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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49회

김세곤 (칼럼니스트)성종, 임사홍·유자광 등을 국문하라고 전교하다.
등록날짜 [ 2019년07월15일 10시12분 ]
1478년 4월29일에 성종 임금은 홍문관·예문관 관원을 불러서 임원준과 임사홍의 소인됨과 간사한 형상을 묻게 하라고 전교했다.

먼저 홍문관 부제학 유진이 말했다. "임사홍은 평상시에 행동이 거만하여 남을 공손하게 대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불순하다고 생각하였으나, 별로 밝게 드러난 허물이 없기 때문에 즉시 계달하지 못하였습니다.

요즘 임사홍이 계달한 바, ‘천재(天災)는 마침 그렇게 된 운수인데 경계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대간에서 일을 너무 쉽게 말하니, 마땅히 견책하는 뜻을 보이도록 하소서.’라는 등의 말은 정상(情狀)이 이미 드러났기 때문에 소인이라고 지목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그 아들을 가르치지 못하였고, 또 1444년(세종26년) 과장(科場)에서 글을 대신 제술(製述)하였고 뒤에 의서(醫書)를 습독할 때에는 안평대군 이용의 집에서 약을 훔쳐 도망하였으니, 이 때문에 간사하고 탐탁(貪濁)하다고 이르는 것입니다."

이어서 전한 이형원, 홍문관 직제학 유순, 응교 채수, 부응교 이우보도 홍문관 부제학 유진과 비슷한 말을 했다. 이에 성종은 임사홍 · 박효원 · 김맹성 · 김괴 · 표연말을 의금부에 회부하라고 명하였다. (성종실록 1478년 4월29일 3번째 기사) 4월30일에 성종은 어제 모임에 참여한 여러 신하를 서빈청(西賓廳)에 불러서, 임사홍이 박효원을 가만히 부추겨서 현석규를 공격하기를 꾀하였던 등의 일을 물었다.

먼저 임사홍이 신상 발언을 통해 현석규를 탄핵하려 했다고 실토했다. "전에 승지가 되었을 때에 도승지 현석규가 홍귀달을 욕한 일을 대사간 손비장의 집에 가서 말하였더니, 손비장이 듣고서 놀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승정원은 백관들이 모여서 보는 곳인데 이러한 일이 일어났으니, 홍귀달이 비록 월권하였을지라도 현석규가 잘못이다.’라고 하자, 손비장이 답하기를, ‘현석규가 과연 잘못이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 사간원에서 차자(箚子)를 올리던 날에 박효원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대략의 뜻은, ‘그날 정언 김맹성을 승정원에 불러서 질문할 때에 현석규가 손에 차자를 가지고 계달하기를, 「팔을 걷어 올린 것은 더운 때문이고, 너라고 일컬은 것은, 신이 홍귀달에게 말하기를, ‘승정원의 구례(舊例)를 폐하려는가? 비록 강맹경이 도승지가 되고 신숙주가 동부승지가 되었을지라도 어찌 이와 같을 수가 있겠는가?’고 한 것입니다.

동부승지가 월권하여 말한 일은 신이 진실로 노여워하였습니다. 그가 노할 때를 당하여 침과 거품이 나왔으니, 신이 어찌 노하지 아니하겠습니까? 그같이 무례한 행동은 신은 실로 없었습니다.

이제 사간원에서 신을 꺼리어 무고하여 죄를 얽는 것이 이미 심하니, 신은 진실로 마음이 아픕니다. 전일에 이세좌가 갇히었을 때에 울면서 간(諫)한 것은 단지 공론(公論)을 위한 것뿐인데, 신이 무슨 마음이 있었겠습니까?」하였는데, 이때 김맹성은 듣고서 잠잠하게 있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현석규가 간관에게 말이 공손하지 못하니, 정언 김맹성이 반드시 계달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사간원에서 다시 논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이 또 박효원에게 편지로 통하기를, ‘도승지가 동료를 능멸할 뿐만 아니라 정언도 욕을 보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그 뒤에 또 박효원을 사약방(司鑰房)에서 만나 서로 말을 나누었으나, 그 말은 오래되어 잊었습니다.

그 뒤에 박효원이 또 신의 집에 이르러 말한 것도 지금은 잊었으니, 청컨대 박효원에게 물으소서. 그 뒤에 어떤 날 또 손비장과 박효원에게 편지하였는데, 그 말도 잊기는 하였으나, 서로 통한 대개의 뜻은 현석규를 탄핵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윽고 성종은 어제 홍문관 관원 가운데 미처 묻지 못한 자에게 물었다. 홍문관 교리 권건이 말하였다. "신은 임사홍과 함께 있지 아니하였고, 같이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사홍의 행적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평상시 거동이 황당하고 말이 음휼(陰譎)하기 때문에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는데, 요즘 계달한 바가 모두 소인이나 하는 짓이기 때문에 소인이라고 배척하는 것입니다. "

이어서 대사헌 유지가 아뢰었다. "이제 임사홍이 박효원을 몰래 시켜서 현석규를 공격한 일을 보건대, 그때 김언신이 지평이 되어 현석규를 중국의 노기·왕안석에게 비하기까지 하였는데, 김언신은 임사홍과 가까운 이웃으로 본래 교분이 있어서 조석으로 상종하였으니, 이는 반드시 임사홍이 시킨 것입니다.

또 그때에 유자광의 상소가 김언신의 아뢴 바와 뜻이 같고 김언신과 유자광이 또 서로 사귀어 친하였으니, 이는 함께 탄핵한 것입니다. 함께 추국함이 어떠하겠습니까?"

성종은 "좋다. 의금부에 내려서 국문하게 하라."고 전교했다.

조금 있다가 임금이 선정전에 나아가자, 전에 정승을 지낸 자와 의정부, 육조의 참판 이상, 대간이 입시(入侍)하였다. 성종이 말하였다. "사람을 알기가 심히 어렵다.

내가 홍문관·예문관 양관의 상소를 보니, 임사홍을 소인이라고 한 말이 있어 친히 물으니, 양관 사람이 대답하기를, ‘언어와 거동이 모두 소인이고, 또 요즘 말한 바가 바로 소인의 일이라.’고 할 뿐, 아무 일과 아무 일이 소인의 일이라는 것을 두루 말하지 아니하나, 내 생각으로도 임사홍이 요즘 말한 바는 과연 잘못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소인에 이르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말한 자를 파면하였는데, 이심원의 말을 들음에 미쳐, 말에 관련된 사람들에게서 들으니, ‘임사홍의 한 바는 참으로 소인이다.

양관 사람이 모두 임사홍이 소인인 것을 알았다.’고 말하였다. 임사홍이 승지와 참의를 지내도 소인이라고 말하지 아니하다가 지금에 이르러서야 말하니, 진실로 잘못이다.

그러나 임사홍이 이미 절반을 자백하였으므로 그 소인의 형상을 끝내 덮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므로 양관 사람들의 말이 무고가 아님이 드러났으니 내가 그들을 복직시키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한명회가 대답하였다. "상교가 마땅합니다. 신 등이 명을 듣고 임사홍을 국문하였던 바, 그 공사(供辭)의 대략은 이미 자복하였으나, 편지의 사연은 명백하게 말하지 아니하니, 말로써 그 정상을 알아낼 수 없습니다.

또 양관 20여 명의 관원이 모두 소견을 가지고 계달하였을 것인데 이것이 어찌 무고이겠습니까?" 이에 성종은 승지를 불러서 "홍문관과 예문관 사람들의 벼슬을 회복시키고, 또 그 당시 대간으로 임사홍의 술책에 빠져서 남의 과실을 탄핵한 자는 임사홍과 다름이 없으니, 손비장 ·김언신·김괴·김맹성·표연말을 아울러 국문하라." 고 전교하였다.

사진 1 창덕궁에 있는 옥당 (홍문관의 별칭)

이윽고 홍문관 부제학 유지가 말하였다. "신 등이 홍문관·예문관 관원의 공사(供辭)를 보건대, 임원준의 더러운 행적은 입으로 차마 말할 수 없는데, 그 죄가 어찌 벼슬을 파면하는 데 그칠 뿐이겠습니까? 또 박효원은 한미(寒微)한 가계에서 태어나서 벼슬이 없을 때부터 임원준의 집에 기식(寄食)하여 가신(家臣)과 같았으니, 임사홍의 지시를 받은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자 성종이 말하였다. "내가 마땅히 그 공사를 보겠으나, 어찌 다 믿을 수가 있는가?" 사헌부 장령 박숙달이 아뢰었다. "지난해에 김언신·유자광이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극언하였는데, 두 사람의 말이 우연히 일치하였고, 또 이들의 교분이 두터워서 반드시 서로 약속하고 한 것일 터이니, 유자광을 아울러 추고(推考)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유자광은 말할 책임이 없는데도 감히 말하였으니, 이것 또한 의심스럽습니다.”

성종은 "좋다."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나가자, 성종은 전교하였다. "표연말이 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이심원에게 말하였으니 매우 간사하다. 만약 이심원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찌 알았겠는가? 내가 매우 기뻐한다. 그를 위로하고 타일러서 보내라." (성종실록 1478년 4월 30일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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