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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7회

김세곤 (칼럼니스트) 이극돈은 김일손을 직접 만났나?
등록날짜 [ 2018년09월13일 12시16분 ]

이극돈은 자신의 비행을 기록한 김일손의 사초를 지우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이 사실은   실록청 기사관 이목(1471∼1498)이 김일손에게 보낸 편지에 자세히 나와 있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12일 3번째 기사) 1)

그러면 모친상으로 경상도 청도에 있는 김일손에게 보낸 이목의 편지를 살펴보자. 
 

“홍사호 등이 김일손의 집에서 수색해 낸 잡문서를 올리므로 왕은 추관(推官)에게 명하여 피열(被閱)하게 했는데, 이목과 권오복이 김일손에게 준 편지를 발견했다.

이목의 편지에 이르기를, "목(穆)이 실록청(實錄廳)에 출사(出仕)한 것이 이제 수십 일이 되었습니다. 형의 사초(史草)가 마침 같은 방에 있는 성중엄의 손에 있었는데, 당상(堂上)이 날마다 쓰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삼아 모두 사책(史冊)에 쓰려고 하지 않는다 하기에, 내가 아침저녁으로 성중엄을 책하니, 중엄도 사람이 군자(君子)인지라 마음에 감동되어 오히려 계운(季雲 김일손의 자)의 사초가 한 자라도 기록되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2)

그리고 그 방의 당상(堂上)은 곧 윤효손인데, 윤효손은 매양 나에게 묻기를, ‘김 아무개는 어떠한 사람이냐?’고 했습니다. 윤효손이 형의 사초를 모두 보고나서 하는 말이 ‘나는 김 아무개가 이렇게까지 인걸(人傑)인 줄을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二相 찬성의 별칭) 이극돈이 윤효손으로 하여금 숨기게 하였으니, 섶을 안고 불을 끄려고 하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나는 오래 성덕(聖德)을 입어 참상(參上)의 자리를 메꾸고 있으나 전적(典籍)에 있어서는 털끝만큼도 도움이 될 수 없었는데, 요즘 외람되이 조정에서 겸춘추(兼春秋)에 발탁함을 입었으니, 매양 소원이 『성종  실록』을  만드는 여가에 밤에 돌아와 등불을 달고 당세의 일을 써서, 만에 하나라도 형의 업(業)에 대해서 다른 날 죽은 뒤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여, 다만 이 가부를 논해 주기만 바랐는데, 망령된 계획이 도리어 중한 앙화만을 받게 되었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아아! 형과 이별 후 형의 평생 심사를 물을 곳이 없어 망령되이 스스로 꾀를 하고 보니 가슴 속이 더욱 비루합니다. 비록 형이 상중(喪中)에 계신다 할지라도, 원컨대 한 장의 척서(尺書)를 던져서 이 위태한 병을 구해 준다면 거의 사람을 만들 것이니, 오직 이것만 바라는 바이며, 보신 뒤에 불태워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실로 망언인 줄은 알지만 형의 회포를 풀어 드리려는 마음에서 모든 언사를 피하지 않습니다."

이목의 편지는 ‘이극돈이 김일손의 사초를 문제 삼아 화를 일으킬 지도 모른다는 급박한 상황’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본 뒤에 불태우라는 부탁도 있었다. 

이렇게 이극돈은 김일손의 사초를 삭제하려다가 실패하자 그런 내막을 숨기고 세조에 관한 불경한 내용이 사초에 있다고 무고하여 김일손은  서울로 압송되었다. 3)

그런데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간한 『한국사 28 (조선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탐구당, 2003, p 187)에는 ‘이극돈이  김일손에게 이 사실을 삭제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고 되어 있고, 박시백과 이덕일의 책에는 이극돈이 직접 찾아가서 고쳐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적혀 있다. 4)

이이화도  “김일손은 김종직을 추종하는 사림파로 『성종실록』을 편찬 할 때에 사관으로서 이극돈의 비행을 적은 사초를 제출했다. 이극돈이 실록청 당상이 되어 사초를 정리하면서 이 기록을 읽고 김일손에게 빼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으나 김일손은 단연코 거절했다 ”고 적었다.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⓾ 왕의 길 신하의 길, 한길사, 2002, p 43-44)

하지만 이극돈이 김일손을 직접 만나 사초에 기록된 자신의 비행을 삭제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는 점은 의문이 간다.
 
『연산군일기』에는 이극돈이 김일손을 직접 만났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없고, 『연려실기술』 제6권 / 연산조 고사본말(燕山朝 故事本末)에 그 기록이 적혀 있다. 

무오년의 사화(史禍)

○ 김일손은 일찍이 김종직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극돈이 일찍이 전라감사로 있을 때 성종(成宗)의 초상을 당하였는데, 서울에 향을 바치지도 않고 기생을 싣고 다닌 일이 있었다. 김일손이 그 사실과 또 뇌물 먹은 일을 사초에 썼더니 이극돈이 고쳐 주기를 청했으나 그 청을 거절하자 김일손에게 감정을 품고 있었다. 《국조기사》

그런데 『연려실기술』에는 ‘이극돈이 정희왕후(세조의 왕비)의 초상 때 기생을 싣고 다닌 일을  성종의 초상(1494년 12월) 때’로 잘못 적어, 『연려실기술』의 신뢰성이 훼손되고 있다. 『연려실기술』이 인용한 「국조기사」의 기록이 의심스럽다. 5)

요컨대 이극돈이 김일손을 직접 만나 사초의 삭제 요청을 한 것 같지는 않다. 6)

사진  1. 연산군 묘 입구(서울시 도봉구 방학로 17길 46)

사진  2. 연산군 묘 (왼편, 오른편은 거창군부인 신씨묘)

 

1) 이목(李穆, 1471∼1498)은 1490년 성균관 유생 시절에 인수대비가 성종의 병을 낫게 하고자 무당으로 하여금 성균관 벽송정에서 굿을 하도록 했는데 유생들과 함께 제단을 부수고 무당을 쫓아냈다. 1492년 12월에는 영의정 윤필상(1427∼1504)을 간귀(奸鬼)로 규탄한 상소를 올렸다.
 

‘윤필상을 삶아 죽여야만 하늘이 비를 내리게 할 것’이라는 세간의 원성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 얼마 후 거리에서 윤필상은 이목을 만나 태연하게 물었다. “자네가 꼭 늙은 나의 고기를 먹어야 하겠는가?”

이목은 1495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성균관 전적(典籍)이 되었고, 1498년 무오사화 때 김일손과 함께 능지처사되었다.

2) 한편  이목의  편지에는 성중엄이 스스로 김일손의  사초가 한 글자라도 기록되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다고 했으나, 성중엄을 취조한 공초에는 이목이 성중엄에게 ‘만약 김일손의 사초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네가 기록하지 아니한 뜻을 쓰겠다.’고 경고한 것으로 적혀 있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12일 10번째 기사)

3) 김범, 사화와 반정의 시대, 역사의 아침, 2015, p 108

4) 박시백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7 연산군일기』 에서 “실록청 당상 이극돈이 사초를 살피다가 자신에 대한 민망한 기록을 발견하고 김일손을 직접 찾아가서 고쳐달라고 했으나 거절당하자, 이에 분을 품고 김일손이 쓴 문제의 ‘다른 기사’를 유출함으로써 사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p 69)”라고 적었다.


이덕일은 『조선이 버린 천재들』에서 “무오사화는 애초 실록을 편찬하는 실록청 기사관 (정6품) 김일손과 직속상관인 실록청 당상관 이극돈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김일손은 이극돈이 세조 때 전라감사가 된 것은 불경을 잘 외웠기 때문이고, 또 정희왕후 상 때 향을 바치지도 않고 장흥의 관기등을 가까이 했다고 사초에 기록했다. 이극돈이 고쳐달라고 부탁했으나 김일손은 단칼에 거부했다.(p 254)”라고 적었다.  

5) 『연산군일기』 1498년  7월12일 4번째 기사에는 ‘정희왕후 상 때 이극돈이 전라도 관찰사를 하였다’고 적혀 있다.

6) 『연산군 일기』 1498년 7월12일 4번째 기사를 보면, “김일손이 의금부 홍사호에게 ‘듣건대, 이극돈이 이 조항을 삭제하려다가 오히려 감히 못했다고 한다.”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듣건대’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김일손은 이극돈을 직접 만난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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