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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고종 즉위 40주년 (9)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1902년 가을, 콜레라 발생해 즉위 40년 경축식 미뤄
등록날짜 [ 2021년06월22일 09시42분 ]

1902년 가을에 전국에 콜레라가 퍼졌다. 이러자 9월 20일에 고종은 조령(詔令)을 내려, 백성들의 질병을 구제하도록 명하면서, 즉위 40년 경축식을 내년에 하도록 명했다.  

“요즘 몹쓸 병 기운이 크게 퍼지는데, 이런 때에 각국의 사신들이 먼 길을 오는 것도 심히 불안한 노릇이다. 경축 의식을 내년에 가서 택일하여 거행하도록 분부하라. 이어 임시 혼성 여단(渾成旅團)을 해산하며 수도에 불러올린 각 진위대(鎭衛隊)를 도로 내려보내라고 명하였다.”(고종실록 1902년 9월 20일 2번째 기사)  

황현도  『매천야록』에 진위대 소집을 기록했다.  “강화,원주,대구,진주,수원,전주의 진위대에서 1,500명을 차출하였다. 장차 여단(旅團)을 편성하여 경축연(慶祝宴)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진위대의 병사들이 올라오면서 도로가 소란하였으나, 얼마 후 경축연의 예식 일자가 미루어지자 다시 되돌아가라는 명을 내렸다.”
고종항제 출처: Public domain

10월 3일에 고종은 연회 날짜를 다시 내년 봄으로 미루어 정하라고 명하였다. 10월 4일에 장례원경 서리(掌禮院卿 署理) 이용선이 아뢰기를,"왕위에 오른 40돌 경축 의식을 음력 계묘년(1903) 4월 4일(양력 4월 30일)로 날을 받아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고종실록 1902년 10월 4일 4번째 기사)


기념식은 1903년 4월 30일로 연기되었으나, 기념우표는 제 날짜인 1902년 10월 18일에 예정대로 발행되었다. 대한제국 전환국은 3전짜리 우표 5만장을 발행했는데 등황색에 왕관과 이화가 디자인되어 있었다.  

아울러 정부는 기념식을 위해 포드 자동차를 구입했다. 탁지부 대신이 알렌 공사에게 협조를 요청했는데, 알렌은 미국의 자동차 딜러에게 부탁하여 포드 자동차가 인천항에 들어왔다. 그런데 국내에는 운전사가 없어 일본인을 고용했다 한다. (김용삼 지음, 지금 천천히 고종을 읽는 이유, 2020, p 336) 그래서 자동차 업계는 1903년을 한국 자동차의 원년으로 보고 있다.

한편 1903년에 러시아 외교관 베베르가 서울에 왔다. 그는 1885년부터 1897년까지 12년간 주한 러시아 공사로 재직하면서 1896년의 아관파천을 주도했다. 베베르는 다음과 같이 소감을 남겼다.

“서울에 5년 만에 다시 와 보니 거리의 남루한 복장이 이전보다 두 배나 많았다. ... 고종 황제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엄비를 따라 미신을 신봉하고 있었다. 황제는 아주 호감을 주는 인물이지만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중략)


정치적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다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한국인은 러시아, 일본 기타 열강의 국제관계 및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나라가 아떤 처지에 놓였는지 제대로 몰랐다. ...


관직은 강대국과 종속관계에 놓여 독립심이 박약하고 의타심이 강하다. 관직은 공적과 능력에 따라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따라 결정됐다. (후략)” (강준만 지음, 한국 근대사 산책 4, 인물과 사상사, 2007, p19)

그런데 1903년 4월 10일에 고종은 4월 30일에 예정된 칭경 예식을 다시 가을로 연기하라고 조령을 내렸다. 영친왕 이은이 천연두에 걸린 것이다.“궁중에 천연두의 증세가 있는데, 이런 때 각국의 사신을 접견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편안하지 않다.


칭경(稱慶)하는 예식은 가을에 날을 받아 거행하라” (고종실록 1903년 4월 10일 2번째 기사)  
경축식이 20일 앞두고 임의로 연기되었으니 예식을 준비하는 관계자는 우왕좌왕하였다.   
 

황현은 『매천야록』에 이렇게 적었다. 
“경축식을 다시 가을로 미루어 정하고, 각국의 축하 사절을 되돌려 보내었다. 이은이 마마병(천연두)을 앓고 있어 대궐 안에는 꺼리는 일이 너무 많아 100일 동안 재계를 하고 있어 왕실의 종친들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었다.

외국 사절을 접견하면 불결한 일이 있을까 싶어 경축연을 가을로 미룬 것이다. 서양의 사절 중에 이미 도착한 사람에게는 우물쭈물 변명해 사례하고 여객선 비용을 배상하여 주었다. 이때 마마신에게 굿을 하면서 금전과 비단을 여섯 수레나 실어내기를 세 번이나 되었다.”

한편 경축식과 관련하여 부작용도 일어났다. 역시 『매천야록』에 나온다. “경축연의 경비가 궁색하여 다시 경강(京江)의 상선(商船)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였다. 대선(大船)은 30냥, 중선(中船)은 22냥, 소선(小船)은 15냥이었다.

일본 상인이 경축 기념잔(盞)을 제조하여 서울에서 판매하였다. 그들은 우리 조정이 날마다 경축행사를 꾸미고 있는 것을 보고 백자 기념잔 10만개를 만들어 그 잔에다가 금으로 새기기를, 「壽齊南山 福溢漢水(수제남산 복일한수 : 수는 남산과 가지런하고, 복은 한강수처럼 넘치리)」라고 하였다. 황제를 송축하는 글귀라고 하지만 외국인들에게 조롱당함이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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