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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 세종의 조세개혁(8)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백성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고쳐 백성들의 원망 줄이려고 노력해
등록날짜 [ 2017년09월13일 00시10분 ]

1438년 7월10일에 세종은 공법에 대하여 다시 논의하였다. 

세종은 "지난해(1437년)에 공법을 시행하려고 했는데 흉년으로 중지한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행을 미루게 되면, 시행이 영영 어려울 것이다.

이에 경상·전라 양도의 백성들 가운데 공법의 시행을 희망하는 자가 3분의 2가 되면 우선 시행하려한다. 경들은 이를 속히 논의하여 아뢰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대신들의 의견은 분분하였다. 영의정 황희·우찬성 이맹균 등은 먼저 강원·황해 양도부터 시행하자고 하고, 우의정 허조는 답험손실법을 그대로 쓰자고 하고, 좌찬성 신개· 좌참찬 조계생· 병조판서 황보인· 공조판서 성억· 참판 유계문 등은 임금의 말씀대로 하자고 하였다.


또 우참찬 최사강은 양도에만 강행할 수는 없다고 하고, 병조참판 신인손은 시기상조라고 하고 겸판호조사 안순은 감사가 민심을 들은 뒤에 다시 논의하자고 하고. 예조판서 권제는 조관을 보내어 민정을 자세히 살핀 후 논의하자고 하였다.


호조 참판 우승범은 양도에 공법을 세우고 수년간 시험하여 민심을 살펴 보라고 하고, 이조판서 하연은 공법의 가부를 민간에 물은 연후에, 9등급으로 나누어 거두는 공법을 시행하라고 하고, 호조판서 심도원은 경상·전라도 백성들에게 물으면 시행을 원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대세에 쏠려 반대할 것이라며, 무조건 시행하라고 하였다. 


세종이 말하기를, “논의가 이렇게 일치하지 않으니 내일 다시  의논하도록 하라.”하였다.

왕조시대에도 토론이 이렇게 활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활발한 토론을 강조하지만 과연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다음날인 7월11일에 안순·신개·조계생·하연·심도원·황보인·유계문·우승범·안숭선등을 불러 다시 의논하게 하니, 안순·신개·조계생·하연·심도원·황보인·유계문 등은 "공법에 대한 편리 여부는 이미 현지 백성에게 물은 바 있사오니, 우선 경상·전라 양도에 시행하옵소서."라고 아뢰고, 우승범· 안숭선 등은  "대사를 도모하는 자는 여러 사람과 더불어 모의하지 않는다 하옵니다. 우선 앞서 정한 법을 전라·경상 양도에 시험하게 하옵소서." 라고 아뢰었다.


이로써 세종은 논의를 확정짓고, 경상·전라 양도에 공법을 시험 실시하라고 명했다.

3개월 후인 10월12일에 세종은 장단현 관송 들판에 머물렀다.

이보다 앞서 경상도 관찰사 조서강과 전라도 익산 고을 백성 6백 명이 장마로 전답이 침수되어 조세를 면세해 달라고 요청했다. 세종은 호조에 즉시 내리어 의논하게 하니, 호조는 온통 손실된 것이 아니면 조세를 면제하는 것이 불가하다고 아뢰었다.


이에 세종은 면세를 불허했는데 장단현 현장에서 좌찬성 신개가 "전라도의 옥야(沃野)와 경상도 낙동강이 물에 잠겨 한 폭의 벼도 없다면서, 공법을 시행함에 있어서 백성의 원망이 심하오니, 면세를 검토하소서.”라고 아뢰었다.


세종은 도승지 김돈 등에게 자문을 구하니 신개의 의논을 좇는 것이 좋겠다고 아뢰었다. 세종은 환궁한 뒤에 의정부와 의논하겠다고 했다.

10월15일에 세종은 신개의 의견에 대하여 대신들의 의견을 들었다. 

최사강은 만약 관찰사가 조사하면 소송이 많아질 것이니, 별도로 조관을 보내자고 하였고, 영의정 황희는 물에 잠긴 땅이라면 면세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따로 조관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세종은 "관찰사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조관을 보내서 그 썩어 손상된 곳을 심사한 뒤에 시행하고자 한다."하고, 곧 판내섬시사 변효문을 경상도로, 군기감 정(正) 민공을 전라도로 보냈다.


어느덧 1440년이 되었다. 공법을 시행한 지가 3년이 되는 해였다. 세종은 공법 시행을 위해 보다 정밀한 과세 방안을 정했다. 각 고을의 지품의 등수를 어느 고을은 상등으로 삼고, 어느 고을은 중등으로 삼고, 어느 고을은 하등으로 나누어 삼등으로 만들도록 하였다.


한편 세종은 1440년 7월5일에 공법 시행의 폐단에 대하여 검토하라고 전교했다. “공법을 이미 경상·전라 두 도에 시험하였으나, 한 도내에도 땅의 기름지고 메마름이 같지 않은데 세를 거두는 것은 한결 같아서 백성이 병통으로 여기니, 다시 자세하게 정하여 아뢰라."고 한 것이다.


세종은 정말 성군이다. 세세한 부분까지 고쳐서 백성들의 원망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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