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독립운동 80주년 기념 시민건강걷기대회 가져
배경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단순히 광주와 나주를 통학하던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의 충돌 때문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3·1운동 이후의 기만적인 문화정책과 1929년부터 시작된 세계대공황, 1920년대 이후 노동·농민·학생운동의 성장 등 국내외의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난 것. 당시의 독립운동의 성격을 간단히 살펴보면 경제적으로는 전국적인 토지의 착취와 금융의 통제 및 민족기업이 억압되고 농업 생산물을 수탈하는 현실에서 경제적 저항 운동이 전개되었고, 이는 사회역사적인 면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차별화를 위한 내선일치 또는동조동근이란 기만적인 역사 교육에 반대하고 민족의 자주독립을 얻기 위함이었다. 과정 이러한 항일 운동은 일본의 억압과 무차별 행동으로 인하여 학생들에게 큰 반란심을 받게 되었으며, 그 불길은 전국의 학생들에게 들불처럼 번져갔다. 전국적으로 약 149개교 54,000여 명이 참여하였다. 이 로 인해 퇴학 처분 530여명, 권고 퇴학 40여명, 무기 정학 2,300여명, 자진 퇴학 350여명, 강제 전학 290여명의 희생자가 났다.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은 전국의 학생 성금 325만 4천 3백 8환으로 1954년 6월 10일 준공되었다.
의의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나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본제국주의의 지배에 저항하여 일어났던 대표적인 민족운동 가운데 하나였으며, 그규모나 영향 그리고 역사적 의의에서 3·1운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건이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회적이고 우발적인 봉기가 아니라 1926년 이후 꾸준히 지속되어 온 학생시위의 경험과 사회주의적 비밀학생조직의 조직력에 바탕을 두고 발생한 1920년대 학생운동의 결산이자 그 정점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심과 민족들의 한마음을 알수있는 개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