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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미신에 빠진 고종황제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고종 1904년 러일전쟁 때 러시아가 이긴다는 무당의 말 믿었던 것
등록날짜 [ 2021년02월10일 09시40분 ]

윤치호 일기는 개인사이지만 한말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사료이다. 그래서일까. 윤치호 일기는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한국사료총서」에 영문일기가 번역되어 있다.

1898년 5월6일의 일기에는 고종의 미신 사랑이 기록되어 있다. “6일(금요일) 화창한 날씨. 거의 하루종일 한세진의 집에서 지냈다. 한세진 씨는 전하(고종)의 어리석은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ʻʻ몇 년 전 무당들이 궁궐에서 득세할 때, 전하께서 무당 앞에 꿇어 엎드리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무당들은 저세상의 영혼들과 영매(靈媒)로서 행세했는데, 어느 날 밤 무당이 전하 머리 위에 참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춤을 추다가 ʻ나는 태조 대왕이다! 네가 누구 때문에 위대해졌고, 왕실 재산을 갖게 되었느냐?ʼ고 소리쳤습니다.

전하께서는 마치 그 무당이 태조대왕이신 양 그 앞에서 허리를 굽혀 빌었고, 상궁에게 태조께서 원하시는 바를 알아내라고 명하셨습니다. 물론 무당은 태조의 영혼이 원한다면서 기도와 제물을 바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제물이란 그 무당에게 바치는 돈과 비단이었지요.’”


윤치호는 일기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전하께서 여전히 이런 어리석은 일에 빠져 계시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고종은 종교가 무속 신앙인 중전이 살아 있을 때부터 미신에 빠졌다. 민왕후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충주에서 피신 중일 때 만난 무당 진령군에 의존했고 1884년 갑신정변도 진령군이 북묘에 모신 관우 때문에 잘 넘겼다고 믿었다. 당시에 진령군은 비선 실세로서 국정을 농단했다. 
           

1893년 8월 21일에 전(前) 정언 안효제가 상소를 올려 무당 진령군을 처벌하라고 아뢰었다.
“요사이 괴이한 귀신이 여우 같은 생각을 품고 관왕의 딸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스스로 북관왕묘의 주인이 되어 요사스럽고 황당한 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함부로 ‘군(君)’칭호를 부르며 감히 임금의 총애를 가로채고 있습니다.

... 겉은 마치 잡신을 모신 사당이나 성황당 같은데, 부처를 위해 둔 제단에서 무당의 염불 소리가 그칠 날이 없고, 걸핏하면 수만금의 재정을 소비하여 대궐 안에서의 재계(齋戒)와 제사와 관련한 일들을 마치 불교 행사를 하듯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소경 점쟁이와 무당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중들의 요망스러운 교리가 이 때문에 제멋대로 퍼지며, 하인과 광대들이 떠들썩하게 지껄여 대고, 창고의 재정은 궁색하며, 관리 추천은 난잡하게 되고, 대궐 안은 엄숙하지 못하며, 형벌과 표창은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백성은 곤궁에 빠지며, 조정의 정사는 문란하게 되는데, 그 근원을 따지면 모두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숭상하기 때문입니다. 아! 부당한 제사를 지내기 좋아하며 귀신을 모독하면서 복을 구하니 도리어 이런 죄를 짓는 것은 멸망하는 길입니다."(고종실록 1893년 8월 21일)

그런데 고종은 직언한 안효제를 추자도로 귀양 보냈다. 이게 고종의 리더십이었다.     

한편 고종의 미신 사랑은 민왕후가 1895년에 을미사변으로 죽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1899년에 충주 사람 성강호가 귀신을 잘 본다고 소문이 났다. 고종은 성강호를 불러 명성황후를 볼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하루는 경운궁 경효전(景孝殿)에서 다례를 행하였다. 이 때 성강호가 갑자기 계단 아래에 엎드렸다. 고종이 그 까닭을 묻자 그는 “황후의 신령이 오셔서 지금 자리에 오르고 계십니다.” 하였다.

그러자 고종은 자리를 어루만지면서 대성통곡을 하였다. 성강호는 “그렇게 통곡하시면 신령이 다시 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고종은 억지로 눈물을 거두었다. 이때부터 경효전이나 홍릉에서 제사 드릴 일이 있으면 고종은 성강호에게 매번 “황후가 오고 있느냐? 안 오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유명(幽明)이 달라 혹 강림하기도 하고 강림 안 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고종은 명성황후가 생각나면 매번 성강호를 궁중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1년 사이에 벼슬이 뛰어올라 협판(차관급)에 이르렀으며 그의 집 문 앞은 항상 저잣거리처럼 붐볐다. (황현 지음 · 임형택 등 옮김, 역주 매천야록 하, p 28-29)

또한 강원도 통천에 사는 김원동이라는 자는 요술 병을 가지고 서울에 왔다. 그리고는 고종에게 불려가서 1897년에 낳은 어린 영친왕(엄귀비의 소생)의 병이 언제 나을 것인지를 정확히 알아맞히었다. 그래서 그는 고종의 총애를 받았다가 강원도 금화군수로 발령받았다. (강준만 지음, 한국 근대사 산책 3, p 135-137)

이게 대한제국이었다. 점쟁이와 무당이 궁궐을 드나드는 세상이었다. 1900년대에도 고종의 미신 사랑은 계속되었다. 이랬으니 고종은 1904년 러일전쟁 때 러시아가 이긴다는 무당의 말을 믿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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