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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83회

김세곤 (칼럼니스트)충청도사 김일손, 학문의 요령을 상소하다.
등록날짜 [ 2020년03월22일 20시37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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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사 김일손의 상소는 계속된다. (연산군일기 1495년 5월28일)

“그 요체는 하루빨리 경연(經筵)에 납시는 데 있습니다. 학문이 날로 나아가면 덕이 날로 밝아지고, 스스로 덕을 밝히면 만사가 차차 이치에 맞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략)


다만 지금 경연의 제도상 의논되어야 할 점도 있습니다. 무릇 경연은 어진 사대부(士大夫)를 접견하여 조용히 강론함으로써 덕성(德性)을 훈도(薰陶: 감화)하자는 것이지, 구두(句讀)나 찍고 문의(文義)나 해석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이천(程伊川)은 서서 강의하는 것이 노고가 된다 하여 앉아서 강하게 하려고 하였는데,  그것은 경연의 체제가 옛날 스승을 빈객(賓客)으로 대우하는 법도가 있어서 임금을 높이고 신하를 눌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경연을 보면 엎드려서 하니 능히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기운이 귀에 막히고, 말이 입에 맴돌아 자못 조용하지 못하고, 늙은 대신은 더욱이 감당해내지 못하오니, 전하께서는 명하여 조용히 앉아서 강하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선왕께서는 학문이 고명하신 경지에 도달하셨지만 하루에 세 번씩 강하셨으며, 강할 적마다 책을 달리하셨는데, 오직 날을 부족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진학(進學)하는 요령은 아닙니다.”

정이천(1033~1107)은 중국 북송의 유학자 정이(程頤)이다. 형 정호(程顥)와 함께 정주학(程朱學)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철종 초에 사마광(司馬光) 등의 추천으로 국자감 교수가 되었고, 이어서 비서성 교서랑(校書郞)·숭정전설서(崇政殿說書)로 발탁되었다.

학자로서 그는 《역경(易經)》에 대한 연구가 특히 깊었고,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철학을 수립하여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철학은 주자(朱子)에게 계승되었다.  

상소는 이어진다.
 
“전하의 명철(明哲)과 예지(叡智)로 비추어 보면, 장차 통하지 못할 것이 없지만, 정신은 분수가 있고 총명은 한도가 있으며, 한 가지 서적이라도 본말(本末)이 있으니, 반드시 깊이 이해하셔야 통달하게 됩니다.

만약 예전 규례만 답습하여 대충대충 진강(進講)하시면 안력(眼力)은 흩어지고 마음은 갈라져서, 하루에 만 권의 서적을 독파해도 결국 많이 안다고 뽐내기 위한 학문이란 평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인의 학문은 대충 섭렵(涉獵)하려 해서는 안되고 마음을 열고 안목을 밝혀서 함양(涵養)하고 통달하여 응용에 이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한 가지 책을 통달하여 졸업하셨다면 다시 다른 서적으로 나아가공부에 전념하셔야 합니다. 다만 야대(夜對)에는 《강목(綱目)》을 강하여 세자로서의 학업을  마치도록 하소서. 대개 치란(治亂)과 흥망(興亡)과 진퇴(進退)와 사정(邪正)의 옛 자취를 속히 거울삼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으니, 전하께서는 더욱 성의를 쏟으소서”

치란과 흥망, 진퇴와 사정(邪正)은 제왕학의 근본이다. 대표적 저서가 당 태종 치세의 <정관정요>이다. 
 
“뜻이 성실하지 못하면 보는 바가 다 부실할 것입니다. 대개 배움이란  묻는 것을 필요로 하는데, 묻지 않으면 명확하지 아니합니다.
경연에 임하여 심문(審問)하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신은 매양 저 단주(丹朱)의 불초(不肖)와 순(舜)임금의 지성(至聖)을 생각할 때마다 비록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감히 비교하여 논하지 못할 것인데, 우(禹)임금은 순(舜)에게 ‘단주와 같이 오만함이 없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그 말이 이미 박절하였지만, 순임금은 마음으로 기뻐하고 그렇겠다고 수긍하였습니다.”

단주는 요임금의 아들로서, 요임금은 단주가 불초하여 천하를 물려주기에 부족함을 알고, 순(舜)에게 정권을 물려 주었다. 요즘 같으면 아들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이 기업 총수가 되는 격이다.

그런데 순임금도 자식에게 왕위를 안 물려주고 우(禹)에게 천하를 물려주었다. 우는 황허강[黃河]의 홍수를 다스리는 데 헌신적으로 노력하여 그 공으로 왕위에 올라 하(夏)나라를 세웠다.

한편 우(禹)는 왕위를 아들 계(啓)에게 물려주어 이때부터 선양제(禪讓制)가 없어지고 상속제(相續制)가 이루어졌다.

흔히 요순시대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가 행해진 대동(大同)사회라 하고, 왕위 계승 시대는 대동사회의 차선책으로서 소강(小康)사회라 칭했다. 

사진 1  창덕궁 선정전

사진 2  선정전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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