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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소개> 강호성 진양회장의 '호남찬가"

조선의 대 선비 강항의 정신으로 호남의 우수한 선비정신과 문화 찬양할 때
등록날짜 [ 2020년09월01일 18시36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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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일 진주 강씨 영남권 골프모임 진양회(회장 강호성 이하 진양회)에서는 첫 원정경기 성지순례(聖地巡禮)로 다음 달 1017()~18() 일정으로 수은 강항선생이 배향되어 있는 내산서원을 참배한다고 밝혔다.

 

진양회는 지난 달 8월 중순경 전남 화순소재 골프장과 인근 식당을 다녀온 김해시청 직원 8명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일정과 상황을 관망 하던 중 전국에 걸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의 돌입함으로 인해 1912()~13() 모든 행사 일정이 전격 취소되었다.

 

강호성회장의 숭조돈목사상은 오랜 타관(他官)생활에서 자수성가(自手成家)와 맞물려있다.

 

이어 강 회장은 야심차게 한국과 일본 양국간의 최종 승리자는 조선의 수은 강항과 일본의 명치유신을 이끈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이라는 논리를 전개하면서 호남의 새로운 역사에 대해 작심한 듯 말했다.

 

호남은 지리적으로 비옥하고 넓은 토지를 가진 자연과 순리의 땅으로 이곳에 온조(백제의 시조에 대한 학설로는 우태설, 비류설, 온조설 등으로 온조설이란 말 그대로 온조를 백제의 시조로 보는 학설.)가 백제를 건국하여 농기구를 개발한 자연의 순리를 실현한 땅으로 호남인들은 예, , , , , (禮 學 孝 .忠 義 藝)를 숭상한 너무나 순박하고 멋진 선비들의 후손이다.’

이 땅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깊은 상처가 있었고 또 1894년 전봉준의 동학 운동이 있었으며 도도하게 역사는 흘러 3.1운동과 5.18민주혁명이 완성되었다.’고 목소릴 높였다.

 

한편, 강 회장은 이제 이 아픔에서 벗어나 조선의 대 선비 강항의 정신으로 호남의 우수한 정신과 문화를 찬양할 때라며 강항의 노래 보급으로 가능할 것 같으며 호남이 대 선비인 강항의 정신으로 이어가는 호남의 찬가(贊歌)를 작사, 작곡을 해 보급한다면 가장 획기적인 문화교육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그는 이순신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를 말하면서 호남의 최고가 대한민국의 최고이며 대한민국의 최고가 전 세계에 으뜸일 것이라고 맺은 말을 했다.

 

이러한 진양회는 영남지역의 진주강성의 골프모임 친목단체로 넥센타이어 강병중회장이 1990년대 부산종회장으로 재임시 태동이 되었다.


<편집자 주>

수은 강항(睡隠 姜沆)선생
수은 강항(睡隠 姜沆)(1567∼1618년)선생은 전남 영광군 불갑면 유봉마을에서 박사공 강계용선생을 시조로 14세손이며 사숙재 강희맹선생의 5대손으로 테어났다.

선생은 3세부터 백형(伯兄) 저어당 해로부터 사서오경을 배우고 익혀 7세에 맹자정비 일화와 8세에 강목촌 일화를 드높일 정도로 총명하였으며 벼슬길에 올라 공조와 형조의 좌랑을 지냈으며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영광 임진 수성사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했다.

왜의 수군이 한산도를 거쳐 서해로 돌아 들어오자 선생은 가족들과 함께 이순신 장군의 휘하로 들어가려고 배를 타고 가다가 두 형(준과 환)과 함께 왜군에 피로(被虜) 되었다. 선생은 일본에서 시코쿠(四國) 지방의 오즈(大津)성에 약 1년, 교토의 후시미(伏見)성에 약 1년 8개월 머물게 된다.

이 포로 길을 우리는 후계세대가 한 맺힌 역사의 현장을 잊지 않도록 강항로드(ROAD)길로 개발하고 ‘강항문화제’에서 체험학습에 활용하기로 계획하고 적극 나서고 있다.

 왜국의 학승(學僧) 순수좌(후지와라 세이카藤原醒窩)는 당시 조선에서 국가의 통치, 지배, 경영이념이자 최고의 선비문화로 르네쌍스를 구가(謳歌)하고 있음을 몹시 동경하며 이러한 경지에 오른 조선의 유교(儒敎)에 갈망(渴望)하였다.

때마침 지성(至聖)의 반열(班列)에 오른 수은 강항선생을 만나자 마자 필담(筆談)을 통해 고매한 학덕(學德)을 지닌 선비임을 순식간에 알아보고서 읍소(泣訴)하며 간절히 사제지간(師弟之間)의 연을 청했다.

이에 선생이 깊은 고민 끝에 허락을 해 제자로서 예법을 갖추고 사서오경과 조선의 유학 이론과 과거제도, 상례 등을 배웠고, 일본에새 유학뿐 아니라 그가 동경(憧憬)하는 심의(深衣) 선비한복을 한 땀 한 땀 짓는 방법까지도 터득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심의(深衣)인 선비한복을 후계세대에 도입해 의복을 단정히 착용함으로써 자세가 달라지고 인성교육을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어린이 선비한복모델을 선발해 한 · 일 간의 역사, 문화교류에 적극 앞장서고자 하는 것이다.)

마침내 순수좌(후지와라 세이카藤原醒窩)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를 불러 무(武)에서 문(文)으로 강독(講讀)함으로써 일본 최고의 막부를 무장해제(武裝解除)를 시키는 일생 일대의 큰 사건이 되고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계기가 되어 마침내 왜국에서는 근대시대로 나아가는 명치유신(明治維新)을 맞이하게 된다.

순수좌(후지와라 세이카藤原醒窩)의 수제자인 하야시 라잔을 통해 막부(幕府)에서 근대 일본의 주춧돌 역할을 함으로 마침내 수은 강항(睡隠 姜沆)선생은  ‘일본 유교의 비조’가 되었다. 수은 강항(睡隠 姜沆)선생은 왜국에 억류되어서도 사서오경(四書五經)을 발문했고, 『곡례전경』(曲禮全經), 『소학』(小學), 『근사록』(近思錄) 등 16종을 수록한 『강항휘초』(姜沆彙抄)를 일본에 남겨겼다.

이는 역사적으로 명명백백(明明白白)한 사실로 일본인들은 '일본 근대화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히고 있으며 현재 일본 국립공문서관 내각 문고에 '강핟휘초'가 소장되어 있음을 지난 2019년 수은강항선생 기념사업회에서는 일본에 건너가 확인하였고 그들은 수은 강항(睡隠 姜沆)이 ‘일본 유교의 비조’ 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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