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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4.19혁명과 한국통일 문제’ 통일꾼 이영일 한중문화협회장에게 듣는다.

4.19혁명 52주년 기념 연설 중에서..
등록날짜 [ 2012년04월23일 17시25분 ]
이영일 한중문화협회 회장- 이영일 회장은 4.19당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3년생으로 서울대 시위 주동자의 1인이며 국토통일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하면서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3선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현재는 한중문화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사단법인 4월회 고문이다. 1. 들어가면서

우리는 어제로 한국 민주주의의 새 시대를 연 4.19 혁명 52주년을 기념했다. 4월 혁명은 그 당시의 상황이나 진행과정, 발생의 동기나 성립의 명분으로 보아 한마디로 국민들의 투쟁을 통해 독재 권력에 빼앗긴 주권을 되찾은 민주혁명이다.

이때부터 민주주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슴 속에, 뇌리 속에 뿌리내린 가장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정치이념으로 정착되었다. 대한민국은 1948년 5월 10일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제정한 헌법에 의거, 민주공화국으로 탄생했지만 4월 혁명이 있기 전까지는 민주주의가 이 나라의 정치이념, 정부형태를 결정하는 값진 정치원리라는 것을 국민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국민들이 나라의 주권자라는 의식도 확립되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한국은 솔직히 말해서 전체유권자 중에서 西歐的 오리엔테이션을 다소라도 가진 사람들은 겨우 3%내외였고 文盲率(Illiteracy)도 정부수립과 함께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의 하나였다. 경제수준도 오늘날 東部아프리카 수준보다 결코 높지 않았다.

바꾸어 말하면 당시의 한국은 서방적의미의 민주주의가 성장, 발전할 조건을 거의 갖지 않은 상태 하에서 민주주의 헌법을 갖게 되었고 국민들도 스스로가 나라의 主權者임을 각성하지 못한 상태 하에서 민주정치를 만나게 되었다. 이 결과 당시 한국의 민주정치는 여러 가지 불비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정당을 결성,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회를 구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계도, 문맹퇴치, 농지개혁 등을 추진하면서 민주주의 정치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초대대통령 李承晩박사는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통치구조가 붕괴된 정치공간에, 경제적으로는 폐허처럼 변한 박토(薄土)에서 새로운 민주국가건설을 추진하였다. 더욱이 동서냉전의 격화로 국토가 남북으로 갈리고 미‧소 양국의 군대가 군정을 펴는 상황에서 건국의 길을 열어야 했다. 解放政局의 혼란과 사상대립으로 갈라진 국론을 통일하면서 민주국가를 세워나갔다.

여기에 곁들여 공산분자들이 펼치는 建國妨害工作과 테러에 맞서서 國家建設(Nation Building)을 추진했다. 정부수립 3년 후에 6.26동란이 발발, 민주주의가 발전할 경제적 기초는 철저히 붕괴되었고 정부는 비상사태에 대응하는 危機정부로 변질되었다. 휴전과 전후복구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정치(지방자치 포함)는 형식면에서는 전쟁 전 수준으로 돌아왔지만 국가의 주권은 사실상 관료들의 손으로 행사되었다.

당시 80대 노령의 이승만 대통령은 민주국가에서 국민들이 선택한 대통령이라기보다는 前 민주주의 시대의 國父(Landes Vater)로 자신을 위치지우는 당과 관료들에 둘러싸였다. 이들 관료실권세력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시키는 3선 개헌을 무리하게 추진하였고 정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의 권리를 짓밟는 선거부정을 공공연히 자행하였다.

그러나 이승만대통령 치하에서 진행된 민주화 교육과 훈련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의 불법, 부정에 항의할 정치능력을 향상시켜왔기 때문에 마침내 전 국민들의 반정부 궐기로 이승만 정권은 퇴진하였다. 이 당시 한국의 사회계층구조상 해방이후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과 내외정세에 대한 정보를 갖게 된 대학생들이 자유당 정권에 항의하는 민주투쟁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으며 여기에 한국사회의 대다수의 지식인집단들과 야당도 합세하였다.

특히 대학생들은 사회계급(Social Class)이 아닌 사회적 신분(Social Status)집단이기 때문에 계급적 이해관계에 얽매임 없이 국민적 정당성을 대변할 수 있었다. 3.15부정선거를 규탄한 학생시위는 결국 독재정권을 타도한 학생혁명으로 발전하였다. 이 점에서 통상 피지배계급이 지배 계급을 뒤엎는 사건으로 정의되는 혁명에 관한 보편적 개념과 4.19혁명과는 그 양상과 본질이 여러 면에서 다르다.

즉 혁명의 주체가 계급적 이해(利害)대립을 혁명의 동력(動力)으로 삼지 않았고 특정계급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체국민의 공의(公義), 즉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궐기한 것이다. 이 때문에 4.19혁명은 ‘위로부터’,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아니고 지식인들이 중심이 된 “측면으로부터의 혁명”이라는 평도 듣는다. 나는 4월 혁명을 한마디로 민주혁명으로 정의한다. 우리는 반만년 역사를 통해 주권이 국민에게 있어본 일이 없었다. 항상 1인의 자유는 있지만 萬人의 자유가 부정되는 동양적 專制政治 하에서 살아왔다. 日帝로 부터의 해방과 건국은 법률상 국민에게 주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정치현실에서는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권력을 집행하고 있던 관리나 공무원들이 주권을 행사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아닌 주권재관(主權在官)이었다.

그러나 4.19혁명이 있음으로 해서 주권자가 대통령이나 공무원이 아닌 국민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되었다. 주권의식이 없던 국민들이 주권의식을 확실히 갖게 되었다.

여기에 4.19혁명의 참된 의의가 있으며 4.19혁명이 민주혁명으로 평가받아야 할 역사적 소이가 있다. 이하에서 4.19혁명이후 한국 민주화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서 4.19혁명과 한국 민주화의 연관성을 살피기로 한다.

2. 4월 혁명 이후의 한국의 민주화과정 회고 4월 혁명 이후 한국 사회는 여러 차례에 걸친 정치적 변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5.16군사쿠데타가 성공하면서 4.19를 통해서 국민이 쟁취한 주권은 다시 군부실력자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이에 항의하는 대학가의 투쟁은 부단히 계속되었다. 군부에서는 조국근대화와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통치가 불가피하다고 국민들을 설득했고 이 시기의 어느 국면에서는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뒷받침되기도 했다. 그러나 5.16이후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李承晩 정권시절과는 완연히 달랐다.

주권은 반드시 국민들의 것이라는 신념이 청년지식층은 물론 전체 국민들의 마음속에 광범하게 내면화되어 있었다. 이것은 4.19혁명이 다음 세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면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첫째 참여의 전국성이다.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4.19혁명의 지지의 물결이 파도쳤다. 이점은 투쟁이 특정지역에 국한된 경우와는 구별된다. 둘째 호응과 공감의 전국성이다.

국민의 일부가 아닌 전체국민이 4.19혁명을 공감하고 지지했다. 이점에서 4.19혁명은 부분적인 지지나 공감을 얻은 투쟁들과 구별된다. 셋째는 전체국민의 대의(大義), 정당성(正當性)을 등에 업고 있었다. 소수집단들이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 궐기한 운동과는 다르다. 4.19혁명을 국민들이 궐기하여 성공시켰다는 거국적, 집단적 체험은 이후 어떠한 독재세력과도 맞설 수 있는 국민적 저력이 되어 국민을 주권자의 지위에 확실히 올라서게 했고 국민들은 너나없이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없는 권리로서 주권을 갖게 되었다. 4.19이후 학생들이 주도한 주권재민(主權在民)을 향한 투쟁은 지속되었다. 6.10시위나 5.18광주항쟁 등이 그래도 국민들의 지지를 계속 받을 수 있었던 것은 4.19혁명이 그 성공을 통해 국민들의 의식 속에 비축해 놓은 지지(Reserve of Supports)즉, 학생들은 항상 정의의 편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4.19가 성공한 나라에서 5.16이나 5.18같은 반동정권이 등장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같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민주정치의 출발이 한국사회의 객관적 여건성숙의 산물이 아니고 동서 냉전 상황에서 한국에 주어진 정치현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주원인이 있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군부집권은 한국이 단시일 내에 민주화를 밀고 나가는데 필요한 연건을 마련하는 과정의 산물로 이해해야 할 이유가 있다. 군부집권기간 중에 한국은 다행히도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빈곤에서 벗어났고 근대화의 토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회고컨대 4.19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 정부는 민주주의 원칙구현에만 지나치게 매달렸을 뿐 4.19이후의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5.16군사쿠데타의 객체가 되었다. 국민들은 민주주의와 함께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절실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으며 분단조국의 평화통일이라는 열망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고 성취시킬 정치역량이 태부족했다. 한국에서 두 차례나 헌법외적(憲法外的) 방법으로 정치변동이 발생, 군사정권들이 두 차례나 탄생했지만 어느 군사정권도 4.19혁명의 이념이나 혁명의 정당성을 부정하지 못했다. 혁명이 아닌 의거라거나 완결된 혁명이 아니라거나 하는 정치적 말장난은 있었지만 혁명의 본질적 가치는 한 번도 부정되거나 훼손되지 않았다. 4.19이후 역대 어느 정권도 국민이 주권자임을 부정하거나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국민이 주권자라는 4.19의 정신사적 유산이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 속에 깊이 내면화 되어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 속에서 생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앞으로의 과제

가. 남북한의 공동발전이 통일의 첩경이다.

한국은 4.19혁명의 성공과 더불어 국민이 국가발전의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민주화는 더 이상 후퇴할 수 없게 정착되었다. 우리나라는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양대 지주로 하여 국가발전을 추진, GDP총량에서 세계랭킹 15위의 반열에 올랐다.

이 결과 오늘의 한국은 세계사의 중심대열에 올라섰다. 이제 남은 과업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을 완수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통일은 남북으로 갈리진 동포들이 보다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조건을 만드는 과업이기 때문에 남북한의 어느 일방이 무력이나 강압으로 타방을 정복하거나 합방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은 외세의 개입을 불러오기 때문에 통일을 이룰 수도 없다. 6.25동란이 이를 입증한다.

앞으로 평화통일을 이룩하려면 남북한이 발전 면에서 세계사의 현재라는 시간과 민족사의 현재라는 시간을 일치시킬 만큼 국력을 신장시켜야 한다. 일방적으로 한국만이 민주화되고 한국만이 경제적으로 발전했다고 평화통일의 여건이 충족되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한국과 더불어 북한도 민주화되고 북한에서도 경제발전이 이루어져야 남북한이 서로 잘사는 상태에서 만나는 통일을 내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20,000 달러를 넘어서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그 20분의 1인 100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朝鮮人民共和國으로 표현되는 한반도의 다른 부분은 지구최빈국으로 전락, 세계사의 흐름에서 이탈한 상태다. 나는 북한이 민주화되고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마디로 북한 동포들이 북한의 주권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처럼 1인의 자유는 있으나 만인의 자유가 없고 외부세계와의 소통이 단절된 북한 땅에서는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나. 주권자가 누구인가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좌우된다.

오늘의 세계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로 나뉜다. 주권이 국민에게 없는 나라는 1인 독재국가이거나 1당 독재국가이다. 독재국가들 중에서도 개혁개방을 통해 외부세계와의 소통과 내왕이 자유로운 나라가 있는가하면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차단한 가운데 주민들을 중세(中世)시대의 농노처럼 그 나라에만 묶어두는 독재국가 있다.

오늘의 세계에서 인간이 누리는 복지수준은 개인의 능력보다는 어느 나라에서 출생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미국의 글로벌 발전연구소의 Charles Kenny는 Foreign Policy(2012/Mar-April)에 기고한 “우리는 모두 99%다."는 글에서 좋은 나라, 즉 국민을 주권자로 섬기는 나라에 태어난 인간은 너나없이 1% 아닌 99%에 속한다고 해도 자기개인이 노력한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복지를 향유한다고 말했다. 주권자로 태어난 인간은 비주권자로 태어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주권자로 대접받지는 못하더라도 외부와의 소통이 허용된 국가에 태어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나라에 태어난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민주화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가 있고 적어도 굶어죽지 않을 수준의 물질적 기회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북한은 외부와의 소통이 막힌 최악의 1인 독재국가이다. 독재 권력도 3대에 걸쳐 세습되고 있다. 권력이 세습되기 때문에 전임자의 잘못이나 과오를 시정하기 힘들다. 개혁개방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선군정치가 국민들의 복지와 관계없이 유지된다. 독재 권력을 유지시키는 힘이 선군정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남북한이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는 한 남북한 간에는 인민개념(주권이 있고 없음의 차이 때문에)이 공유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은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 지금 북한 땅에는 무주권(無主權)의 동포들이 2200만 명 넘게 살고 있다. 4.19민주혁명이 국민을 국가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아직도 주권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북한 동포들에게 주권을 찾게 하여 북한 땅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 앞에 나서는 4.19혁명의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다. 세계사의 현황과 결론 바야흐로 21세기는 주권 없는 국민들이 지구의 도처에서 독재자들에게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시대의 문을 열었다.

작년 한 해 사이에 중동과 북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주권 없는 국민들이 주권을 되찾는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국민주권을 부정하고 1인 독재를 구사했던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에서 국민들은 투쟁을 통해 주권을 회복해 가고 있다. 시리아와 예멘에서도 민주화의 불길은 번져가고 있다. 미얀마에서도 주권이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중이다. 재스민 혁명의 물결은 그 파고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평양에도 봄은 올 것인가. 이것은 시 구절이 아니다. 평양에도 반드시 봄은 온다. 북한 동포들이 주권을 되찾을 평양의 봄은 반드시 온다.

그러나 봄꽃은 꼭 섭씨 15度(臨界質量 Critical Mass)가 되어야 핀다. 지금 평양의 온도는 몇 도일까. 현재의 온도를 정확히 아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도 없다. 왜냐하면 북한 땅에서는 주체적으로 민주화운동을 펼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주민이 독재에 저항할 유일한 수단은 탈북과 탈법뿐이다. 이점에서 탈북이야말로 최고의 투쟁으로 평가해야 한다. 탈북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평양의 온도는 이미 10度를 넘어선 것 같다. 배고픔을 타고 외부세계로부터의 지식 정보가 북한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켜가기 때문에 思想强國이라는 북한의 목표는 이미 허물어지고 있다. 經濟强國의 꿈도 사라진지 오래다. 軍事强國으로 버텨나가지만 갈수록 인민을 장악하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정권으로부터 配給이나 溫情을 기대할 수없는 인민들은 脫北하거나 脫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강구한다. 주민이 가난하면 권력집단의 하수인들(보안요원 등 당 간부와 관료)도 가난한다. 북한권력의 하수인들은 부정, 부패, 독직으로 인민의 고혈을 빨면서 살아간다. 모든 독재 권력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부패에서 북한정권은 자유로울 수 없다. 이래서 평양의 온도는 비록 더디지만 계속 15도를 향해 오르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국민들이 북한 동포들을 주권자로 만들기 위해서 단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국론을 통일하고 북한의 인권실태와 先軍노선을 비판하는데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기만 하면 평양의 온도는 조만간 臨界質量인 꽃 피는 15度에 도달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4.19혁명은 남한만의 혁명이 아닌 전체로서의 한반도의 민주혁명으로 승화되고 평화통일의 대로를 여는 혁명이 될 것이다. 4.19 혁명 52주년이 이러한 국민적 각오를 다지게 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뜻 깊은 기념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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