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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9회 수은강항선생 국제학술세미나 개최

󰡔간양록󰡕 당연하게 보물로 그 가치가 높아 국가 보물지정 마땅하다고 강조
등록날짜 [ 2022년11월12일 10시33분 ]
  2022년 제3회 강항문화제의 일환(一環)으로 제9회 수은강항선생 국제학술세미나(이하 학술세미나)가 11월 11일 영광문화원 1층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개회식에 이어 강종만 영광군수는 문화관광과 직원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이 뒤쳐져 있음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어 강항로드(ROAD)탐방에 문화관광해설사를 대거 참여시키기로 했다며 문화와 역사의 소중함으로 그 가치를 잘 인식해야 한다며 일본에서는 신(神)이 된 강항에 대한 역사인식을 새롭게 각인해야하는 시점임을 강조해 말했다.

 
제9회 수은강항선생 국제학술세미나 기조발표

학술세미나의 주제는 “「강항평전」과 「수은강항선생 일대기」로 본 문적의 가치”로 기조(연설)에는 수은강항선생 일본연구회 사토신치로 회장(통역 강용희 이사 재일교포)이 줌(ZOOM)을 통해 1597년 일본에 피로되어 들어온 강항선생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갖게 된 배경설명에 이어 현재에 와서

2019년부터 맞이한 레이와 시대(令和) 원년을 기점으로 첫 위령제를 지냈고 동년 11월에 일본연구회 일행들이 한국에 건너가 NPO 결성을 통해 한일 민간우호협력을 약속했는데 2021년 그 결실을 맺어 【한・일우호협력 아이】라는 NPO단체로 거듭 날 수 있었다고 밝히면서 2022년에 들어와서는 한일 공동 강항문화제의 일환으로 위령제를 추모제로 격상해 모시고 있다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학술세미나에서 좌장 및 토론자로 박명희 전남대 (강의)교수가 매끄럽게 진행을 맡아줘 참신한 이미지를 더했다.
 
사토회장에 기조연설을 듣고 박명희 진행자는 첫째, 오즈성에 ‘강항 현창비’가 세워졌는데 이 현창비가 세워지게 된 경위에 대해 알고 계신 내용이 있으면 말씀과 일본 현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혹시 아시는 부분이 있으시면 말씀해 달라고 했으며
 
둘째, 강항 선생은 일본의 복견성에 있을 때 등원성와와 적송광통 등의 승려에게 유학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등원성와와 적송광통의 학맥(學脈)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그리고 셋째, 앞으로 일본에서 강항 선생을 널리 알리는 일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 질의했다.
 
이에 사토회장은 첫 번째 답변으로, 오즈성에 ‘강항 현창비)350여만엔 소요경비)’는 최초 한국에서 선양사업으로 활발히 활동중인 이을호선생의 영향이 매우컸고 수은강항선생 일본연구회장인 무라까미 쓰네오가 재일교포인 신기수선생과 활발한 활동을 통해 이뤄졌으며 당시 오즈시장인 마츠다시장외 16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고 현재 오즈시에서는 강항선생의 성리학보다는 너커에 도쥬에 의한 양명학이 더 주류로 자리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다만 호리요안을 비롯한 기몬파 4천왕이 후지와라 세이카(서자출신으로 승려로 귀속)의 학풍을 잇고 있었다.

이어, 도쿄 국립공문서관 내각문고의 『강항휘초』와 오사카와 교토 대학도서관에 『등원성와 전집』에서만 수은선생의 흔적을 엿볼 수 있음을 실토했다.

이후 등원성와와 적송광통의 학맥(學脈)은 야마자키 안사이 학풍에 의해 묻이고 특히 이곳 오즈에서는 나카에 도쥬의 양명학에 뭍혀버린게 사실이며 향후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에 역사적 진실을 찾기위해 한일교류의 첨단에 민간단체가 적극 나서 일본에서 강항 선생을 널리 알리는 일이 시급한 현실이라고 답했다.

 
- 조선의 선비정신과 일본 무사도 정신의 형성관계 고찰

이어 발제에 나선 기세규 광주유학대학교수(성균관 광주유도회광역시본부 교육원장)는 조선의 선비정신과 일본 무사도 정신의 형성관계 고찰(수은 강항선생의 유교 전파를 배경으로)로 수은강항선생으로 인해 전파된 신유학이 일본에 뿌리내리게 된 원인과 내용을 열거하면서 조선의 선비정신이 궁극적으로 17세기초반 일본 무사들에게 영향을 줘 무사도를 형성했음을 발표했다.
 
이 발제에 토론자로 나선 조강봉(전, 동강대 국문학 교수, 박사)국어학박사는 “ 강항의 선비정신이 사무라이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면 그에 앞서 일본 사상의 주류가 성리학이 되어야 하고 정치의 중추 역할을 하는 관리들도 선비정신이 깊게 배인 후에야 비로소 사무라이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좀 더 부각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또한 조선의 선비정신은 인의예지(仁義禮智), 충효(忠孝)의 정신을 바탕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誠意) 정심(正心)에 따른 옳고 그름에 대한 발로다.

즉 임금께 충성하지만 임금의 말과 행동이 바르지 못할 때는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죽음도 불사한다. 그에 반해 일본의 사무라이는 오직 주군에 대한 충성(忠誠)이다.

일본 사무라이의 선비정신이 조선의 선비정신을 어느 정도 수용되었는지 좀 더 구체적인 자료가 요청된다.”고 질의해 다시 기세규 발제자의 거듭된 선비정신에 대한 깊은 고뇌(苦惱)와 발제문을 다듬으면서 많은 고민을 했음을 실토하면서 뚜렷하게 남긴 수은강항의 유교전파의 업적이 리트머스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표현했음을 거듭 강조해 설명했다.
 
 
-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간양록(건거록)󰡕의 가치와 의의

이어 코로나로 인해 참석하지 못한 김숙희 전남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연구위원의 발제문을 요역해 대신 발제에 참여한 강대의 간사는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간양록(건거록)󰡕의 가치와 의의 발제문에 대해 특히 발제문 본문에서

󰡔간양록󰡕의 구성체제와 내용을 분석했고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 󰡔간양록󰡕의 가치를 평가했다며 󰡔간양록󰡕은 서발문(序跋文)과 「왜국지도(倭國地圖)」를 제외하고 「적중봉소(賊中封疏)」, 「적중문견록(賊中聞見錄)」, 「고부인격(告俘人檄)」, 「예승정원계사(詣承政院啓辭)」, 「섭란사적(涉亂事迹)」 등 총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먼저 강조했다.
 
맺는말로 “강항의 문학성을 중시하는 시각, 󰡔수은집󰡕에 수록된 시문을 문학적으로 분석하여 그 문예적 의미를 밝히는 연구가 활발하다. 일본 유학자에 대한 인식을 살피는 데 치중한 경향도 보인다. 강항은 일본의 정치제도, 경제생활, 법제도, 기술, 언어, 문자, 도시구조, 문화, 풍속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면서 자신이 견문한 바를 기록에 남겼음에도 연구 영역이 문학 분야와 유학 전파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강항의 기록을 근거로 임진왜란사, 조선 후기 사행록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발표되었다.

그 중 문학과 유학 전파에 대한 부분은 제외하고 임진왜란기 해외에서 포로를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남긴 포로 실기류에서 가장 앞선다는 점, 그가 일본에서 목격한 일본의 다양한 정보를 조정에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체적으로 서술하였다는 점, 다음으로 그가 전쟁과 전쟁경험을 정확하게 인식하였다 점, 조선 후기 조선통신사 일행에게 일본에 대한 지식의 축적과 사고의 전환을 제공하였다는 점 등등 사료적 가치에 대해 기술하기도 하였다.”며 그 가치와 의의에 대해 대신 밝혔다.
 
이 발제에 토론으로 나선 김윤호 백두산문인협회장(행정학박사, 역사학회 회원)은 수은강항선생의 문적의 가치는 그야말로 국보급이며 김숙희 발제자가 논한 바와 같이 󰡔간양록󰡕은 당연하게 보물로 그 가치가 높아 국가 보물지정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토론에 참석하신 정환담 전남대 명예교수(전, 전남대 법대학장, 광주유교대학장)께서 질의하신바와 같이 '강항정신은 지역을 떠나 영・호남이 하나가 되고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는 인류애라고 강조'하며 매년 강항문화제에 강항선생 글짓기, 그림그리기(서예)대회를 제안하면서 '서울에 올라가서도 항상 향토애를 강조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명희 좌장(전남대 교수)은 끝까지 남아 줌(ZOOM)으로 참여한 수은강항선생 일본연구회 사토회장과 이사 강용희 선생(통역)에게 수고했음에 고마움을 표하고 참석해 주신 내빈들께도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학술세미나의 대미를 장식했다.


<편집자 주>
2022/11/11でのセミナーの内容
 
1顕彰碑がどのように建てられたかについて何か知っているなら、教えて下さい。そして、地元の日本人は顕彰碑とカンハン先生についてどう思いますか。それについて何か知っているなら教えて下さい。
현창비가 세워지게 된 경위에 대해 알고 계신 내용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현창비와 강항 선생에 대해 일본 현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혹시 아시는 부분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A)姜沆の名前が日本の新聞紙上に掲載されたのは1980年9月1日との事。朝日新聞の文化欄に「韓日繋いだ儒学姜沆の遺跡を探る」と題する、国立光州博物館館長李乙浩先生の文が最初であったとの事。その後地方紙にもしばしば取り上げら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A) 강항의 이름이 일본 신문지에 처음으로 실린 것은 1980년 9월 1일 아사히신문의 문화란에 “한일을 연결한 유학자 강항의 유적을 찾는다” 라는 제목으로 국립광주박물관장 이을호 선생님의 글이 처음으로 실렸습니다. 그 후 지방지에도 자주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
 
1989年2月23日NHKテレビ「ETV8」で放送された「儒者姜沆と日本」が全国に知らしめる決定的な役割を果たします。
「姜沆の記念碑を建てよう」という李乙浩先生の声は、日・韓両国にうねりのように広がって行きました。この研究に命を懸けた丁鐘俅(チョンジョンク)先生の意志も継いで、「姜沆の記念碑を建てる会」(代表辛基秀氏)が結成されました。場所は、愛媛県大洲市の大洲城跡と決定しました。
 
1989년 2월 23일 NHK TV 'ETV8'에서 방송된 '유학자 강항과 일본'이 전국에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강항의 기념비를 세우자'는 이을호 선생님의 목소리는 한·일 양국에 커다란 파도처럼 퍼져나갔고, 이 연구를 위해 일생을 바친 정종구 선생님의 유지도 이어져 강항 기념비를 세우는 모임(대표 신기수)이 결성되었습니다. 장소는 에히메 현 오스시의 오스 성터로 결정했습니다.
 
1990年3月11日、その序幕式が挙行されました。韓国からは、李乙浩先生を始め、国会議員二名を含む32名が出席、在日韓国人、文化人、大洲市関係者などを合わせ、160人が参列しました。
大洲市舛田興一市長は、除幕式に祝辞を寄せ、姜沆の功績をたたえた上、「姜沆先生は、時代を越えて、今も両国の絆を結ぶ役目を果たしておられるものと思います。大洲市がこうして、日・韓両国親善の橋渡しの役目を担う事になり得るならば、誠に光栄なことであると思います」と述べました。当時、多くの努力により、この事業を進められるにあたり、大洲市の行政と共に
大洲市民の方々を始め多数協力がありました。
寄付金が約500万円を集まり、その内、350万円で記念碑が建てられたとの事です。
1990년 3월 11일, 그 제막식이 거행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을호 선생을 비롯해 국회의원 2명을 포함한 32명이 참석, 재일한국인, 문화인, 오즈시 관계자 등을 합쳐 160명이 참석했습니다. 오즈시 마츠다 요이치 시장은 제막식에 축사를 전해 강항의 공적을 칭송하며, “강항 선생님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양국의 유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오즈시가 이렇게 한·일 양국 친선의 다리의 역할을 담당하게 될 수 있다면 정말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많은 노력으로 이 사업을 진행했고,  오즈시의 행정과 함께 오즈 시민 분들을 비롯해 다수 협력이 있었습니다. 기부금이 약 500 만엔을 모았고, 그 중 350 만엔으로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2.藤原惺窩と赤松など僧侶に儒学を伝えた事が知られています。
その後、藤原惺窩と赤松さんの学派(学統、学縁)どのように進んでいったか知りたいで
す。
후지와라 세이카와 아카마츠 등의 승려에게 유학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후 후지와라와 아카마츠의 학맥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고 싶습니다. 
 
1958年、姜沆(32歳)、藤原惺窩(38歳)、赤松広通(37歳)
藤原惺窩は、権力のもとに庇護されることを極度に嫌った様子があります。徳川家康から入幕に対しては、辞退をしています。晩年の20年近くを、京都郊外(市原)の陋屋にかくれ、名声を求めず、清貧に甘んじ、弟子たちを相手にして、読書と著述の生活を送っています。彼の弟子の林羅山が、後の徳川幕府の庇護を受け、飽食の学者となったのとは、甚だしく対照的です。
 
1958년 강항(32세), 후지와라 세이카(38세), 아카마츠 히로도리(37세) 후지와라 세이카는 권력하에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도쿠가와 막부에 들어 가지고 않고  사퇴를 했습니다. 만년의 20년 가까이를, 교토 교외(이치하라)의 야마야에 은둔하고, 명성을 요구하지 않고, 청빈하게 살고, 제자들을 상대로 독서와 저술의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의 제자인 하야시 라산이 나중에 도쿠가와 막부의 비호를 받고 질식의 학자가 되었던 것과는 심하게 대조적입니다.
 
藤原惺窩は、長男でもなく、庶子であったため家は継がず、上洛し相国寺に入って禅僧となり、禅と朱子学を学びました。儒学を学ぼうと明に渡ろうとするが失敗に終わりました。その後朝鮮儒者・姜沆と交流し[2]、その助力を得て『四書五経倭訓』を著し、それまで五山僧の間での教養の一部であった儒学を体系化して京学派として独立させた。朱子学を基調とするが、陽明学も受容するなど包摂力の大きさが特徴である。近世儒学の祖といわれ、門弟のなかでも特に林羅山・那波活所・松永尺五・堀杏庵の4人は惺門四天王と称された。和歌や日本の古典にも通じており、同時代の歌人木下長嘯子とは友人であったと言われます。豊臣秀吉・徳川家康にも儒学を講じており、家康には仕官することを要請されたが辞退し、門弟の羅山を推挙しました。
후지와라 세이카는 장남도 아니고, 서자(庶子)였기 때문에 상국사에 들어가 선승이 되어, 선과 주자학을 배웠습니다. 유학을 배우려고 명에게 건너려고 하는데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후 조선 유자·강항과 교류로 4서 5경 왜훈』을 저술하고, 그때까지 고산승 사이에서의 교양의 일부였던 유학을 체계화해 교 학파로서 독립시켰다. 주자학을 기조로 하지만 양명학도 수용하는 등 포섭력의 크기가 특징이다. 근세 유학의 조라고 불리며, 문제 중에서도 특히 하야시 라산, 나바 갓쇼, 마츠나가 샤쿠고 ,호리쿄안의 4명은 기몬 사천왕으로 불렸다. 와카나 일본의 고전에도 통하고 있어, 동시대의 가인 키노시타 나가코와는 친구였다고 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도 유학을 강구(講究)하고 있어 이에야스에게는 사관(史官)하는 것을 요청받았지만 사퇴해, 제자 하야시 라잔를 추거(推擧)했습니다.
赤松広通は、悲劇的な最後を遂げます。姜沆が朝鮮に帰国された年、1600年9月15日美濃(岐阜県)関ケ原の戦いで、広通は、西軍に属して出陣したが、戦いはわずか一日にして雌雄が決し、広通は、利あらずして、退去しました。
徳川家康は、広通に対して、切腹を命じました。その子孫も絶えたとの事です。
아카마츠 히로토리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강항이 조선으로 귀국된 해, 1600년 9월 15일 미노(기후현) 세키가하라의 싸움에서, 아카미츠는, 서군에 속해 출진했지만, 싸움에 져 퇴거했습니다.
 도쿠가와는 아카마츠에 대해 절복을 명령했고 그 후손도 끊어졌습니다. 
 
3.カンハン先生のプロモーションは、今後にほんでどのように発展していくだろうかその予定があれば教えて下さい。
앞으로 일본에서 강항 선생을 널리 알리는 일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A)2021年4月に大洲市にNPO法人日韓友好プロジェクト愛が結成されました。
目的は、日韓友好が第一義的ですが、その中心的には、姜沆先生の業績を讃える
事と共に、両国の総合理解を行う事業を展開するところにあります。
現在、姜沆先生の知名度は、正直、高くありません。
2019年、大洲市ロータリークラブで「姜沆先生について」の講演会を行いました
が、参加者のほとんどの方が、名前くらいで、殆どの方が、ご存じありませんで
した。大洲市のロータリークラブは、大洲市民会館の中に合って、目の前には、
姜沆先生の記念碑があったとしてもです。
但し、日本の中でも大洲市には、中江藤樹という方の功績が高いところでもあり
ます。
 
2021년 4월에 오즈시에 NPO 법인 한일 우호 프로젝트 아이가 결성되었습니다.  한일 우호가 제 일의 목적입니다만, 그 중심적으로는 강항 선생의 업적을 널리 알리는 것과 문화 교류룰 통해 한일 양국의 종합 이해를 돕고 사업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현재 강항 선생님의 지명도는 솔직히 높지 않습니다.  2019년, 오스시 로타리 클럽에서 「강항 선생님에 대해서」의 강연회를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참가자는 강항 선생님의 이름만 아는 정도였고, 현창비가 세워진것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곳 오즈는 나카에 도쥬 라는 분의 업적을 높이 사는 곳이라서 그 영향도 있습니다.
中江藤樹は、朱子学と共に陽明学を研究した日本の中では、第一人者です。
今後は、そのような儒学を中心に、韓国の文化を知る上においてもその価値を知るべき、交流が必要になって参ります。
今から30年前に大洲市長も6回に渡り、姜沆先生の故郷の霊光郡に行かれました。
この度の韓国からの訪問を通して、霊光郡と大洲市との交流が出来ることが大変望
ましいと思います。行政同志、民間同士の交流を是非とも積極的にしてゆきましょ
う。
나카에토키는 주자학과 함께 양명학을 연구한 일본에서는 제일인자입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유학을 중심으로 한국의 문화와 가치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30년전에 오즈 시장도 6회에 걸쳐 강항 선생님의 고향인 영광군을 방문했습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영광군과 오즈시와의 교류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행정과 민간 간의 교류를 꼭 적극적으로 해 나갑시다 
①来年の秋の秋祭事に大洲市行政と民間との協力のもとツアーを行う。(2022/11/)
②姜沆先生の勉強会を継続して行う。随時
③日韓交流文化イベントを行う(2023/9/)
④姜沆先生の演劇公演
 
① 내년 추향제에 오즈시 행정과 민간과의 협력하에 투어를 시행한다.(2022/11/) 
② 강항 선생님의 공부회를 계속 실시한다.
③ 한일교류문화이벤트를 실시한다(2023/9/) 
④ 강항 선생님의 연극 공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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