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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해방정국 3년 (8)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백범 김구,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다.
등록날짜 [ 2022년01월21일 09시22분 ]

1945년 11월 23일에 김구·김규식·이시영·장준하를 비롯한 중경 임시정부  요인 1진 15명이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였다. 김구 일행은 미군 수송기를 타고 오후 4시경 김포 비행장에 도착했고, 5시 조금 지나 서대문 경교장(지금의 강북삼성병원 본관 건물)에 도착했다. 환영 행사도 없었고 인파도 없었다. 이튿날 「서울신문」엔 이런 기사가 나왔다.
 

“김구 일행의 숙사로 되어있는 죽첨정 최창학 댁은 수일 전부터 말끔히 치워져 먼지 하나 없이 청결하였다. 숙사 안팎에는 미리 들어와 있는 광복군의 일 소대가량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지난 5일 일행이 중경을 떠나 상해로 왔다는 소식을 들은 후 오늘인가 내일인가 하고 기다리기에 가슴을 조이던 환영준비위원회에서도 23일 오후까지도 전연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오후 다섯 시 다섯 대의 자동차가 갑자기 최창학 댁 정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순간 이 주위는 조심스러운 가운데도 몹시 바쁘고 당황해졌다. 여섯 시 방송에 뜻하지 않게 하지 중장의 발표에 의한 김구의 귀국을 전하자 서울시민들은 저으기 놀래었고 또 반가웠다.
 

행인들은 일부러 죽첨정 동양극장 앞을 지나다가 발을 멈추고 숙사의 대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대문 앞에는 엠피(MP)와 광복군이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이날 밤은 일체 어떠한 사람도 면회를 시키지 않기로 하고 여로의 피곤한 몸을 쉬기로 되었다. (<서울신문> 1945년 11월 24일자)


정각 오후 6시에 하지 사령관의 짧은 성명이 라디오로 방송되었다. "오늘 오후 김구 선생 일행 15명이 서울에 도착하였다. 오랫동안 망명하였던 애국자 김구 선생은 개인 자격으로 서울에 돌아온 것이다."
 

6시가 조금 지나 이승만이 찾아왔고, 뒤이어 기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김구도 기자들과 몇 마디 문답이 있었지만 말을 몹시 아꼈고, 8시에 선전부장 엄항섭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엄항섭의 기자회견문은 이렇다.
 

"27년간 꿈에도 잊지 못하던 조국강산을 다시 밟을 때 나의 흥분되는 정서는 형용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 조국의 독립을 전취하기 위하여 희생되신 유명 무명의 무수한 선열과 아울러 우리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피를 흘린 허다한 동맹국 용사에게 조의를 표합니다.
 

다음으로는 충성을 다하여 3000만 부모 형제자매와 우리나라에 주둔해 있는 미국과 소련 등 동맹군에게 위로의 뜻을 보냅니다. 나와 나의 동료들은 과거 2·30년간을 중국의 원조 하에서 생명을 부지하고 우리의 공작을 전개해왔습니다.

더욱이 금번의 귀국에는 중국의 정개석 장군 이하 각계각층의 덕택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국에 있는 미군 당국의 융중(隆重)한 성의를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및 나의 동료는 중·미(中·美)양군에 대하여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또 우리는 우리 조국의 북부를 해방해 준 소련에 대하여도 동양(同樣)의 경의를 표합니다. 금번 전쟁은 민주를 옹호하기 위하여 파시스트를 타도하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의 승리의 유일한 원인은 동맹이라는 약속을 통하여 상호단결 협조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번 전쟁을 영도하였으며 따라서 큰 전공을 세운 미국으로도 승리의 공로를 독점하려 하지 아니하고 동맹국 전체에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겸허한 미덕을 찬양하거니와 동심참여한 동맹국에 대하여도 일치하게 사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작풍은 다 우리에게 주는 큰 교훈이라고 확신합니다. 나와 나의 동료는 각각 일개의 시민 자격으로써 귀국하였습니다. 동포 여러분의 부탁을 받아 가지고 노력한 결국에 이와 같이 여러분과 대면하게 되니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에게 벌을 주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열렬하게 환영해 주시니 감격한 눈물이 흐를 뿐입니다.
 

나와 나의 동료는 오직 완전히 통일된 독립자주의 민주국가를 완성하기 위하여 여생을 바칠 결심을 가지고 귀국했습니다. 여러분은 조금이라도 가림 없이 심부름을 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유익한 일이라면 불속이나 물속에라도 들어가겠습니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기쁘게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비에트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북쪽의 동포도 기쁘게 대면할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함께 이 날을 기다리십시다. 그리고 완전히 독립자주할 통일된 신민주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공동분투합시다."

(<자유신문> 1945년 11월 24일 자)
 

참고로 '경교장'은 김구가 나중에 붙인 이름이고, 당시는 죽첨장'이라 불렀다. 저택 소유자 최창학(1891~1959년)은 일제시대에 많은 금광을 보유한 친일파였다. 그런데 그는 경교장 제공뿐 아니라 우익에 많은 자금을 내놓은 덕분인지, 김구가 죽은 직후인 1949년 8월 반민특위의 불구속 조사를 받고 큰 제재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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