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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싸롱> 서봉 방성춘 인터뷰

동초 김연수의 동초제 바디! 서봉 방송춘을 만나다!!
등록날짜 [ 2021년03월25일 21시59분 ]

2021년 설중매 매화가 만개한 소식을 엊그제 들었는가 싶은데 봄 꽃이 사방에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그런 춘삼월 봄날에 인터뷰로 만난 문화계 인물은 (사단법인) 동초제 판소리진흥회 이사장으로 방성춘 판소리 전수관을 운영하는 방성춘 명인이다. 명인은 2000년 5월 16일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제 16호 동초제 춘향가 보유자이기도 하다.



반갑습니다.

여러 관련 자료와 발표회 리플렛, 2020년 올해, 13회나 이어져오고 있는 서봉 전국 국악 경연대회를 면밀히 살펴보고 민간단체를 이끌어 오면서도 내실있고 참신한 활동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 모든 노하우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방성춘 명인> : 안녕하신가요? 오신다고 해 많은 부담감에 ‘어떻게 말해야 할꼬!’하다가 주변에 제자들과 의논을 해 봤습니다.

수 년 전에 대동문화재단에서 인터뷰한 게 기억이 나 ‘그때 그 방식으로 따라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제 16호 동초제 춘향가 보유자로 시시 때때로 언론에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만나자 마자 과찬을 하시니 도통 인터뷰를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답답하구만요.(웃음)

그런디 조금만 말씀드리자면 동초제소리는 쉽게 득음이 안 되고 어렵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다른

소리와 달리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라고나 할까 호랑이가 포효하는 소리라고나 할까 그런 큰 울림의 소리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득음(得音)과정이 상당히 힘들고 어렵다고 하지요.


그런데 사실 국악계에서 득음에 도달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득음이란 선천적으로 목구성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고 수많은 세월 속에서 하염없는 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과 훈련과정을 거쳐야만 겨우 이룰 수있는 것이지요.

방성춘 명인은 2000년 5월 18일 광주광역시무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동초제는 국창 동초(東超) 김연수(金演洙)가 창시한 판소리 유파이다.


1930년대 초 여러 명창들의 소리 중 좋은 부분만 골라 도입해 자신이 소화해 내여 만들어 낸 김연수는 소위 '창극 판소리'라는 창법으로 판소리계에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동초제는 가사와 문학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설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너름새(동작)가 정교하고 부침새(장단)가 다양하다.


또한 경상도 동편제(東便制)의 우람함과 전라도 서편제(西便制)의 아련함이 융합된 동초제는 호남의 소리로 재편(再編)되어 맺고 끊음이 분명한 특징이 있다.


동초 김연수는 생전에 늘상 동편제를 아버지 소리로 서편제를 어머니 소리로 표현하면서 이 2 소리의 장점만을 취합해 아우리는 소리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소리가 동초제라고 말했다.

동초제 판소리 춘향가는 정정렬제(丁貞烈制) 판소리 춘향가를 토대로 한다. 그러나 정정렬제 춘향가는 '적성가', '산세타령' 같은 이름난 옛 명창들의 더늠 대신 새로 짠 소리를 포함시켰다는 흠이 있다.


그래서 김연수는 옛 명창들의 더늠을 살리고 신재효(申在孝)의 사설을 참고하여 동초제 춘향가를 새로 짰다. 이것은 동초 김연수에서 오정숙을 거쳐 현재 동초제 춘향가의 기능보유자인 방성춘(광주시 남구 중앙로 105)에게 전수되었다.


특히 심청가와 춘향가에서 각과정이 튼실해야하면서 사설과 언어구사, 표현방법 등을 현대에 맞춰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고 일반인 시선에서 바라봤고 항상 뿌리가 튼튼한 나무가 가지가 많듯이 판소리에서도 뿌리의식을 김연수는 자주 강조해 왔다.

동초제 춘향가는 크게 백년가약에서 이별로 이별과정에서 수난과정, 수난과정에서 재상봉 장면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다른 춘향가와 달리 처음부터 '기산영수' 대신 정정렬제 더늠인 '꿈 가운데 어떤 선녀'로 시작하고, 정정렬제에는 없는 '기산영수[箕山潁水] ', '신세타령' 등 옛 명창들의 더늠을 넣어 더 풍부하고 일반인으로 하여금 쉬운 이해를 도왔다. 여기에 일반인들의 삶이 재조명되는 과정 등으로 공연 시간이 8시간이 넘어가는 대작(大作) 춘향가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또, 춘향가에서 춘향이는 관기인 어머니 월매를 자세히 묘사하면서 사대부의 처첩으로 그리면서도 춘향이가 이미 사서오경에 달통한 한집안의 규수이상의 문장가로 표현했으며 이몽룡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꿈속의 태몽에서 용을 상징하는 풀이로 소리를 들으면 이미 그림같이 그려지는 이미지화법으로 더 감칠맛을 더했다는 특징이 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방성춘 명인> : 1960년 13살에 어머니(제애돌)의 권유로 박채선 선생을 무작정 찾아가 〈춘향가〉를 배우면서 판소리 공부를 시작했지요. 그로부터 5년 후인 1965년에 공대일(孔大一)선생에게 〈흥보가〉, 1970년 무렵에 정광수(丁珖秀)에게 〈흥보가〉와 〈수궁가〉를 익혔습니다. 1975년도로 기억됩니다만 동초 김연수 선생의 이수자로 동초제 소리를 이어 받고 있는 오정숙(吳貞淑)선생께서 광주시 동구 불로동 소재 학생회관에 공연을 하신다는 걸 알고 처음 동초제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 공연이 제 인생을 갈라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랑께요. 처음 엄니 손에 이끌려 소리 공부를 했듯이 무언가 홀린 듯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오정숙(吳貞淑)선생과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하면서〈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전수받았지요. 이후 동초제 소리로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를 국립 서울중앙극장에서 완창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이렇게 소리를 배운지 21년인 1981년에 마침내 전주대사습에서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차지해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저의 소리를 인정받기에 이르렀지요.

이후 전남대, 광주예고 전주 예고 등에 출강해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전남도립국악단 창악부 수석 단원으로도 운신(運身)의 폭을 넓혀 17년간이나 활동을 이어갔으니 이 지역의 산물인 동초제로 국악 진흥에 정성껏 봉사했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동초제로 공연은 1997년에 제17회 대한민국 국악제 초청 공연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마다 보폭을 넓혀갔습니다. 1998년 전남 낙안 남도 음식 문화 축제 국내 해외 75회 공연과 1999년 해상왕 장보고 세종 문화회관 2회 국내 해외 87회 공연, 2000년 경주 해외 문화 엑스포 국내 해외 52회 공연을 가졌습니다.


특히 2000년을 잊지 못하는 건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제가 부르는 〈춘향가〉는 김연수(金演洙)선생에서 오정숙 선생으로 이어지는 바디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마 제가 처음으로 국제 공연이 프랑스 파리 2001년 제 130차 BIE 정기 총회 공연과 독일 파견 노동자 위문 공연일겁니다.  특히 독일 파견 근로자와 간호사 위문 공연 야외 가설극장식 공연무대에서 판소리가 끝나자 관객 중 파견 근로자 1명이 일어나 갑자기 만세 삼창을 하는 겁니다.

깜짝 놀라 당시 전남도청 인솔과장이 다가가 그 사연을 묻자 독일에 체류하면서 노래를 불러보라는 현지인들의 요구에 독일에서 배운 노래만 반복해 불렀는데 그때마다 독일인 동료가 하는 말이 ‘너희 나라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으나 한 소절도 제대로 못 불러 항상 불만이었다는 게지요.


그러다가 이렇게 훌륭한 판소리 무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벅찬 감격으로 만세 삼창을 하게 되었다고 하더구만요. 우리 소리가 이렇게도 감동을 주고 한편으로는 아주 훌륭한 것이라는 걸 대변하는 것이지요. 해외공연도 공연이지만 동년 2001년 국내 공연 활동도 결코 게을리 하지 않고 무려 80회가 넘게 공연을 펼쳤습니다.


이어 2002년 문화제 합동 공연 국내 해외 78회 공연, 2003년 <광주 문화 예술회관>에서 수궁가 완창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판소리선정 축하무대 및 국내 해외 101회 공연을 쉼 없이 가졌지요.


그러던 중 2004년 에는 전라남도 도립국악원 창악부 지도위원으로 활동하면서도 항상 공연은 숙명적으로 따라왔어요. 특히 2007년 9월 <문화예술회관>에서 5시간 동안의 적벽가 완창은 문화계 전반에 동초제 소리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지요.

이를 계기로 동초에서 오정숙 선생의 바디로 직접 나서서 동초제를 보급시켜야 하겠다는 사명감이 자발적으로 생기는 단초가 마련되었습니다. 그 해 2007년도 이후 지금까지 13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동초제 서봉 판소리 국악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으며 올해도 코로나-19로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온텍트시대에 맞춰 포스트 코로나로 어김없이 13회 동초제 전국국악경연대회를 무사히 끝마쳤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그렇군요!! 참 거침없고 구수한 입담도 대단하십니다. 그럼 동초제의 ‘김연수(金演洙)선생에서 오정숙 선생으로 이어지는 바디’라고 하셨는데 명인의 세간의 평가는 어떠합니까?


<방성춘 명인> : 참, 어려운 질문이구만요(웃음) 그런디 나의 목구성에 대해 전문가들의 평가를 보면 ‘여자지만 중앙성이 좋고, 수리성에 굵은 목구성을 지녔다’고 말하고요, 특히 〈춘향가〉 가운데 '이도령이 춘향집 찾아가는 대목'의 잉애걸이나 완자걸이, '사랑가'나 '옥중가'의 비성(鼻聲)과 '이별가'의 타루치는 목 등은 탁월하게도 자주 구사하는 붙임새라고 말하는디 그런 것들을 탁월하게도 잘 응용하고 각 단 또는 마디마다 조화롭게 소리를 잘 구사한다고들 말합디다만..(웃음)



한마디로 ‘대단한 소리꾼’이라는 말씀이겠지요. 그러면 김연수 소리와 상대적으로 비교되는 판소리가 있을까요??

<방성춘 명인> : 가장 쉽게 구분되는 소리는 아름다운 소리로 일컬어지는 임방울(林芳蔚)선생의 소리이지요. 단가 〈호남가〉와 〈춘향가〉 중 '쑥대머리'는 임방울 선생의 대표적인 소리로 알려져 있답니다.


임방울 선생은 국창(國唱)답게 선생이 태어난 이곳 광주에서 전국대회로 매년 개최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비교한다면 그렇지만요, 아까 맹키로 말하자면 동초 김연수선생께서는 동편제와 서편제를 다아우리고 융합시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판소리라고 정의해 ‘우리나라에서는 역시 동초제 소리로구나’ 하면서 아주 중요한 판소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각별히 신경 써줬으면 좋겠구만요!!

거듭 한 가지만 더 강조해 말씀드리자면 동초제 판소리는 가사전달이 시대에 맞게 직역(直譯)되어 전달되는 반면에 여타의 판소리는 문어체식의 표현을 구어체로 말하듯 뜻과 의미전달이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게 감히 비교우위라고 말할 수 있것네요.


<동초 김연수 국창 소개의 글>

 동초 김연수(金演洙.1907∼1974)는 판소리 소리꾼으로서는 일제강점기에 중학교를 졸업할 정도이니 당시 신식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한문 공부도 깊어 자신이 부른 판소리 다섯 바탕의 사설집을 자신이 정리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김연수 판소리 사설은 다른 판소리에 비해 오자(誤字)나 와전이 가장 적은, 매우 정확한 사설로 평가받는다.


1935년 김연수는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배우고, 그해 7월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에 입회, 송만갑 문하에서 [흥보가], [심청가]를 수득(修得)했으나 [흥보가]에는 당시에 널리 읽혀지던 소설과, 다양한 바디의 소리를 폭넓게 차용되고 신재효 사설이 많이 인용되어서 바디의 종합판 같은 느낌을 준다.


사설에서 대목별로 같거나 비슷한 부분을 보면 김창환 바디 정광수본, 신재효본, 송만갑 바디 강도근본·박봉술본 순이다. 그런데 '놀보 제비 후리러 가는 대목' 이후만을 본다면, 신재효본으로 부터 대부분을 차용했는데 그 당시 불려지고 있던 판소리보다도 더 낫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무조건 다른 바디의 사설들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비판적 안목을 가지고 취사선택하고, 새로이 창작해 써 넣기도 하면서 만들었다.


김연수는 당시 자신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임방울에 비해 대중적 인기가 다소 적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김연수가 판소리 역사에 끼친 공적(功績)이 임방울보다 적다고 할 수는 없다. 송우룡이나 정정렬, 유성준 같은 경우 실제 공연 능력은 당대 최고가 아니었어도, 후대의 판소리에 길이길이 기억되는걸 반추(反芻)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임방울에 비해 대중적 인기에서 다소 뒤졌다고 해도, 후대의 판소리에 끼친 공적은 임방울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깊다. 그 동안 말로만 듣던 김연수의 다섯 바탕 완창 녹음이 나왔다. 김연수의 소리는 김연수 바디 판소리의 원본으로 바디 통째 음반으로 발행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자신이 쓴 연보에서 이미 밝힌 바 있는 동아방송(1967년 다섯바탕 완창을 녹음, 140여회 방송) 녹음이다.


김연수는 여러 선생들로부터 소리를 배운 후에, 그 소리들 중에서 좋은 점만을 골라 자신의 소리를 다시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다시 사설을 짜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하였다.


김연수의 [춘향가]에서 춘향이는 사대부 규수(閨秀)같이 다소곳이 이별을 감내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 [심청가]에서 심봉사는 뺑덕이 네와 재혼을 한 후 남부끄러워 다른 동네로 이사를 사 산 것같이 구성되어 있다. [수궁가]에서 토끼 화상을 그리는 부분도, 전복의 전신이 꿩이어서 토끼를 알기 때문에, 전복이 일러주어서 화공(畵工)이 그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김연수는 판소리계에 발을 들여놓은 직후부터 [조선성악연구회], [조선 창극좌], [김연수창극단], [우리국악단]에 이르기까지 창극 관련 단체를 만들고, 운영하였다. 마침내 그는 1962년 초대 국립국극단장(현 국립창극단장)까지 오른다. 


 이 시기 판소리의 대응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판소리의 극화, 곧 창극이라는 새로운 양식의 개발이다. 판소리의 창극화는 근본적으로 청취의 대상인 판소리를 관람의 대상으로 바꾸는 과정이었다.


김연수는 극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연기에도 타고난 소질이 있었다. 거기에다 대본을 쓸 수 있는 능력까지 구비하고 있어 소리꾼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김연수의 소리에 대해서 얘기할 때 제일 먼저 들어야 할 점이 바로 이 극적(劇的) 성격이다.


판소리 다섯 바탕의 사설을 정리하면서, 배역에 따라 분배하고, 그 배역을 표시하였으며, 배역이 없는 해설에 해당하는 부분은 효과로 처리하는 등 판소리 사설을 완전히 연극적 관점에서 재정리하고 있으며 다양한 부침새 기교의 사용이 특징이 있는데 '대머리 대장단'은 동편제 소리꾼들이 즐겨 사용하는 부침새로 규격적인 부침새라 할 수 있고, 가장 다양하게 구사한 사람은 정정렬이며 서편제 소리꾼들이 즐겨 사용하는 엇부침의 기교도 다양하게 활용했다.


결론적으로 김연수는 의식에서는 신재효를 추종했지만, 판소리의 실제에 있어서는 정정렬을 따르고자 했던 것이다.


광주에 거주하시면서 호남의 예술문화 창달에 노력을 다하고 계시는 명인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끝으로 광주예총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방성춘 명인> :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광주예총과의 인터뷰라 사적인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시작부터 지금까지 많은 신경이 쓰였어요. 제가 아는 광주 예총은 각 분야별 예술인이 모여 활동하는 곳으로 국악협회도 가입되어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다양한 각 각의 협회 분야만 생각하지 말고 일제강점기에 농민이 음악으로 농악(農樂)이라고 천시(賤視)받던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음악이 이렇게 머물러서는 결코 안 되지요. 우리나라 대중음악만 봐도 세계로 뻗어가는 방탄소년단이 지구촌을 제패(制霸)하면서 아이돌 가수로 이젠 K-POP이 전 세계적으로 대세이잖는가요?


거기에 우리 지역에서는 G-POP이 매년 꾸준하게 경연을 통해 이 지역의 스타를 양성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랄만한 사건인가요? 광주 예총회장께서 이를 적극 지원하실 수 있도록 부탁드리면서도 정작 우리 것의 소중함을 더 각인되도록 K-POP이 G-POP과 함께 잘 버무러져 다양한 퓨전국악의 탄생과 퓨전국악 공연으로 ‘흥보가 기가막혀’와 같은 퓨전식 믹싱 음악으로 퓨전 국악 판소리의 장려운동의 효시가 되어 우리 음악에 대해 많은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시고 적극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방성춘 명인> : 네!! 감사합니다. 예술인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앞으로 사는 동안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을만한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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