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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칼럼>, 대통령상 드디어 가져오다

제46회 한민족문예제전의 대통령상을 광주시협서 예선 거쳐 최종 확정 돼
등록날짜 [ 2015년07월15일 15시30분 ]


매일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삶속에서 '정말 축하드립니다'라며 전화를 받는 일은 기분좋은 하루의 연속이 된다.

순수 민간통일운동을 하는 단체의 중앙협에서 그런 축하의 말을 최 모부장으로 부터 듣고 한편으론 당황하기도 하며 전혀 분위기도 모른체 '무슨 축하?'라고 오히려 반문했던게 어제 14일이다.

번득 스쳐지나가는 생각에서 '제 46회 한민족문예제전'이 생각났다. 작년까지 구태의연하게 해 오던 방식으로 줄 곳 심사를 해 오다가 올해 들어 새로운 심사위원들로 물갈이를 했다.

그게 적중해서일까?
올해 이토록 큰 상을 광주시협에서 17개 시도협을 물리치고 하나 뿐인 상, 대통령상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한민족문예제전이라는 이름으로  대통령상은 희소성이 있으며 5,000만 국민중에 하나요, 묵묵히 통일운동을 해 온지 46년에 광주에서 대통령상이 나온 것도 처음있는 일이다.  다시 상기시켜 말하자면 전국에서 지금까지 46명의 대통령상만이 존재할 뿐인 것이다.

올 5월 중순경으로 기억이 난다. 요즘시대의 흐름이 그러하듯 오프라인 상태로 원고지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원고지라 하더래도 인터넷한글문서로 된 원고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표은혜학생의 어머니로 기억되는데 한민족문예제전 작품을 어디로 제출해야 하느냐고 물어왔다. 올해들어 처음 접수문의인지라 자세히 설명드리며 이메일로 접수를 해도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바로 그 날 이메일로 접수가 되었고 이메일을 열어본 순간 수려한 문장에 너무도 놀랐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잔잔히 풀어가며 여고 2학년이 써 내려간 글은 전체 문맥 한 군데도 막힘없이 몰입하기에 충분했으며 글 자체가 간결해 이해가 쉽고 단어사용에도 미흡함이 없이 문장 하나하나 어느 곳하나 흠잡을데가 없었다. 조용한 흥분이 몸안을 감돌았다.

'올 해 이거 대물들만 접수가 되겠는데...!!'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온 몸으로 전율이 느껴진다. 6월말경 수은 강항선생 시문학으로 박사과정을 마친 전남대 김미선교수에게 심사를 권했다. 망설임없이 한 번 해 보겠노라고 말해 작품들을 보여줬다. 김교수는 천상 여성이다. 자상한 면도 있고 순박하면서도 꼼꼼한 그런 심사를 해 의견을 보내왔다.

총체적으로 정리를 하여 망설임없이 중앙회로 초, 중, 고 대학생 일반인 각각 3작품씩을 추려 12작품을 보냈다.

그 결과 최 모 부장은 14일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신 대통령상이 광주시협에서 나왔네요!!!''그리고 광주에서 통일부장관상과 민통의장상까지 3명이 수상되었네요.'라며 심적으로 가장 큰 선물을 전화를 통해 전해준 것이다.

<아래는 대통령상을 수상한 표은혜 여고 2학년생의 작품을 소개한다> 

광복 70년, 분단 70년 우리가 해야 할 일
내 고향은 강화도이다. 정확한 주소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지붕없는 박물관’이란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우리가 국사책을 공부하면서 대면하는 역사적 사건의 현장으로 신미양요, 병인양요의 격전지이고 조선 최초의 외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의 체결지인 곳이 내가 자란 곳과 지척인 곳이다. 물론 고려 말 몽고의 침략을 40년 간 버텨 낸 것부터 시작하여 조선 말기 외세의 빈번한 침략을 불굴의 의지로 물리친 곳이 강화도이고 그런 역사적 사적들과 전적지들이 즐비 한 곳이지만 내게는 눈 앞에 보고도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분단 비극의 현장이기에 더 가슴 아픈 곳이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집안 대대로 강화도에 계속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신 지금은 연세가 76세 되셨다. 할아버지는 1940년 생으로 5살 때 광복을 맞으셨다고 한다. 어릴 때 기억이라 잘 나지는 않지만 온 동네 사람들이 마구 태극기를 흔들고 했던 것은 기억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아버지인 나의 증조외할아버지는 광복 후 지금으로 말하면 강화군 양사면의 면장이셨는데 그만 6.25 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가셨다. 지금은 외할아버지의 노력으로 6.25 납북자 가족으로 공식 인정을 받고 명예가 회복되었지만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 북한으로 끌려가신 아버지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으셨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와 내 어린 시절 자주 가던 곳이 양사면에 위치한 평화전망대이다. 평화 전망대는 강화도와 북한의 연백이 염하강 이라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이는 곳에 지어진 전망대이다. 강화의 시골길을 달려 고즈넉한 이곳에 도착하면 증조할아버지가 북한군에게 끌려가신 산등성이와 포구를 말없이 내려다보시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나이 13살 때의 일이라고 한다. 증조할아버지가 면장 일을 했다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한밤중에 총칼을 앞세운 북한 인민군에게 끌려가는 아버지를 목격하였던 소년은 유치장으로 보리 주먹밥을 3일 동안 갖다 드렸었고 인민군 몰래 손에 쥐어진 쪽지에는‘내일 연백으로 출발’이라는 아버지의 글씨를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소년이었다. 끌려가는 아버지를 따라 엄마와 둘이 얼마를 따라 걸어갔지만 지금 평화전망대가 있는 곳 포구에서 북한으로 끌려가며 배에 오르는 아버지를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노라고 가슴 아프게 기억을 토해내실 때마다 나도 그 전망대에서 빤히 내려다 보이는 북한의 평화로운 들판길을 바라다보며 애잔해했다.

내 기억 속 분단의 비극은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고 아직도 진행형인 슬픔이다. 물론 우리 증조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을 것이다. 일단 연세를 유추해 보아도 100세가 훨씬 넘으셨고 전쟁 중에 어렵게 배를 구해 증조할머니와 연백 쪽으로 가서 할아버지 일행의 행적을 뒤쫓았지만 개성 못 미친 곳에서 더 이상 끌고 가지 않고 모두 총살시켰다는 말을 들으셨기에 이미 추도예배도 드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에게 아버지 없이 크게 하고 그 아픔이 그 상처가 너무나 컸기에 분단의 비극은 멈추질 않는다. 비단 우리 할아버지뿐이겠는가! 지난 겨울 온 가족이 본‘국제시장’이란 영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분단으로 인해 한 사람이 겪어 내야만 했던 신산스러운 인생사가 펼쳐진 것을 보았다. 우리 같은 풍요의 세대는 겪을 필요도 없으며, 겪는다고 한들 견디어 내지도 못 할 그런 예리하고 농밀한 고통스러움을 온 몸으로 겪어내신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지금과 같은 번영과 평안 속에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인생에서 70년이라고 하면 고희라 일컫고 공자는‘종심’이라고 말하였다. 논어의 위정 편에 보면‘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섰으며,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에는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에는 귀가 순리대로 들렸으며,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 갔지만 법도에 넘지 않는다’라며 70살을 종심이라고 표현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도 7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물과 같이 흘러 가기만한 시간이 아닌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의 인격 훈련이 되어 겸덕이 생기기 마련인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직도 저 70년 전 그 날에서 한 발자국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지난하기만 했던 그간의 70년은, 우리나라가 광복한지 70년! 하지만 희열 가득했던 광복의 기쁨도 잠시였다. 우리 스스로 우리나라의 힘만으로 주체적으로 이룬 광복이 아니었기에 광복의 기쁨을 바로 38도선 아래 묻어야만 했다 우리의 의도나 바람과는 달리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상주하여 5년 간 신탁통치를 한다는 결정을 하면서 광복의 기쁨은 깊은 땅속 울림만 남기고 분단의 비극이 70년에 이르도록 지금까지도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말 저녁이면 아빠와 함께 ‘징비록’이란 드라마를 시청한다. 서애 류성룡이 임지왜란 당시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책이 징비록이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강대국의 틈에서 소용돌이치며 되풀이되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화가 나기도 하고 왜? 라는 꼬리를 무는 의문이 생긴다. 임진왜란은 일본의 공격으로 벌어진 우리의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만의 힘으로 조선만의 국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기에 명나라에 의지하게 되고 명나라는 우리 조선백성의 안위나 영토 보전보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 채 일본과 전쟁하고 협상을 벌였다. 서애 류성룡의 나라 잃어 가는 백성으로 그 처참함을 기록한 책인데 그런 역사적 기록을 보면서도 조선말 다시 한 번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 서구의 열강들이 뒤엉켜 성난 사자처럼 물고 뜯을 기세로 조선을 넘보는 일을 겪고 결국에는 나라의 주권을 잃는 비탄한 상황을 만들었다. 이것이 비단 조선의 왕을 비롯한 위정자들의 잘못된 선택과 호도된 여론 때문이었을까? 백성들의 무지함 때문이었을까?

강화 평화전망대에서는 북한의 일상생활 모습을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요즘 같은 철이면 모내기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북한의 현실은 남루함과 비루함 그 자체이다 주민들의 차림새가 낡은 것은 물론이요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을 바라보노라면 가슴이 아프다. 강 너머 우리 쪽의 숲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민둥산은 내핍한 북한의 살림살이 속살을 드러낸 것 같고 밤이면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북한이 마치 어둠 속에 가라앉은 난파선 같다. 그런 북한의 현실을 평화전망대에서 마주하고 오면서 과연 북한의 저 김씨 3대 세습자들에게는 과연 70년 영겁의 세월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그 뜨거운 여름의 열기가 온 땅에서 용솟음치고 있을 때가 우리 대한민국의 근원점이었다면 북한의 통치자라고 불리었던 김일성과 공산당원들에게는 지난 70년의 세월의 무게를 무엇으로 풀었는지 묻고 싶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땅 속 울림으로 놓아 둔 채 숨가쁘게 폭주하듯이 달려와 세계 경제성장사에 길이 남을 경제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과 달리 더 많은 자원과 설비를 갖고도 그릇된 지도자의 선동적인 전쟁 준비라는 광분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혹독한 배고픔을 겪은 북한은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 하는 것이다. 나무 한 포기 없는 북녘 땅의 민둥산을 보면 내가 이 땅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고 나의 선택을 지지하고 꿈을 키워주는 이 나라 내 조국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된다. 그때 드는 생각이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분단이 고착화되어 남한과 북한이 서로 이질적인 문화와 행동방식을 가져 전쟁을 겪지 않고 이산의 아픔을 모르는 국민이 더 많아져버려 남북한의 통일 논의조차 버겁게 생각하는 이 땅의 젊은이가 많아져 가게 된 이 시점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내 스스로 답을 해야만 한다. 분단된 조국이라는 명제에만 매달려 가족 간의 가장 기본적이라 할 수 있는 생사 확인도 못한 채 7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우리가 이산가족의 뼈아픈 눈물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같이 아파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을 진정 이해하지 못한 채 멀끄러미 통일을 바라보는 것은 분단된 대한민국의 국민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통일을 위해 분명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들이 할 일이 있을 것이고 우리 눈에는 안 보여도 실천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

나는 우리 할아버지의 통일이 빨리 되어 할아버지가 더 이상 아픈 마음으로 평화전망대를 오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직 철부지 고등학생의 신분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나라 역사공부를 더 열심히 하여 더 이상은 강대국의 틈에서 눈치를 보고 견제를 당하지 않도록 연구하고 싶다. 사학과를 가고 싶다는 내 꿈이 구체화되어 열매를 맺도록 더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나약한 내 심성도 강하게 다잡을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나고 자란 아가씨들이 탈북하여 남한에 와서 살림하고 생활하는 것을 보면 어떤 일이든지- 농삿일이든 음식을 만드는 일이든, 아무리 험한 일이라 할지라도- 척척 해 놓는다. 대한민국에서 곱디 곱게만 큰 우리들은 거의 근접할 수 없는 씩씩함과 당당함을 유지하고 있다. 나도 내 일이라면 누구에게도 미루지 말고 내 스스로 찾아 일을 해야겠다.

분단의 비극이 더 이상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나부터 발의 족쇄를 풀어 놔 줄 것이다.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정 없이 북한의 1인 독재체제가 싫어 자유를 찾아 탈북한 새터민들에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들의 모습 그대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가장 기본의 일을 하고 싶다.

북한은 우리와 전혀 다른 붉은 늑대가 아닌 길이 잘못 길들여진 여우인 것이다. 어린 왕자가 여우와 서로에게 길들여져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되려면 눈에는 안 보이는 마음으로 보고 서로에게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려면 참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도 참고 기다리고 서로를 바라보다 보면 사막에 숨겨진 우물을 찾은 어린 왕자처럼 깊은 아름다움을 나누는 통일된 대한민국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한 "네 장미가 네게 그렇게 소중한 것은 그 장미를 위하여 잃어버린 시간 때문이야." 이 말이 광복70년, 분단 7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우리가 그 세월이 헛되지 않았고 그 시간이 살아나고 되짚어져야 우리의 나비의 날개 짓에도 흔들리는 역사가, 강대국에 의존되어져 우리나라의 운명을 점쳐야 되는 반복되는 빈약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로 설 것이다. 그런 먹먹한 현실이 우리 앞을 막지 않도록 내가 가진 선택의 권리와 자유의지를 갖고 내 꿈을 향해 정진할 것이다.

강한 대한민국! 강해지는 나를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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