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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칼럼>수은 강항과 일본유교전파에 따른 역사적 고찰과 민간외교6

대한민국 넘어 문명국가로 꿈꾸도록 해 준 스승의 나라 師表인 수은 강항의 선양사업과 문화콘텐츠의 활용 나선다!!
등록날짜 [ 2019년05월17일 00시30분 ]
9. 일본인들의 고착화된 성격논리
앞 칼럼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본국의 대표적인 사무라이 문화인 무(武)와 불교에서 문(文)과 유교로 변화에 따른 왜국에서 근대일본사회의 대 변혁을 여기서 들여다 보기로 한다.

1) 고착화된 더치페이문화.
일본은 철저한 더치페이문화다. 항상 주변의 눈치와 상대를 잘 살펴야 살아갈 수 있는 그들은 항상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곧 바로 칼로 베이게 되는 민족이었다.

대장간에서 만든 칼이 잘 만들어졌는지를 보려고 집근처에서 어두운 밤에 지나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은 체 그 칼을 사용해 보고 단칼에 베어지면 그 다음날 대장간을 찾아가 포상을 내리고 가문대대로 훌륭한 칼이라 자랑을 하는 민족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조심을 하다 보니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 남발되고 궁극적으로는 남자 여자의 기본적인 생활 관계에도 더치페이 생활문화는 당연시되며 잔돈까지 얹혀 계산하는 방식으로 더치페이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2) 혼내ほんね, 타테마에たてまえ(속마음, 겉마음 즉 본심을 숨기는 가면)
철저하게 일본인들은 이중성격 소유자들이다. 일단 그들은 이것을 "예의를 갖춘다"라는 정도로 생각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대충 대화를 하다가 일본사람들이 가장 많이 말하는 것이 "다이죠부だいじょうぶ"다.

"괜찮아"정도인데. 제 아무리 늦어도-_- 상대가 아무리 약속을 어겨도 일단 기다리는 동안 속으로 별욕을 다했을지언정 상대방이 오면 예의를 갖춰 "다이죠부だいじょうぶ~~"라고 말한다.

혼내ほんね, 타테마에たてまえ 어원을 살펴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평민 출신인데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서 사무라이까지 된 자로 자신과 똑같이 평민->사무라이가 되는 길을 영구히 그것도 악랄하게 철저히 금지시켰다.

그리고 또 하나 기발하게 착안해 놓은 게 "사무라이들은 하위계급과 사무라이 외의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런 규범과 동시에 왜의 무인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평민이 사무라이로 되는 걸 완벽하게 막아버렸다.

그 결과 사무라이들은 자신들 외의 사람들을 노예로 보면서 자신을 조금이라도 거슬리고 비위가 상하게 되고 까닭 없이 쳐다보기만 해도 사무라이의 칼로 머리든 몸통아리든 싹둑 잘라버리게 되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맘대로 사무라이들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도 당시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무의 사회에서는 그냥 규범적으로 넘어가줬으니 평민들은 위의 계급인 사무라이들에게 눈치를 보고 모든 행동거지에 미리 미리 조심을 하고 목숨이 붙어있는 상황에서는 언제 어느 조건아래에서든지 항상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그 사무라이가 상급자이든 하급자이든 간에 사무라이라면 무조건 굽실거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혹여 조금이라도 자신의 불만을 드러냈다간 바로 사무라이의 손에 목이 날라 갔다.

그러나 사무라이라고 그네들도 마냥 마음 편한 건 아니었다. 이들 사이에서도 상급자와 하급자가 나뉘어졌는데 하급 사무라이들은 상급 사무라이들이 명령하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그걸 거부하면 상급 사무라이들이 하급 사무라이의 댕컹 목을 쳐 버려도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무라이라 한들 사실상 평민과 다를 바 없이 상급자에게 무조건 굽실거려야만 했다.

그런 사회질서가 ‘스미마셍すみません’이 남발을 가져오게 되고 사무라이 칼 끝에 목숨이라도 살아있으면 그 자체가 "다이죠부だいじょうぶ" 인 것이 고착화된 사회의 질서가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회질서속에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니지만 인간은 그 어느 동물보다도 고등동물로  환경 적응이 빠른 동물이기에 그러한 처절한 삶속의 백성들은 당연하게도 재빨리 적응이 되어 혼내ほんね, 타테마에たてまえ(속마음, 겉마음 즉 본심을 숨기는 가면)이 몇 개씩 있게 되고 만다.

언필칭, 혼내ほんね, 타테마에たてまえ(속마음, 겉마음 즉 본심을 숨기는 가면)가 이러한 사무라이들의 무법천지의 무의 사회질서에서 생겨난 것이다.

거듭 강조해 말하자면 혼내ほんね, 타테마에たてまえ(속마음, 겉마음)는 마구 날뛰는 강자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한 약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3) 소호(SOHO)와 청결 지향적 문화정착
철저하게 개인주의이며 작고 아담한 1인 위주의 생활을 하며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은 앞 서 말한 대로 피해를 주게 되면 사무라이에 의해 칼질을 당하기 때문에 이미 습관적으로 고착화되었고 매사에 사회생활은 조바심이 날 정도로 항상 앞과 뒤를 살피며 조심을 한다.

이런 생활 습관으로 인해 일본인들의 집 앞이 대체적으로 깨끗하고 운전할 때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끝까지 참는 것도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건들게 되면 곧바로 죽음과 연관이 되기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에 대한 성격적인 오해가 금도를 넘어 그네들 일본인들은 인내심이 많고 참을성이 많다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가 않다.

일본인들은 오로지 고례(古例)로 내려오는 사무라이들의 무인사회를 우선으로 하는 공포분위기와 무사인 사무라이들에게 무수히 당해왔던 기억의 일본인들 가슴에는 태생적으로 각인으로 형성되었다고 감히 생각하며 냉정하게 그네들의 잔인함속에 감춰진 대단히 약한 일본인들임을 쉽게 이해하고 아주 쉽고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다.

일본인의 기본적인 성격형성 : 개인주의, 피해의식에 의한 지나친 배려심, 외국 문물에 대한 깊은 신뢰와 대(代)를 이어 가고자하는 장인정신, 새로운 것과 외국인들에 대한 과도한 친절

10. 일본 유교의 비조인 수은 강항선생의 문집 편찬 및 간행
수은 강항은 평소에 자신의 저작을 정리해두지 않아 많이 散佚(산질)되었는데, 선생의 行狀(행장)에 의하면 남아 있는 저술로는 家人(가인)이 수집한 雲堤錄(운제록) 몇 권, 巾車錄(건거록) 1책, 「綱鑑會要(강감회요)」, 「左氏精華(좌씨정화)」, 「文選纂註(문선찬주)」약간 권이 있었다고 한다.

이중 雲堤錄(운제록)은 시문집이며, 巾車錄(건거록)은 바로 看羊錄(간양록)으로 門人(문인)인 尹舜擧(윤순거)가 이름을 바꾸어서 정리하였다. 尹舜擧(윤순거)는 1654년〈看羊錄識(간양록지)>를 쓰고 다음 해 行狀(행장)을 지었으며, 이어서 金溝縣令(금구현령)으로 재직하던 중 저자의 시문과 看羊錄(간양록) 등을 편찬 정리하고 1658년 宋時烈(송시열)의 序文(서문)을 받아 목판으로 간행하여 마침내 수은 강항의 문집들이 서서히 빛을 보게 되었다.

▣ 특집을 끝내며
1. 일부 지식인들과 동떨어진 학자들의 시각 우려 사회전반에 이미 뿌리박힌 일본문화를 서서히 바꿔나가야만 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병기(倂記)를 하듯 동시에 그러한 왜색이 짙은 사회와 문화와 예술에 새겨놔야 할 것이다.

작금에 와서 학계에서 일본인 스승을 둔걸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학자를 바라보면 연민의 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이 언제부터 그렇게 연구와 깊은 통찰이 있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그건 지금으로부터 불과 450 여 년 전에는 그야말로 잔인하고 인간이랄 수 없는 국민성과 민족성을 갖고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들의 노에 전쟁과 도자기전쟁에 의한 뼈아픈 역사를 우리는 치욕스러운 문화와 역사에 항상 용서하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한다. 모든 일본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 90%이상의 백성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항상 어느 나라이든 일부 우익인사들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는데 있다.

2. 민간외교차원의 강항로드개발
2018년 10월경 강항이 포로로 끌려간 포로 길을 따라 강항로드(조이여행사 최금환대표)로 명명식을 가졌다. 하야시 라잔의 제자인 안사히에 의해 포로 강항에게 배웠다는 게 너무도 수치스러워 조선의 大儒라고 그들이 내세우는 퇴계 이황의 유교를 받아들였다는 그들의 역사왜곡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개탄스럽고 한탄스러웠다.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민간외교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건 한국과 일본의 양 국가 간 마찰을 최소화하면서도 양국이 극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은 강항선생에 대해서 작성했지만 국내에서만 머물러 강항의 수많은 자료가 일재강점기를 거치며 일본경찰서장에 의해 철저하게 분서갱유(焚書坑儒)가 되었고 자손들이 갖고 있는 자료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며 부단히 찾은 자료의 한계로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중요한 개발과 활용에 관한 부분이다. 역사문화콘텐츠의 활용은 수요층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특화된 프로그램, 참여자의 자발적 의식이 온전하게 결합되어야 이룰 수 있다.

이번 '수은 강항과 일본유교전파에 따른 역사적 고찰과 민간외교'의 특집에서 강조하고자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넘어 한 미개국가를 문명국가로 꿈꾸도록 해 준 스승의 나라 사표師表인 수은 강항의 정신사적 선양사업과 문화콘텐츠의 활용에 관해 구체적으로는 국내, 외 수요층을 겨냥한 차별화 프로그램 개발, 창작문화예술 콘텐츠의 적극적인 개발, 홍보와 교육자료 개발, 내산서원 전시관(교육관)의 확대운영 등을 점차적으로 기획해 갈 것이다.

끝으로, 수은 강항과 일본유교전파에 따른 역사적 고찰과 민간외교에 대한 글을 작성하면서 관련 학술지 논문과 인터넷 검색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투고논문 : 강항(姜沆)의 충절정신과 유학(儒學)의 대왜(對倭) 전수(傳授)로 본 그 위상
논문 : 포로실기에 나타난 전란의 기억과 자기 정당화- 『간양록』,『월봉해상록』,『정유피란기』를 중심으로
임진왜란 포로의 일본 체험 실기 고찰
한국사상(韓國思想)(사학(史學)) : 수은(睡隱) 강항(姜沆)의 일본인식 임진왜란과 전쟁포로, 굴절된 기억과 서사적 재구
강항(姜沆) 이 본 일본(日本)
강항,『간양록』
임진왜란기 해외체험 포로실기의 동아시아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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