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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도쿄기행 10 : 메이지 신궁에서(11)-메이지 헌법(2)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대일본제국 만세일계(萬歲一系) 천황 통치, ‘살아있는 신’!!
등록날짜 [ 2019년05월07일 14시44분 ]
1889년 2월11일 기원절(紀元節)에 메이지 천황은 ‘대일본제국헌법(흔히 메이지 헌법)’을 발포했다.

1) 천황은 발포식장에서 내각 총리대신 구로다 기요타카에게 헌법을 하사했는데 헌법은 천황이 국민에게 내리는 선물이었다. 메이지 헌법은 7장 76조로 구성되었다. 헌법의 기본원칙은 천황주권이었으며, 신성불가침한 천황에게 절대적인 권한이 집중되었다.

천황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는 헌법 조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조 :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歲一系)의 천황이 통치한다. 만세일계(萬歲一系). 이는 태양신의 후손 진무천황이 BC 660년부터 일본을 다스린 이후 천황의 혈통이 한 번도 단절된 적 없이 2천년년 이상 이어져 일본을 통치해 왔다는 뜻이다.

따라서 122대 메이지 천황(1867∽1912)을 절대적인 존재로 부각시키고 왕권신수설을 강조한다. 한편 금년 5월1일에 즉위한 나루히토(德仁) 천황은 126대로서 메이지 천황의 4대손이다. 제2조: 황위는 황실전범(皇室典範)이 정하는 바에 따라 황실의 남자 자손이 계승한다.

메이지 정부는 헌법 공포와 동시에 황실과 황족에 대해서는 황실의 제도와 구성 등을 명시한 ‘황실전범(皇室典範)’을 제정했다. 그런데 헌법 2조는 천황은 남자만이 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런 남성 우위 사상은 나루히토 천황 즉위식에서도 나타났다.

부인 마사코는 즉위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NYT)는 4월29일 “즉위식 여성 참석 불허는 일본 황실뿐 아니라 일본 사회에서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제3조 천황은 신성하여 침범할 수 없다. 이는 천황이 ‘살아있는 신’, 신도(神道)의 제사장임을 천명하고 있다.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는 일본 열도를 평정하고 손자인 니니기에게 청동거울과 검, 곡옥(曲玉) 즉 ‘3종 신기(神器)'를 주었다.

니니기의 직계후손인 초대 천황 진무천황은 3종 신기를 받았고, 지금도 천황의 상징이 되었다. 5월1일에 즉위한 나루히토 천황도 '3종 신기'를 물려받음으로써 왕권 계승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수천 년 간 존재했다는 '3종 신기'는 단 한 번도 실물이 공개된 적이 없다.

한편 일본인에게 천황은 지금도 신성불가침한 존재이다. 일본인의 혐한(嫌韓) 감정이 촉발된 것도 한국에서 천황의 사과 요구가 나왔을 때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 질서정연하면서도 속으로는 복잡하고 이상한 나라일본과 한국이 잘 지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4조 천황은 국가의 원수이며 통치권을 총괄하며, 이 헌법의 조항에 따라 이를 행한다. 재5조 천황은 제국의회의 협찬을 거쳐 입법권을 행사한다.

제7조 천황은 제국의회를 소집하고, 그 개회와 폐회, 정회 및 중의원의 해산을 명할 수 있다. 제11조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한다. 제13조 천황은 전쟁을 선포하고 강화를 하며, 여러 조약을 체결한다.

제14조 천황은 계엄을 선포한다. 제57조 사법권은 천황의 이름으로 법률에 따라 재판소가 이를 정한다. 프러시아 헌법을 모델로 한 메이지 헌법은 천황에게 국가원수, 외교권, 계엄권, 의회의 개폐와 해산권, 사법권 그리고 육해군 통수권이라는 주요 권능을 부여했다.

서양식 군복에 칼을 차고 수염을 기른 메이지 천황의 초상화가 전국에 유포되었고, 교육칙어(1890년)와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로 국민은 천황에게 절대 충성을 맹세했다. 이처럼 천황의 나라 일본은 입헌군주제 국가로 태어났다.

하지만 청일전쟁 ·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메이지 헌법은 제국주의 헌법이 되고 말았다.
















사진 : 서양식 군복을 입은 메이지천황

1) 일본은 1873년 2월11일을 기원절로 선포했다.
BC 660년에 즉위한 초대 신무천황(神武天皇)은 전설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메이지 정부는 8세기에 편찬된 『일본서기』의 신무천황 즉위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하여 기원절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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