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 강항선생의 일대기 발간 책자안내>
정가 : 25,000원
수은강항선생은 의병장이자 우국충정의 대명사로 정유재란 때 간난신고를 겪으며 왜의 학승인 순수좌를 제자로 맞이해 사서오경을 발문하고 강항휘초를 전수해 일본유교의 비조'가 되었다.
이러한 수은선생의 일대기를 발간하게 되어 매우 기쁘며 잘못 알려진 역사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어 보람을 갖는다.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과 후계세대 인성교육의 텍스트북으로 활용되길 권장하는 바이다. 가까운 서점에서 오는 11월 11일부터 구매 가능하다.
<수은강항선생일대기 목 차 소개>
ㆍ간양록
ㆍ강항의 노래
ㆍ발간사 / 강대의 - (사)한국유교대학총연합회 이사장
ㆍ격려사 / 정운찬 - 전,국무총리. KBO총재
ㆍ추천사 / 강창근 - 진주강씨 중앙종회장
ㆍ추천사 / 강재원 - 진주강씨 수은공종회장
ㆍ인사말 / 박석무 - 수은 강항선생기념사업회 회장
ㆍ축간사 / 이개호 - 국회의원(재선)
ㆍ축간사 / 김영록 - 전라남도지사
ㆍ축간사 / 장석웅 - 전라남도교육감
ㆍ축간사 / 김준성 - 영광군수
ㆍ축간사 / 강필구 - 영광군의회 의장
ㆍ축간사 / 조강봉 - 문학박사, 재광영광군향우회장
제 1 장 강항(姜沆)이 태어난 시대 · 41
◇ 수은강항선생의 소개
- 수은 강항선생의 가계도 · 45
- 수은 강항선생의 족보 · 46
제 1 절 조선 선조의 당시 상황 · 48
1. 사색당파의 끊임없는 싸움 · 49
2. 정여립(鄭汝立)의 난 · 50
3.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십만 양병설 · 52
4. 통신사 황윤길, 김성일과 당파(黨派)싸움 · 53
제 2 절 임진왜란 전 왜(倭)의 시대상황 · 57
1. 왜(倭)의 군웅활거시대에서 통일 일본 · 57
2. 신무기 조총의 도입 · 58
3. 조총(鳥銃)의 전쟁 · 58
제 2 장 강항(姜沆)의 어린 시절과 학문 · 61
◇ 백형 저어당 해(瀣)에게 수학
제 1 절 유년기(幼年期)의 강항 · 61
1. 백형 저어당 해(瀣)에게 수학 · 61
2. 백형 저어당(齟齬堂) 해(瀣)와 스승 율곡 이이(李珥) · 61
제 2 절 5세 각도만리 심교각 ‘脚到萬里 心敎脚’ 칠언시 짓다 · 64
1. 9세 유성약천성부(幼成藥泉性賦) · 64
2. 16세 향시 합격 · 66
제 3 장 임진왜란과 강항(姜沆)의 역할 · 67
◇ 임진왜란과 강항(姜沆)
제 1 절 왜(倭)의 규모와 조선군 태세 · 67
1. 당시 왜군(倭軍)의 규모 · 67
2. 조선군의 대책(對策) · 69
3. 선조 임금의 몽진(蒙塵) · 70
4. 몽진(蒙塵)길 나선 선조 · 72
제 2 절 조선 의병의 활약 · 73
1. 전라도 의병활동 · 73
2. 경상도 의병활동 · 74
3. 충청도 의병활동 · 75
4. 경기도 의병활동 · 76
제 3 절 이순신 장군과 해전 승리 · 76
1. 조선 해군의 진용 · 76
2. 이순신 연합함대가 나서다!! · 77
3. 성웅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 · 80
제 4 절 임진왜란과 영광지역 의병 · 81
1. 영광의 임진 의사(義士)들 · 82
2. 오성관의 수성동맹 · 87
3. 영광 임진 수성동맹 인물, 직책과 명단 · 88
4. 선양정 임란일기 · 91
5. 광주ㆍ전남 오란 충의사 충혼탑비 · 99
제 5 절 강항(姜沆)의 조정생활 · 100
◇ 조선 선조시대의 조정 · 100
제 4 장 정유재란과 강항(姜沆) · 103
제 1 절 정유재란 · 103
1. 풍신수길(豐臣秀吉)의 등장과 당시 왜국의 정세 · 103
2. 오즈(大洲)와 조선(朝鮮)의 전쟁 · 111
3. 두 왕자의 의복과 종(鐘) · 118
4.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의 진주성 싸움 · 126
5. 이순신 장군과 선조 임금의 무능함 · 127
6. 원균의 패전으로 인한 폐해 · 128
제 2 절 정유재란과 호남 · 129
1. 왜(倭)의 전라도지역 약탈 · 129
2. 남원성과 전주의 함락 · 130
3. 충무공 이순신의 백의종군 · 131
4. 위대한 명랑대첩 · 132
제 3 절 정유재란에 의한 강항(姜沆) · 133
1. 정유재란과 옥당골 · 133
2. 정유재란과 강항(姜沆)의 의병활동 · 134
3. 강항(姜沆)가족의 피난길 · 135
제 4 절 왜(倭)의 포로가 된 강항(姜沆) · 137
1. 강항(姜沆)과 그 가족들의 처참함 · 137
2. 끌려가는 포로들과 강항가족 · 139
3. 둘째부인과 어린 아이의 처참한 주검 · 144
4. 왜(倭)의 큰 배로 이송(移送) · 145
제 5 장 왜(倭)의 낯선 땅에서의 포로 생활 · 147
제 1 절 처참한 오-즈성 도착기 · 141
1. 현해탄의 대마도 · 147
2. 이예주(伊豫州)에 도착 · 148
제 2 절 왜(倭)의 포로생활 · 150
1. 오-즈성에서의 일상 · 150
2. 탈출과 도주 생활 · 156
3. 이타지마(板島)성의 형장(刑場) · 165
4. 다시 오즈(大津)로 · 169
5. 조국을 그리워하다 · 174
6. 유실된 위패와 모친 제사일 · 175
7. 오사카로 끌려가게 되고 · 176
8. 교토생활 · 185
9. 두 번째 탈주 · 190
10. 이비총(耳鼻塚)에 제문을 쓰다!! · 191
제 3 절 선조에게 상소문 · 196
1. 적중봉소(賊中封疏) · 196
2. 적중봉소를 쓰게 된 사연 · 197
3. 강항(姜沆)의 선비정신 · 199
4. 왜(倭)의 상황 · 203
5. 선조의 정책 비판 · 206
6. 조정의 인사(人事) 지적 · 208
7. 선조에게 인사(人事) 건의 · 209
8. 대마도 사정 보고 · 211
9. 왜(倭)의 축성술 보고 · 212
10. 조선의 축성 문제점 지적 · 213
11. 조선의 축성 대안 제시 · 214
12. 봉화제도 비판 · 215
13. 왜(倭)군대의 실태 파악 보고 · 216
14. 풍신수길(豐臣秀吉)이 죽은 후의 왜(倭)의 실태보고 · 217
제 4 절 왜(倭)의 이모저모 · 221
1. 왜(倭)의 관혼상제 비판 · 221
2. 왜(倭)의 지리와 풍물소개 · 222
3. 왜(倭)의 장수들의 인물 소개 · 226
4.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豐臣秀吉)>와 왜(倭)의 정세 · 235
5.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왜(倭)의 변화 · 240
제 5 절 왜(倭)에 조선의 유교를 심다 · 243
1. 왜(倭)의 승려 후지하라 세이카와 만남 · 243
2. 적송광통과의 만남 · 246
3. 아직기(阿直岐)와 왕인(王仁)박사 · 248
4. 마침내 일본의 성리학을 이루다!! · 250
5. 후지하라 세이카와 유복(승려 복을 벗어 던지다) · 253
6. 강항(姜沆) 왜(倭)에 남긴 학문의 세계 · 255
7. 일본 사상계의 변화 · 260
8. 일본유학의 중흥 · 263
제 6 장 강항(姜沆) 드디어 귀국하다 · 267
제 1 절 강항(姜沆) 귀국길 · 267
1. 후지하라 ․ 아까마스의 선행 · 267
2. 당시 대마도 실정 · 269
3. 왜(倭)에 붙잡힌 조선인에게 글 · 270
제 2 절 귀국 후 조정에 나가 · 273
1. 왜(倭)의 조선 재침략 예견(豫見) · 273
2. 왜인의 생활 풍습 · 274
3. 승려의 계급과 학계 · 275
4. 왜인이 광신하는 신사 · 277
5. 왜(倭)의 타 나라와의 교류 · 277
6. 지진이 많은 왜(倭) · 277
제 3 절 고향에 돌아와서 · 278
1. 벼슬을 과감히 버리다 · 278
2. 정열사(김천일 의병장) 봉안문 짓다 · 279
3. 김천일 의병장의 가계와 학문 · 280
4. 김천일 의병장의 벼슬길 · 280
5. 임진왜란과 김천일 의병장 · 281
6. 김천일 의병장의 순절 애도하다 · 282
7. 강항(姜沆)선생의 글 · 284
8. 강항선생 문집의 편찬 및 간행 · 285
9. 수은 강항선생 일대기 결어(結語) · 289
제 7 장 부록(附錄) · 294
1. 강항일대기 단편소설(수은 강항선생과 이씨 부인 이야기) · 294
<죽곡 이장영 선생 연보>
2. 수은 종가 소장 고문서 · 312
<수은공 종가 종손 강진성 위임장>
3. 수은 강항, 송강 정철의 왜곡된 역사 바로 세우기 시도 · 322
4. 수은 강항의 강학활동과 제자양성 · 326
안동교 박사(安東敎 博士)
-수은 강항선생 연보(年譜) · 346
5.『看羊錄』을 통해 본 강항의 문학세계 · 366
토요학교 詩文(시문)강사 : 김미선(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원)
6. 다산 정약용과 간양록 · 399
- 임진왜란기 해외체험 포로 실기 연구 · 400
7. 수은 강항선생의 선양 사업 · 403
- 강항선생 ‘토요 역사학교’ 운영 -
8. 광양 수월정 30영 · 406
9. 소무목양(蘇武牧羊) · 412
10. 홍유 강항 현창비(鴻儒 姜沆 顯彰碑) 건립 배경(建立 背景) · 413
<무라까미 쓰네오會長(睡隱姜沆先生日本硏究會)>
11. 2019년 6월 19일 일본 교토 ‘수은 강항선생 국제학술세미나’
류코쿠대학 강연문 · 419
- 피스로드인 에히메 대표이사 사토 신지로 -
12. 수은 강항선생 일본연구회장 무라까미 쓰네오와
“홍유 강항선생 현창비” · 452
13. 강항과 일본인 제자 승려 순수좌 · 453
14. 수은 강항선생 기념사업 추진계획서 · 456
- 강항문화제 의미 숭상사업(崇尙事業)
- 강항문화제 사업
15. 수은 강항선생 선양사업 계획서 · 463
16. 동아시아 신삼국시대 관광콘텐츠개발 · 465
17. 강항선생과 문화폰텔링 ·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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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 25,000원
편집자 주 : <강항선생 연보>
-명종22년, 선조 즉위 원년 6월 28일 1567년 정묘(1세) : 5월 17일, 영광 불갑 유봉리에서 몽오(夢梧) 강극검공(姜克儉公)과 모친 김씨(영동)부인의 5남(해, 준, 환, 항, 영) 1녀(심우민의 처) 중 중 넷째로 태어났다.
-선조 4년 1570년 경오(4세) : 백형 저어당(齟齬堂) 해(瀣,1555~1591)<이이 율곡 문인>로부터 사서오경을 익히다.
* 齟 어긋날 저 齬어긋날 어/해(齟齬堂) 瀣 濬(회은) 渙(퇴은) 沆(수은) 泳(시시당) (沈禹民)과 결혼.
-선조 5년 1571년 신미(5세) : 전라감사 신응시가 각(脚)자로 작문 운을 주자 <각도만리심교각(脚到萬里心敎脚)>이라고 응답하자 모두 탄복하였다.
* 신응시(辛應時 1532~1585 백인걸의 문인)
-선조 7년 1573년 계유(7세) : 『맹자 1질』을 한나절에 一覽珍技하고 모두 암송함에 책장수가 천재라 탄복하고 『맹자 1질』을 그냥 주자 사양하니 안맹마을 정자의 나무에 걸어 놓고 떠나 『맹자 정』이라 함. 현재 불갑면 소재지에 맹자정기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이 근처를 <맹자마을>이라 칭함.(안맹마을의 탄생)
-선조 8년 1574년 갑술(8세) : 중국고서인 『通鑑綱目』을 하룻밤 새에 통달하여 고창군 아산면 칠암(칠암마을)고을에 綱目村(강목마을)이 생겨나고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음. 1574년에『통감강목(通鑑綱目)』을 통달하였기로 “무장(茂長) 칠암마을을 강목촌(綱目村)이 있다” 하였다.
* 무장=전북 고창의 옛 지명
-선조 9년 1575년 을해(9세) : 유성약천성부(幼成若天性賦)를 지었다.
(어릴 때 습성을 익혀두면 천성과 같이 된다는 내용)
-선조 10년 1576년(10세) : 우계 성혼(成渾)의 문하에 들어가 예와 경학을 터득하다.
-선조 14년 1580년 경진(14세) : 모친 상을 당하여 禮(예)를 갖춰 정성 다하다.
-선조 17년 1583년(17세) : 母親喪(모친상)을 마치고 책문(策文)으로 향시(鄕試)에 합격(초시)하다.
-선조 21년 1587년 정해(21세) : 진사시 삼장(三場)에 모두 합격하다.
-선조 22년 1588년 무자(22세) :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다. 관례를 하고 참봉(參奉) 김봉(金琫)의 딸 전주김씨와 혼인하다.
-선조 25년 1591년 신묘(25세) : 백형 저어당이 신묘사화로 화를 당하다.
-선조 26년 1592년 임진(26세) :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띄워 군량과 군기를 모아 의병장 제봉 고경명에게 보내다. 영광 임진 수성활동에 장문서로 참여하고 의병 활동하다.
-선조 27년 1593년 계사(27세) : 광해군이 진주의 분조(分朝)에서 시행한 정시에서 병과(丙科)로 합격하다.<김신국, 김홍우, 이진선 등 9명이 뽑히다. 소금과 절인고기 등 어염을 유통하고 백미 100석을 모아 사촌 동생 만은공 姜낙으로 하여금 고경명, 김천일, 최경장 의병소에 보내다.
-선조 28년 1594년 갑오(28세) : 성혼(成渾)의 문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동인(東人)의 탄핵을 받아 교서관(校書館)에 분관되다. 우계의 문호가 쓸쓸하니 멀리 찾아가 뵙다. 겨울, 기주관(記注官)으로 경연에 입시하다.
-선조 29년 1595년 을미(29세) : 문한(文翰)을 잘 처리하여 선조의 칭찬을 받다. 성균관 박사가 되다.
-선조 30년 1596년 병신(30세) : 성균관 전적이 되다. 가을에 병조, 공조좌랑을 거쳐 겨울에 형조좌랑이 되다.
-선조 31년 1597년 정유(31세) : 이른 봄, 휴가를 얻어 귀근하다가 5월에 분호조 참판 이광정의 종사관에 임명됨. 여름, 이광정의 종사관으로 군량을 모집해 남원(南原)성에 지원갔으나 왜군에 의해 함락 당하자 불가피하게 영광(靈光)으로 되돌아오다. 영광(靈光)에서 김상준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다. 왜적이 영광(靈光)으로 들어와 도륙질을 하자 식솔들과 함께 2척의 배로 서해바다로 나가다. 종형 홍과 협을 만나 선상에서 회의를 갖고 이순신장군 휘하로 들어가려다가 염산 논잠포에서 9월 23일 被擄되어 일본으로 끌려가다.
이 때 아들 용과, 딸 애생이, 그리고 조카 등 어린아이들 6명 중 4명을 바다에 수장당하고 1명의 조카아이마져 왜의 땅에서 병으로 잃게 되다.
-선조 32년 1598년 무술(32세) : 5월, 배를 빌려 탈출하던 도중 판도현(板島縣)을 지나다가 성문(城門)에 조선 침략을 비난하며 죽은 풍신수길을 향한 격문을 써 붙이다. 3일 만에 좌도(佐渡)의 부하에게 붙잡혀 대진성(大津城)으로 되돌아 오다. 왜승 호인(好人)에게서 일본의 방여(方輿), 직관(職官)을 묻고 좌도가(佐渡家)에 소장되어 있던 <왜국지도(倭國地圖)>를 베끼어 기록해 두고, 아울러 적정(敵情)과 방략(方畧)을 적어 김석복(蔚山人, 金石福)에게 조정에 소를 올려주도록 부탁하다. 6월, 대판성(大阪城)으로 옮기다. 7월, 대판(大阪)에서 도요토미히데요시 풍신수길(豊臣秀吉)의 새 도읍지인 복견성(伏見城)으로 옮기다.
-선조 33년 1599년 기해(33세) : <적중봉서>를 중국(명나라)의 차관 왕건공(王建功)과 신정남에게 초소(草疏)를 주어 본조(本朝)에 보내게 하다. 피노 중 『姜沆彙抄』 16종 21책을 필사하여 왜승 순수좌(藤原惺窩, 후지와라 세이카)와 그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아까마쓰 히로미치에게 조선 주자학을 전수하다. 『姜沆彙抄』의 일부분인 사서오경을 포함해 16종 21책을 필사해 발문하다.
-선조 34년 1600년 경자(34세) : 봄, 좌도(도도다카도라 佐渡)에게 귀국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다. 왜승 경안(慶安)이 극력히 권하여 허락을 받아 대마도를 거쳐 거제도 장문포(장목)로 38명을 쇄환해 5월 19일 귀국하게 된다. 선조의 소명(召命)을 받고 서울로 올라가 적중문견록(賊中聞見錄)과 예승정원계사(詣承政院啓辭)를 올리다. 당시 등용을 조정에서 권했으나 스스로 罪人이라 칭하고 9월 말 한 필을 하사받고 고향 영광(靈光)으로 돌아와 부모를 봉양하고 후학양성에만 힘쓰다. 『巾車錄』을 완성하다.
-선조 35년 1601년 신축(35세) : 좌의정 이덕형이 영남(嶺南)에 개부(開府)하여 왜(倭)의 사정을 묻자 예부절왜서(禮部絶倭書)를 지어 올리다. 가을에 운제마을로 거처를 옮겨 후학양성을 위해 <운제 서당>을 열고 강학을 시작하다.
-선조 36년 1602년 임인(36세) : 대구향교 교수(敎授)에 서용되었으나 곧바로 사직하고 다시 영광으로 내려 오다.
-선조 37년 1603년 (37세) : 『綱鑑會要』17권 30책을 완성하다. 조선 광해군(光海君) 때 강항(姜沆) 엮음. 주희(朱熹)가 지은 강목(綱目)을 보완하여 엮은 책이다.
-선조 39년 1605년 (39세) : <불갑사 중수문>을 지었으며, 문선찬주 권선문을 완성하다.
-선조 40년 1606년 병인(40세) : 회답사 여우길回答使 呂祐吉이 일본에서 돌아와 倭人들이 수은 강항선생의 충의와 절개를 칭송한다며(중국의 소무나 문천상 같다고 칭송한다)東槎錄에 기록하여 아뢰었으나 북인(北人)들이 꺼리어 하며 등용하지 않다. <여우길의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음> 1606년에 <김천일장군 행장>도 지었다.
-선조 42년 1608년 무신(42세) : 순천교수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음. 선조가 승하하자 방상(方喪) 3년을 입고 동양 최대의 장편 시 <원가행(怨歌行)>을 지어 조상하다.
-광해군 2년 1610년 경술(44세) : 팔송 윤황(尹煌)이 영광군수로 부임한 뒤 아들 윤순거(尹舜擧)형제를 보내 수학(受學)하게 하다. 1610년에 광주향교 중건 상량문을 지었다.
-광해군 4년 1612년 임자(46세) : 절강총병이 조선의 경전지방에 왜인이 잡서(雜棲)한다 해 지휘사 황분이 왔는데 이를 변무하다. 1612년에 무안 <화설당 기문>을 지었다.
-광해군 7년 1615년 경술(49세) : 부친 몽오공(夢梧公)극검이 상을 당하여 형제들과 3년 시묘살이에 들어가다.
-광해군 10년 1618년 무오(52세) : 5월 6일, 병으로 졸하다. 11월, 불갑산(佛甲山)에 장사지내다. 일주일도 안 되어 이조이 부인 복띠로 자진하다.(영광군지 참조)
------------ 강항의 사후 강항과 관련된 일들 ----------------------
-인조 6년 1628년 무진 : 문인 동토 윤순거가 행장을 짓다.
-인조 11년 1633년 : 함평이씨 이조이 부인 계유년 정려문을 받다. 함평이씨 명정
-인조 13년 1635년 을해 : 불갑 유봉마을에 사우를 짓고 우암 송시열 축문을 지었다.
-인조 14년 1636년 병자 : 유봉리 사우가 실화로 재가 되어 이에 판서 임담, 사성 김지수, 참봉 김우급 등이 발의하여 불갑면 용산마을에 사우를 신축하여 <용계사>라 하고 액호를 우암 송시열 이 편액을 쓰다.
-효종 7년 1656년 병신 : 시남 유개가 『看羊錄』서문을 지었다.
-효종 9년 1658년 무술 : 『睡隱集』완성 (우암 송시열 서문 )통정대부 승정원 승지로 증직되다. 문인 윤순거(尹舜擧)가 문집(文集) 『看羊錄』을 목판으로 간행하다.(宋時烈의 序)
-현종(顯宗) 8년 1667년 정미 : 선생의『綱鑑會要』장판이 아들 시만(時萬)이 간행하여 조성되다. 『綱鑑會要』17권이 간행되다. 청강 이제신은 조광조로 부터 성수침, 우계 성혼으로 이어지는 학맥으로 청강 이제신의 외손 정시수(鄭時遂)(1605-1685), 정시대(鄭時大) (1615-?) 형제가 영광 및 영암군수로 각각 부임하자 영광군수가 이를 간판(刊版), 『綱鑑會要』판각 동토 윤순거(尹舜擧 序) 쓰다.
-현종 9년 1668년 무신 : 경연 연석(筵席)에서 이단하(李端夏)의 요청으로 당상관(堂上官)에 추증(追贈)하라고 명하다. 참의에 추증됨 .(<현종개수실록 >권 19, 현종 9 년 4 월 13 일 )
-숙종 8년 1682년 임술 : 동토 윤순거를 용계사에 추배함. 조정에서 수은선생 절의가 한나라 소무와 같다고 하여 “금소무(今蘇武)”로 정시 시험문제를 삼아 인재를 뽑고 사손 익(翊)을 주관사정에 제수하다.
- 1702 년 (숙종 28) 용계사 중수 (군수 윤일복이 기문을 지음 )용계사 사액소를 올림 (權輔德)
-숙종 35년 1709년 기축 : <용계사> 사액을 청하자 권보덕이 제소(製疏)하다.
-영조 48년 1772년 임진 : 영조 임금이『睡隱集』을 예람하시고 선생의 절의를 한나라 소무, 송나라 문천상에 비하여 칭찬하고 7세손 재윤을 도사로 등용하다. 7세손 姜載潤 都事로 등용
-정조 22년 1798년 무오 : 『看羊錄』중 <산성이설지사>로 試題 삼음. 성담 송환기가 묘갈명을 짓다.
-고종 5년 1868년 무진 : 후손 강란수(姜蘭秀)가『睡隱文集』을 활자로 중간하다.(姜蘭秀, 姜日會의 跋)
-고종 19년 1882년 임오 : 6월 2일 자헌대부 이조판서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에 증직하다. 대제학 김상헌이 시장을 찬하다. 시장 (諡狀 )지음(대제학 김상현)
-고종 37년 1900년 경자 : 광무4년 6월 10일 지중추원사 강항에 치제하다.
-일제강점기 1917년 정사 : 11대손 강대학(姜大學)이『睡隱集』속집(續集)을
간행하다.
-일제강점기 1940년대 :『睡隱文集』과 『看羊錄』의 장판(藏板)은 수면래(水面來) 선생의 강당에 보관 중이었는데 왜정 말기에 왜인 영광경찰서장의 손에 의해 소각되고『看羊錄』도 왜인 경찰서장의 손에 몰수당해 소각되어 분서(焚書)의 화를 당하였다.
-단기 4285년 1952년 : 현암 이을호 선생이『看羊錄』국역본 초판을 간행하다.
-단기 4291년, 1958년 강항의 기념관 <수은정(睡隱亭)>을 창건하다.
-단기 4313년, 1980년 :『看羊錄』국역 4판이 발행되다.
-단기 4316년, 1983년 癸亥(계해) 五月(오월)(수은 강항선생기념사업회) 睡隱姜沆先生記念事業會(수은강항선생기념사업회) 謹竪(근수) / 創立(창립)
초대회장 李乙浩 國立光州博物館長 哲學博士 謹撰 향토문화개발협의회장 鄭埰均 謹書
이사 강대직(직손), 강종원(호남유림), 조남식(한학자), 김인곤(광주경상전문대학장), 이백순(한학자), 강대련(공무원), 전남도청 문화재위원 김희태(간사)주축.
-단기 4317년 1984년 :『看羊錄』국역 5판(養英閣출판사).『看羊錄』(조선유자의 일본역류기 일역판, 박종홍 역주, 동양문고 평범사)
-단기 4321년 1988년 :『睡隱集』간행. 송언종 전남도지사 이을호 광주박물관장, 이백순 한학자가 도움주다.
-단기 4330년 1997년 : 영광청년회의소 학술세미나 수은 강항 문화유산 한 일 심포지엄
- 강항 선생의 업적 재조명(일본유적지 기행)
-단기 4334년 2001년 : 문화관광부, 3월 이달의 인물로 수은 강항이 선정되다.
-단기 4335년 2002년 :영광 jc 와 일본 오즈 jc 교류행사(학술세미나)
수은강항선생 - kbs 역사스페셜에서 조명, 일본과 국제교류 오즈시장 영광방문, 강항 선생 동상 제막
-단기 4342년 2009년 :일본 오즈시장 영광 내산서원 방문,
강항 선생 얼 기리기 위한 문화교류 희망 강항문화제 양일걸쳐 불갑 내산서원과 불갑사
관광지구 영광 청년회의소의 주관 ‘영광 내산서원 수은 강항 문화제’ 개최.
-단기 4343년 2010년 :일본 오즈고 5월 영광으로 수학여행
강항 선생 유적지 방문․ 해룡고와 교류
정병선 영광청년회의소 회장 수은 강항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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