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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반란군이 국가 유공자로 둔갑 지역민 폭행까지

지역주민들 “빨치산 활동은둔 중 경찰에 총 맞다” 의혹제기
등록날짜 [ 2011년05월26일 13시37분 ]

6.26 당시 빨치산 활동을 했던 반란군 가족이 국가 유공자로 등록 돼 연금수령 등 각 종 해택을 누리고 있어 보훈의 의미상실과 함께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허위 국가유공자 L씨가 경찰에 의해 총상을 입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

 전남 보성군 복내면에 사는 L씨(77세 남)는 지난 63년 1월 11일국가 유공자를 신청하여 같은 해 5월22일 국가 유공자로 등록이 됐다.

복래면 주민 A씨에 따르면 당시 L씨는 대한청년단 전남 보성군 복내면 단무소속 부상자로 내무부 관리국장 전결로 발행한 전공상 확인서를 1963년 1월 11일자 발부받아 국가 유공자로 등록된 것이다. 

그러나 유공자로 등록되기 위해 전공을 확인 할 수 있는 L씨의 전공상확인서는 국가기록원, 국가보훈처 등 어디에도 없다.  

L씨와 관련하여 국가 보훈처에서는 “국가유공자 요건심사 시에는 경찰청등 소속기관에서 확인하여 통보한 객관적인자료에 따라 의사 변호사 등 전문 위원이참석하는 보훈 심사회의에서 심의의결 한다”고 밝히고 L씨의 전공에 대한 것은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L씨는 “단무소속, 전공상 확인서에 대해서는 모른다” “대한 청년단은 20살 이전에 한 것 같다”며 횡설수설하고 당시 활동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회피했다.  

L씨와 관련해 마을주민 B씨는 “인공 때(6.25) L씨의 작은 아버지와 내가(B씨) 같이 활동하다 경찰에 잡혀 당시 송모 복래 지서장에게 인민재판을 받아 L씨의 작은 아버지는 다리위에서 사살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은아버지의 죽음을 본 L씨가 경찰에게 보복한다고 반란군 활동을 했는데 복래면에서 제일 연금을 많이 받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며 개탄했다.  

또 다른 주민 J씨는 "60년대 당시 복래면 보성 원호청에 다니는 최 모씨와 관계해 국가 유공자로 등록된 것 같다“며 ”자유당 때는 쓰는 것이 법이다“며 허위국가유공자 의혹을 제기했다.  

마을주민 B씨는 “인공당시 L씨가 중학생이었던 것 같다”며 “대한청년단 단무소속 활동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당시 L씨 집 마당이 온통 대밭이었는데 반란군 두목이었던 작은아버지를 잡기위해 경찰들이 잠복해 있다가 결국 L씨가 경찰의 총에 맞아 그렇게 된 것을 브로커와 연결해 허위로 국가유공자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허위가 아니라면 국가에 보존되어야할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도 없고 내무부 장관이 아닌 국장 전결로 돼있어 조작일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주민 C씨는“L씨가 과거에 자기 아버지어머니까지 폭행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폭행, 폭언, 욕설을 일삼아 왔다”며 “이런 것이 빨갱이 짓이 아니고 뭐냐”고 반문했다.  

한편 대한청년단은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전국에 산재해 있던 각 청년단체들을 하나로 통합해 결성한 단체로 이승만이 직접 총재직을 맡았고 장택상(張澤相)·지청천(池靑天)·전진한(錢鎭漢)·유진산(柳珍山)·신성모(申性模)·노태준(盧泰俊) 등이 최고위원으로 추대되었다.  

대한청년단은 광범위한 조직망을 이용해 200만 단원을 확보하는 전국적 조직체계를 갖춘 유일무이한 청년단체가 되었다.  

그러나 청년단체로서의 독자적인 역할은 상실한 채 주로 이승만 지원활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성격은 다음과 같은 선언문에서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총재 이승만 박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우리는 피와 열과 힘을 뭉치어 남북통일을 지급(至急)히 완수하여 대한민국의 국위를 천하에 선양하기를 맹세한다. 민족과 국가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의 도구배(徒狗輩)를 남김없이 말살하여버리기를 맹세한다."  

1950년 1월 내부분열로 최고위원회가 폐지되고 단장제로 바뀌어 신성모가 초대 단장으로 추대되었다.  

제2대 단장으로 민족청년단계열의 안호상(安浩相)이 임명되면서 각 계파간의 갈등이 심화되었으나 김윤근(金潤根)이 제3대 단장으로 취임한 이후 해소되었다. 한편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청년단을 법적 근거도 없는 청년방위대라는 반(半)군사조직으로 만들어 향토방위에 투입시켰다.  

그리고 1·4후퇴시에는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설치령에 따라 이 조직을 국민방위군으로 재편해 국민방위군을 조직·이동·훈련시키는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김윤근 단장(국민방위군사령관)을 비롯해 군사실무경력이 부족한 간부들에게 부여된 과중한 임무는 '국민방위군사건'(20여 만 명의 국민방위군에게 배당되는 자금을 소수의 간부들이 착복한 사건)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낳았고, 그 책임을 지고 5명의 주요간부가 처형되면서 대한청년단은 극도로 약화되었다.  

그후 제4대 단장 안호상과 제5대 단장 유지원이 재건을 모색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1953년 9월 이승만은 향토방위를 목적으로 한 민병대의 창설과 전국의 청년들을 민병대에 규합한다고 발표했고, 이에 따라 1953년 9월 10일 이승만의 명령으로 대한청년단의 해산이 선포되었다. 이로써 해방 후 8년 동안 지속되어오던 남한에서의 우익청년단체의 활동은 그 막을 내리게 됐다. (자료출처 : 다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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