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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43회

김세곤 (칼럼니스트)사헌부 지평 김언신,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말하다.
등록날짜 [ 2019년06월01일 09시14분 ]
1477년 8월24일에 도승지 현석규가 체임을 청했다. 하지만 성종은 윤허하지 않았다. 8월26일에 현석규는 다시 체임을 청했다.

성종은 그에게 특별히 두 자급(資級)을 올려주면서 내가 장차 크게 쓰리라 하였다. (성종실록 1477년 8월26일 5번째 기사) 이날 성종은 현석규를 대사헌으로 임명했다. (성종실록 1477년 8월 26일 7번째 기사) 성종은 3일 뒤인 8월29일에 현석규를 형조판서로, 이숭원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김언신을 사헌부 지평으로 임명했다. (성종실록 1477년 8월29일 5번째 기사)

그런데 9월4일에 사헌부 대사헌 이숭원과 사간원 사간 김계창 등이 현석규의 일에 관하여 상소했다. "생각건대, 주상 전하께서 정신을 가다듬고 다스림을 도모하며 사람을 임용하는 것이 어진 자는 반드시 쓰여지고 공이 없는 자는 나오지 못하였는데, 다만 근일에 도승지 현석규를 쓴 것은 여러 사람의 마음에 만족되지 않아 사론(士論)이 비등하니, 신 등은 실망을 이기지 못합니다.

생각건대, 신 등이 현석규가 아랫사람을 검속(檢束)하지 못하고 동렬(同列)과 분노하여 다투었으므로 체임시키기를 힘껏 청했는데 전하께서는 현석규를 대사헌으로 승진시키시고, 신 등이 또 바꾸기를 청했으나 형조판서를 제수하시었습니다.

대사헌은 종2품이고 판서는 정2품이며 육경(六卿)이니, 이것은 대간(臺諫)이 다투면 전하는 오히려 승진시켜 대간과의 논쟁을 더욱 격렬하게 하고 있습니다.

관직을 임명하는 데에도 승지를 거쳐 참판이 되고 그 다음에 판서가 되는데 도승지로서 바로 판서가 된 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현석규는 마땅히 죄를 물어야 하는 자인데, 도리어 차서를 뛰어넘는 은혜를 베푸시었으니 이것이 어찌 사람 쓰는 도리이겠습니까?

급히 성명(成命)을 거두시고 공평한 체모를 보이고 의혹을 푸소서." 하지만 성종은 들어주지 않았다. (성종실록 1477년 9월4일 3번째 기사) 다음날인 9월5일에 성종은 경연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사헌부 지평 김언신이 아뢰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간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물 흐르듯 하시므로 온 나라의 신민이 모두 태평의 기약을 우러러 바랐는데, 오직 현석규의 일에 대하여는 전하께서 들어주지 않으시니, 모두가 실망하고 있습니다.

(중략)
현석규가 오래 대간에게 논박 받아 왔는데 전하께서 또 차서를 뛰어넘어 관직을 제수하시었으니 이것은 전하께서 대간의 말에 분노하여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생각건대 현석규는 음험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간원에서 질문을 당할 때 현석규가 말하기를, ‘전일에 이세좌는 신이 울며 간하였으므로 죄를 받지 않았습니다.’하였는데, 이것은 대간을 죄주지 않은 것을 제 공이라 하여 자기가 위엄과 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인 것이니, 이것이 한 가지입니다.

김주가 증여한 물건을 추징하기를 청하여 원망이 주상께 돌아가게 하였으니, 이것이 한 가지입니다. 송익손이 그 집에 와서 청탁할 때에는 곧 아뢰지 않고 나중에 발설하여서 여러 승지(承旨)의 청을 들어준 잘못을 드러냈으니, 이것이 한 가지입니다.

현석규가 평시에 하는 일을 동료가 모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조식의 일을 여러 승지가 사사로 의논하여 아뢰었는데, 현석규가 눈을 부라리고 팔뚝을 뽐내어, 여러 승지가 모두 자기 말을 듣고 자기 뜻을 어기지 못하게 하려 하였으니, 이것이 한 가지입니다.

간원에서 논박할 때를 당하여는 반성하지 않고 차자(箚子)를 올려 눈물을 흘려가며 말의 근원을 묻도록 청하여 대간의 입을 다물게 하려 하였으니, 이것이 한 가지입니다.

이렇게 한석규는 음험한 자입니다 " 이러자 성종이 전교했다. "그대가 그렇게 말하지마는, 팔뚝을 뽐냈느니 하는 일은 모두 간관이 만든 말이다.

현석규가 김주는 강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사(私)를 두둔한 혐의가 있고 또 증여한 물건을 추징하자고 아뢰었지마는, 조식이 무고로 죄를 물은 것은 내가 한 일이고, 현석규의 말로 인한 것이 아니다.

김주가 도망하면 내버려두고 나타나면 추징하는 것은 법으로 마땅히 할 일인데 어찌 현석규가 과실을 엄폐하는 것이라고 말하느냐? 현석규가 여러 승지들이 한한의 청을 들었으리라고 의심하였다고 말하지마는 이는 사헌부도 의심한 일이다.

그대는 현석규가 음험하다고 말하니, 그러면 그를 소인(小人)으로 여기는 것이냐?" 다시 김언신이 아뢰었다. "사람됨이 음험하면서 간사한 소인입니다. 전하께서 이 사람의 간사한 것을 살피지 못하시니, 이는 신이 깊이 근심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덕종· 신종(神宗)은 모두 영명(英明)한 임금이지마는, 덕종이 일찍이 이필(李泌)에게 이르기를 ‘사람들이 노기(盧杞)가 간사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러한 것을 깨닫지 못하겠다.’ 하니, 이필이 말하기를, ‘이것이 노기가 간사하다는 까닭입니다.’ 하였고, 신종은 왕안석의 간사함을 알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의 창생을 그르쳤습니다.

현석규가 이 두 가지를 겸하였는데 전하께서만 알지 못하시니, 이것이 현석규가 참으로 간사하다는 까닭입니다. 현석규의 진퇴에 국가의 안위와 치란(治亂)이 달려 있습니다.

현석규의 소인됨은 다투는 날에 홀연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바깥사람은 다 아는데 전하만 홀로 알지 못하시니, 이것이 신이 크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노기(盧杞)는 중국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 정승으로 전횡을 일삼아 정사를 문란하게 한 사람이고, 왕안석(1021~1086)은 북송 신종 때 신법 개혁을 했는데, 포용력 없이 뺄셈의 정치를 거듭한 끝에 한때의 동료들을 적으로 만들고 끝내 심복들에게서도 배신당했다.

나중에 주희 등의 성리학파는 1126년에 멸망한 북송의 멸망책임이 왕안석에게 있다고 주장했고, 이후 왕안석은 대체로 “소인”으로 굳어졌다.
 
이러자 성종이 말했다. "그대는 현석규를 소인이라고 말하느냐?” 김언신이 답했다. "참으로 소인입니다." 임금이 물었다. "어떻게 아느냐?" 김언신이 말했다. "근래의 자취로 보아서 압니다. 맹자가 ‘그 눈동자를 보면, 사람이 어찌 숨기랴?’하였는데, 현석규의 용모를 보면 또한 음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종이 말했다.
"사람을 용모로만 알 수 있느냐? 전조(前朝)의 주열(朱悅)은 얼굴이 추하기가 귀신같으나 마음은 맑기가 물 같았으니, 얼굴을 보고 마음을 아는 것은 성인도 어려운데, 하물며 김언신이겠느냐?"

김언신이 말했다.
"노기(盧杞)가 얼굴이 추하기 때문에 곽자의가 보고 그 처자를 피하게 하며 말하기를, ‘노기는 음험한 자이니 처자가 보고 웃으면 내 자손은 씨가 남지 않을 것이다.’ 하였으니, 용모로도 족히 심술의 은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가 ‘현석규는 소인이고, 내가 현석규에게 농락당하였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세(二世)가 이사(李斯)에게 속은 것 같은데, 그대가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

김언신이 말했다. "신이 언관이 아니어서 감히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석규가 소인인 것을 좌우의 신하로서 누가 알지 못한다 하겠습니까?"

이러자 성종은 좌우 정승들에게 말했다.
"정승들이 현석규가 소인인 것을 일찍이 알면서 말하지 않았으니, 이것도 허물이다."

영사(領事) 심회가 말했다.
"김언신은 현석규가 벼슬을 받은 것이 너무 높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홍응이 말했다.
"현석규가 소인인 것을 신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자 성종이 단호하게 말했다.
"대신이 모두 소인이라고 하지 않으니, 이것은 김언신이 먼저 스스로 임금을 속인 것이다. 정승과 전조(銓曹 : 이조와 병조)에 두루 물어서, 만일 그대 말이 실상이 없다면 그대는 임금을 속인 죄를 받아야 할 것이다."

김언신이 말했다.
"신이 마땅히 극형을 받겠습니다." (성종실록 1477년 9월 5일 기사 2번째 기사)

사진 1 돈화문 (창덕궁 정문)

사진 2 진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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