만을 듣고 강간이라 고발 한 것입니다. 이것이 무고죄가 되었으니, 실로 미안(未安)하게 되었습니다."

이러자 도승지 현석규가 소매를 걷어 올리며 눈을 부릅뜨고서 아뢰었다. "승정원의 풍기[風]는 예전에도 이러지 않았습니다. 대저 도승지는 육방(六房)의 일을 총괄하여 다스리고, 다른 승지는 일방(一房)의 일만을 총괄하거늘, 도승지가 있는데도 승지가 서열을 뛰어넘어서 이런 말을 하니, 이것은 심히 옳지 못합니다.

1) 김주는 중매한 예(禮)가 있고, 날을 정한 기약도 있으며, 또 조씨의 비(婢)가 그 사이를 왕래하였으니 어찌 강간이겠습니까? 이것이 강간이 아니라고 하면, 조식 등이 무고로써 연좌됨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송호는 좌부승지 한한의 처 동생입니다.
송호의 아버지 송익손이 신(臣)을 보고 말하기를, ‘김주는 실로 강간한 것이거늘, 어찌 화간(和奸)으로 논(論)하는가?’ 하였으니, 신의 뜻은 이 일은 의심할 만합니다. 이제 승지가 서열을 뛰어 넘어서 말을 함은 진실로 신이 사람의 뜻을 알지 못한 까닭이오니, 청컨대 형방(刑房)을 사임하게 하소서." 하였다.

이러자 7월10일에 성종은 도승지 현석규에게 전교하기를, "홍귀달의 논계(論啓)는 그르다. 개의[介懷]하지 말라." 하였다. 이어서 성종은 사헌부에 전지했다.
 
"송익손이 그 아들 송호의 옥사(獄詞)를 가지고 도승지 현석규에게 청탁하였으니, 그를 추국(推鞫)하고 아뢰라." 이어서 의금부에 전지했다. "김주(金澍)는 전에 칠원현감이 되어, 관중(官中)의 미포(米布)와 잡물(雜物)을 여러 사람에게 증여하여서 그 때에 도망한 적이 있고, 이제 피수(被囚)되었으니, 아울러 추국하여 아뢰라." 7월12일에 성종은 경연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니, 대사간 손비장이 아뢰었다.
"근일에 동부승지 홍귀달이, 조식을 형문(刑問)함은 불가한 일이라 하여 관아를 무시하고 계달(啓達)하였고, 송익손은 몸소 현석규의 집에 왕래하며 청탁하였으니, 어찌 홍귀달이 그 청을 불청(不聽)한 것을 알겠습니까? 한한은 송호의 처 동생입니다. 한 집안의 일이니, 어찌 정상을 알지 못하였겠습니까? 청컨대 국문하게 하소서." 이러자 한한이 아뢰었다.
 
"송호는 신의 처제(妻弟)이오나, 신은 진실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신이 비록 이를 청하였더라도 여러 승지가 또한 신의 말을 듣겠습니까?" 장령 이경동이 아뢰었다.
 
"홍귀달은 현석규가 나옴을 엿보고 아뢰었으니, 말[言]은 비록 옳더라도 행동은 옳지 못합니다.” 손비장은 말했다. "승정원은 내상(內相) 한림학사(翰林學士)의 미칭(美稱)이라고 호칭하거늘, 이제 동료들이 불화하니, 사람들이 듣기에 민망합니다."

이러자 성종이 전교했다.
"사헌부는 이들을 국문(鞫問)하도록 하라." 이어서 성종은 사헌부에 전지(傳旨)하였다. "조식 등을 형문(刑問)하여 사실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거늘, 좌승지 이극기, 우승지 임사홍, 좌부승지 한한, 우부승지 손순효, 동부승지 홍귀달은 조식 등을 엄호(掩護)하려고 도승지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멋대로 아뢰었으니, 고신(栲訊)은 행하지 말고 추국(推鞫)하여 아뢰라." 성종은 역시 성군이다.

자기를 보필한 승정원 승지들을 추국하라고 어명을 내리니. 1) 1477년 7월 17일에 대사간 손비장은 도승지 현석규가 동부승지 홍귀달에게 욕했다고 현석규를 탄핵했다. “도승지 현석규가 갑자기 노(怒)하여 소매를 걷어 올리고 홍귀달의 이름을 불러, 너[爾]라고 일컬어 욕하였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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