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모드 | 로그인 | 회원가입
2019년08월20일tue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사설ㆍ칼럼 > 김세곤칼럼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도학과 절의의 선비, 죽천 박광전 (2)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퇴계 이황과의 인연
등록날짜 [ 2019년07월29일 19시15분 ]
죽천 박광전은 1566년 겨울, 나이 41세에 퇴계 이황(1501∽1570)에게 공부를 배우고자 안동에 갔다. 그는 9세 때 고흥에 귀양 온 홍섬에게 공부를 배웠고 1547년에는 송천 양응정의 문인이 되었다.1) 죽천은 처남 문위세(1534∽1600)와 같이 안동으로 갔다.

문위세는 외숙부 윤복(1512∽1577)이 1566년에 안동도호부사로 근무할 때 윤복의 세 아들 윤강중 · 흠중 · 단중과 함께 퇴계 밑에서 수학했는데 이 때 박광전도 같이 간 것으로 보인다. 2)

1566년 겨울을 안동 도산서당에서 지낸 박광전은 1567년 정월에 퇴계와 이별했다.

퇴계는 “만년에 좋은 벗을 만났는데 갑자기 헤어지게 되었으니 어찌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이별시 5수를 지어 헤어지는 마음을 전했다. 또한 퇴계가 편찬한 『주자서 절요』 한 질을 주었다.

먼저 퇴계의 이별시 5수를 살펴보자.

제1수
병든 몸은 험하고 머리는 백발로 가득한데
신음하는 속세의 나,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원컨대 장차 서툰 재주와 늦은 명성으로
넘치는 빛을 완상하다 죽어서야 그치리.

제2수
나를 위한 공부는 모름지기 극기(克己)로부터 시작하고
마음 지키는 길은 오직 마음 찾음에 달려있네.
우리들 그 누가 이 뜻을 모를 것인가 마는
어찌하여 참다운 삶을 위해 힘쓰지 않는가.

유학자는 모름지기 극기복례(克己復禮)하라는 권고 같다.

이어서 제3수이다.
한 세상에 하늘은 영재를 몇 명이나 낳는가.
이익과 명예는 바다와 같아 그릇될 까 두렵네.
만일, 설 자리 알아 내 할 일을 구하려면
운곡(주자)의 문하에서 참 마음을 쌓아야 한다오.

퇴계는 ‘학문의 시작과 근본은 오로지 주자에게 있다’면서 중국 송나라 성리학자 주희(1130∽1200)에 심취했다. 그는 주자의 학문과 사상이 함축된 서간문 『주자서(朱子書)』중 중요한 내용을 발췌하여 『주자서 절요(朱子書節要)』를 편찬했다.

제4수
아득히 제멋대로 달려온 나의 반 평생이여.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듯 주자를 배웠으나
늙고 병들어 실수 많음을 몹시 부끄러워했는데
죽천, 그대의 도움으로 다시 광명을 얻었다오.

제5수
일월의 찬 냇물에 뜻이 더욱 굳어지니
고향에 돌아가서도 이 뜻을 바꾸지나 말게나.
달콤한 복숭아를 날려 보낼 수 없지만
귀중한 밝은 구슬은 단지 연못에 잠겨 있다네.

퇴계는 죽천에게 학문에 더욱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사진 1 화산재 (보성군 겸백면 사곡리에 있는 박광전의 재실이다.)

사진 2 퇴계의 이별시 편액 (화산재 마루에 걸려 있다).

고향 보성으로 돌아온 죽천은 1567년 2월에 퇴계가 이별 선물로 준 『주자서 절요』의 서문 뒤에 글을 적었다. 이후 죽천은 퇴계가 준 『주자서절요』를 열독하였다.

그러면서 퇴계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약초를 보내면서 『주자서 절요』의 내용 중 의문나는 부분을 물었다. 퇴계도 죽천에게 답서했는데 이는 『퇴계집』 내집, 권15에 ‘상사 박광전과 수재 윤흠중에 답한 편지’에 수록되어 있다.

죽천은 『주자서절요』를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곳이 있으면 별도로 문목(問目)을 만들어 퇴계에게 질의하였고, 퇴계는 죽천의 질문에 대하여 답서를 보냈다.

이러한 죽천의 질의와 퇴계의 답장을 정리한 책이 바로 『주자서절요 문목』이다. 문목은 85개나 되는데 그 유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유형은 의미를 잘 모르겠으니 해석을 구하는 질문이다. 문목의 대부분은 “그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란 질문이다.

글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것은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잘 알기 어렵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사유와 철학적 언어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주자서』에는 이런데 『주자서 절요』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요?’라는 질문이다. 죽천의 책 읽기는 정말 정독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주자서』와 『주자서 절요』를 일일이 대조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고 있다.

사진 3 주자서 절요

1) 양응정(1519∽1581)은 조광조의 시신을 수습한 학포 양팽손의 아들이다.
 
2) 윤복은 어초은 윤효정의 4남으로,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직계조상인 귤정 윤구(1495∽1549)의 동생이다.
올려 0 내려 0
김세곤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김세곤칼럼>도학과 절의의 선비, 죽천 박광전 (3)
<김세곤칼럼>도학과 절의의 선비, 죽천 박광전 (1)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51회 (2019-07-30 00:19:50)
<김세곤칼럼>도학과 절의의 선비, 죽천 박광전 (1) (2019-07-23 00:05:00)
「대구․경북 사회적경제 ...
<독자기고>조강봉의 울릉...
울산 남구, 민간협력 확대 복지...
서울시‘우리 동네가게 아트테...
전남도, '쌀의 날' 떡 나눔
시흥시‘찾아가는 미세먼지 저...
<김세곤칼럼>도학과 절의...
현재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