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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김세곤 (칼럼니스트)-13회 김일손, 사육신 사건에 대하여 사초에 올리다.
등록날짜 [ 2018년10월24일 07시28분 ]

1498년 7월12일에 유자광의 심문에 대한 김일손의 진술은 계속된다.   

"신의 사초(史草)에 기록한 바 (중략) 이개(李塏)·최숙손(崔叔孫)이 서로 이야기한 일과 박팽년(朴彭年) 등의 일과 김담(金淡)이 하위지(河緯地)의 집에 가서 위태로운 나라에는 거하지 않는다고 말한 일과, 이윤인(李尹仁)이 박팽년과 더불어 서로 이야기 한 일과, 세조가 그 재주를 애석히 여기어 살리고자 해서 신숙주(申叔舟)를 보내어 효유하였으나 모두 듣지 않고 나아가 죽었다는 일은 모두 고(故) 진사(進士) 최맹한(崔孟漢)에게 들었다." 하였다. (1498년 7월12일 5번째 기사)

김일손의 진술에서 이개 · 박팽년 · 하위지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니 1456년 6월의 단종 복위운동과 관련이 있다. 먼저 김일손에게 말을 전해 준 고(故) 진사  최맹한이 누구인지 알아보자. 

최맹한은 4군을 개척한 최윤덕의 손자이고, 이개와 서로 이야기한 최숙손의 아들이었다. 그는 1456년 6월26일에 단종복위운동 관련과 관련하여 부친 최숙손, 친척 최계한과 함께 고신(직첩 告身)이 거두어지고 먼 지방에 안치되었다. (세조실록 1456년 6월 26일) 1)

이어서 최맹한은 1458년 2월2일에는 이배되었으며 (세조실록 1458년2월2일), 10년 후인 1468년 7월에 또 다시 유배지가 옮겨졌다. (세조실록 1468년 7월21일)


그런데  1468년 9월6일에  최맹한은 유배에서  풀려났는데, 이는 세조의 병이 악화되자 계유정난 이래의 난신 2백여 인을 방면한 것이었다. 12년간의 유배 후에 풀려 난 것이다. 이후 3년이 지난 1471년(성종 2년) 2월 3일에 최맹한은 고신(告身)을 돌려받았다.

13-1  사육신공원의 절의사 

그러면 단종복위운동과 관련한 김일손의 진술을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이개·최숙손(崔叔孫)이 서로 이야기한 일이다. 이개와 최숙손이 서로 이야기 한 일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이개는 사육신의 한 사람이고 최숙손은 세종 때 4군을 개척한 최윤덕(1376~1445) 장군의 맏아들이다. 최숙손은 무과에 급제하여 1444년(세종 26)에 경상우도도절제사가 되었고, 1455년(단종 3) 전라도도절제사가 된 데 이어 세조가 즉위하자 중추원 지사가 되었는데, 1456년(세조 2)에 6월26일에 단종복위운동과 관련되어 아들 최맹한과 함께 직첩이 거두어지고 유배되었다. 2)

둘째, 박팽년 등의 일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다. 사육신 박팽년은 부친 박중림, 형제들인 박인년 · 박기년 · 박대년 · 박영년, 박팽년의 아들 박헌 · 박순 · 박분, 매제 봉여해가 모두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었다. 

셋째, 하위지의 집에 가서 위태로운 나라에는 거하지 않는다고 말한 김담(金淡)이 누구인지도 알 수가 없다. 김담(1416∼1464)을 조선왕조실록과 인터넷에서 찾았더니 세종 때의 천문학자로 나온다. 그런데 그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난 1456년에 안동부사를 했고 1458년에는  경주부윤을 하여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아닌가 싶다.

넷째, 이윤인(李尹仁)이 박팽년과 더불어 서로 이야기 한 일도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윤인도 1455년(세조1)에 좌랑으로서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고, 1461년 수장령(守掌令)에 올랐으며 나중에 전라도관찰사까지 하여 단종복위운동 피해자가 아니다. 그 역시 동명이인으로 보인다.

다섯째, ‘세조가 그 재주를 애석히 여기어 살리고자 해서 신숙주를 보내어 효유하였으나 모두 듣지 않고 나아가 죽었다는 일’은 『홍재전서』 등 여러 사료에 자세히 나와 있다. 3)

1456년 6월3일에 세조는 믿었던 신하들이 반역을 했다고 생각하여 화가 풀리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집현전 학사 출신 박팽년 · 하위지 등의 재주를 아껴서 그들이 죄를 뉘우치면 살려줄 생각도 있었다. 세조는 비밀리에 신숙주를 시켜서 박팽년과 하위지를 회유했다. 신숙주는 의금부 감옥에서 은밀하게 박팽년부터 만났다. 신숙주는 집현전 시절부터 박팽년과 친했으니 말이 통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팽년은 죽음의 길을 택했다. 신숙주는 하위지도 접촉했으나 하위지는 ‘반역자는 응당 죽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고, 이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박팽년 등은 의금부 감옥 안에서 그 유명한 ‘사육신 충의가’ 또는 ‘육신애상가(六臣哀傷歌)’를 불렀다.

먼저 박팽년이 읊었다.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이 밤인 듯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아 가실 줄이 있으랴

이개도 폐부를 도려내는 애잔한 시를 읊었다.

창안에 혔는 촛불 눌과 이별하였관대
겉으로 눈물지고 속 타는 줄 모르는가
저 촛불 나와 같아서 속 타는 줄 모르더라.

사육신, 이들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화신(化身)이었다.


사진 13-2  서울 노량진 사육신 공원의 이개 묘   



1) 세조실록 1456년 6월 26일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기를, (전략) 이개(李塏) 등의 사건에 관련된 최숙손(崔淑孫)·홍귀동(洪貴同)·최맹한(崔孟漢)·최계한(崔季漢)의 고신
(告身)을 거두고, 먼 지방에 안치(安置)하라.(후략)
 

이개 등의  사건은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을 말한다.

성종실록 1471년(성종 2년) 2월3일   
 

이조와 병조에 전지(傳旨)하여, 신수무·이휘·최맹한(崔孟漢)·최계한(崔季漢)·박위겸 등의 고신(告身)을 돌려주었다.

최맹한과 최계한은 모두 최윤덕의 후손이다. 

2) 한편 최숙손의 동생 최영손은 강원도 영월 장릉(단종의 능) 장판옥에  조사위(朝士位) 186인중 한 명으로 모셔져 있다.

3) 홍재전서(弘齋全書) 제60권 잡저(雜著) 7  (인터넷 ‘한국고전 종합 DB’에서 검색 가능함)
 

정단(正壇) 32인  

증 이조 판서 행 형조 참판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

판서 중림(仲林)의 아들이며, 자는 인수(仁叟)이다. (중략) 병자년(1456, 세조2)에 성삼문 등과 상왕의 복위를 모의하다가 수감되었을 적에, 세조가 그의 재주를 아까워하여 몰래 타이르기를, “네가 나를 섬기면 마땅히 너를 사면하리라.” 하니, 팽년이 웃으며 대답도 않고, 상을 부를 적이면 그때마다 ‘나리(進賜)’라고 하여, 상이 “그대가 일찍이 나에게 신하라고 하고서 감히 그럴 수 있는가.” 하자, 답하기를, “내가 어떻게 나리의 신하라는 말이오. 저번에 관찰사로 있을 적의 장독(狀牘)에도 신(臣)이라 일컬은 적은 없습니다.” 하였는데, 장독을 비교하여 보니 모두 ‘거(巨)’ 자였다.

옥중에서 죽자 광묘(세조)가 일컫기를, “팽년 등은 당세의 난신이요, 후세의 충신이다.” 하였다. (후략) 숙종 신미년(1691, 숙종17)에 복관되었으며, 영종 무인년(1758, 영조34)에 이조 판서에 추증되고 충정(忠正)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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