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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카프카와 프라하 4

김세곤 (여행 칼럼니스트)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등록날짜 [ 2020년09월27일 22시1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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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배우 추송웅(1941∼1985)이 1977년에  ‘3·1로 창고극장’에서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을 공연했다. 공연은 크게 히트쳤고,  일본 공연도 나섰다.  「빨간 피터의 고백」의 원작은 카프카의 소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Ein Bericht für eine Akademie)」이다.

카프카는 1917년 3월에 프라하성 아래쪽 셴보른 궁에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빌렸다. 황금소로의 다락방은 조용하긴 했으나 너무 비좁아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는 4월 둘째 주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썼고, 월간지 "유대인"에 발표했다.

이 소설은 출구를 찾기 위해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해 온 원숭이 피터가 그간 겪은 일을 학술원에 보고하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학술원의 고매하신 신사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소생에게 원숭이로서의 소생이 전력에 대한 보고를 제출하게끔 하는 명예를 주셨습니다. 이런 뜻에서는 저는 유감스럽게도 권고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원숭이다움과 지금의 저 사이에는 5년 가까운 세월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 사람들이 저에게 요구하는 것은 예전의 원숭이가 인간세계로 뚫고 들어와 거기서 기반을 굳히게 된 과정의 지침 같은 것을 가르쳐 달라는 거겠지요.” 

원숭이는 아프리카 황금해안에서 하겐벡 상사 사냥원정대가 쏜 총 두 발을 맞았다. 한발은 뺨에 맞았는데 가벼운 빨간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원숭이는 ‘빨간 피터’로 불리게 되었다. 두 번째 탄환은 아랫도리에 맞았는데 상처가 심해서 평생 절뚝거렸다.

한참 후 원숭이는 하겐벡 상사 증기선 갑판의 우리에서 깨어났다. 우리에 갇힌 원숭이는 난생처음으로 출구가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출구를 마련해야 했다. 궤짝 벽에 몸을 눌러 붙인 채 가만히 서 있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원숭이의 유일한 출구는 갑판에서 인간들이 하는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흉내 내는 일이었다. 맨 처음 모방은 악수였다. 그다음은 침 뱉기, 파이프 담배 피우기, 술병 들고 술 마시기였다.   

그런데 어느 날 원숭이는 술을 남김없이 마시고 나서 취한 상태에서 인간의 음성으로 ‘헬로우’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원숭이가 말을 했다’고 환호했다. 마침내 그는 출구를 찾은 것이다. 함부르크 항구에 도착한 원숭이는 동물원이 아닌 곡마단을 선택함으로써 주체적인 존재로 발전한다. 

드디어 원숭이는 유럽인들의 평균치 교양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는 학술원에 출석하여 보고한다. “전체적으로 보아 저는 제가 도달하고자 했던 것에 도달했습니다.
그것이 애쓸 가치가 없었다고는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저는 그 어떤 인간의 심판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지식을 널리 알리고자 할 뿐입니다. 저는 보고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여러분께도요. 학술원의 고매하신 신사 여러분, 저는 보고했을 따름입니다.”

이 소설은 카프카의 대표작 「변신」과 마찬가지로 원숭이가 인간이 되어가는 변신 이야기다. 

원숭이는 습득을 통해 5년 만에 유럽 평균인의 교양 수준에 도달했고, 그 과정을 학술원에 보고한다. 그런데 원숭이는 인간화의 길을 걷기는 했지만 완전한 인간도 아니고 완전히 원숭이의 상태를 벗어나지도 않은 존재다. 

하지만 ‘출구’라는 것, 즉 인간화의 과정은 그의 고백에서 나타나듯 ‘자아실현의 길’은 아니며 ‘강요된 적응’의 성격을 갖고 있다. 다윈주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화는 원숭이의 타락이다.

이런 점에서 원숭이의 인간화는 악몽일 수 있다. 따라서 문명세계의 무자비한 학습 과정을 통한 원숭이의 인간화는 승화가 아니라 자유의 상실을 의미한다. (편영수 지음, 프란츠 카프카, 살림, 2004, p 63) .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서구 유대인의 유럽인과의 동화와 연관성이 드러난다. 서구 유대인들에게 '동화'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방법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택한 탈출구였고, 결국 그들은 유럽 주류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고, 유대인으로서 정체성도 가지지 못했다.

체코에서 태어난 유대인 카프카는 영원한 이방인(異邦人)이었다. 그는 독일어로 글을 썼고, 체코인도 유대인도 아닌, 어디에나 속하지 못한 경계인(境界人)이었다. 

사진 1   31세(1914년) 때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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