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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4회)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정약용, 솔잎 먹어치우는 송충이 시를 짓다.
등록날짜 [ 2019년09월16일 11시0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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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1월 하순에 강진에 유배 온 정약용은 강진읍내 동문 밖 주막집 노파가 내준 토담집 방 한 칸에서 지냈다.

1802년 초봄에 주막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던 아전의 자식들이 정약용에게 배우러 찾아왔다. 황상, 손병조 등 네 사람이었다. 다산은 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그러면서 그도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

1803년에 정약용은 주막의 토담집 방을 ‘사의재(四宜齋)’라고 이름 지었다. 사의재기를 읽어보자.

“사의재(四宜齋)란 내가 강진에서 귀양 살 때 거처하던 방이다. 생각은 마땅히 담백해야 하니 담백하지 못하면 곧바로 맑게 해야 한다. 외모는 마땅히 엄숙해야 하니 엄숙하지 못하면 곧바로 단정히 해야 한다.

말은 마땅히 적어야 하니 말이 많다면 빨리 그쳐야 한다.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니 무겁지 않으면 곧바로 더디게 해야 한다. 이에 그 방의 이름을 ‘사의재’라고 하였다.

마땅하다[宜]라는 것은 의롭다[義]라는 것이니, 의로 규제함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이 염려되고, 뜻과 학업이 쇠퇴하여 가는 것이 슬퍼지므로 자신이 성찰하기를 바랄 뿐이다.”

신독(愼獨)과  수신(修身)의 자세를 갖추어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 같다.

사진 1  동문 주막집 

사진 2  사의재 편액


정약용은 1803년(순조3) 가을에  ‘애절양 (哀絶陽)’ 시를 지었다. 황구첨정, 백골징포 등 군포세 수탈을 고발한 것이다.

이어서 정약용은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치우다 [蟲食松]’ 시를 지었다. 이 시는 소나무를 선량한 백성으로, 송충이를 탐관오리로 상정하고 읊은 우화시(寓話詩)이다. 

그러면 시를 읽어보자.  

그대 보지 않았던가아니 보았던가, 천관산 가득 메운 소나무를  君不見天冠山中滿山松
천 그루 만 그루가 뭇 봉우리마다 다 뒤덮었네   千樹萬樹被衆峯
울창하고 굳굳한 노송뿐만 아니라  豈惟老大鬱蒼勁
어여쁜  어린 솔도 총총히 돋았는데  每憐穉小羅丰茸

천관산은 전남 장흥군에 있는 산이다. 장흥과 강진은 인접해 있다. 
 
하룻밤 새 해충이 온 천지를 가득 메워      一夜沴蟲塞天地
뭇 주둥이가 솔잎을 떡 먹듯 하였다네.      衆喙食松如餈饔

갓난 때도 살 빛 검어 볼썽사납더니         初生醜惡肌肉黑
노란 털에 붉은 반점 자랄수록 흉측하네.     漸出金毛赤斑滋頑兇

처음에는 잎을 갉아먹어 진액을 말리더니     始𠯗葉針竭津液
살갗까지 파고들어 옹이가 되게 하지         轉齧膚革成瘡癰
                                         
가지하나 까닥 못하고 소나무 점점 말라붙어   松日枯槁不敢一枝動
곧추서서 죽는 모습 어찌 그리 공손한가.      直立而死何其恭

연주창에 문둥병 걸린 가지 줄기 처량하니     瘰柯癩幹凄相向
상쾌한 바람 울창한 숲을 어디 가서 찾으리오.  爽籟茂樾嗟何從

하늘이 솔을 낼 때 깊은 생각 있었기에         天之生松深心在
사시사철 보살피고 한겨울에도 푸르지.         四時護育無大冬

뭇 나무들 다 제치고 가장 높은 사랑받았는데   寵光隆渥出衆木
복사꽃 · 오얏꽃과 화려함을 다툴손가.          況與桃李爭華穠

태실과 명당이 만약에 무너지면              太室明堂若傾圮
들보되고 기둥되어  조정에 들어왔고         與作脩梁矗棟來朝宗

왜놈이나 유구가 만약에 덤벼올 때엔           漆齒流求若隳突
큰 배를 만들어 적의 예봉 꺾었지            與作艨艟巨艦摧前鋒

소나무는 대들보로 쓰였고, 판옥선을 만드는 자재였다. 판옥선은 삼나무로 만든 왜선보다 튼튼했다. 한편 유구는 오키나와이다. 1879년에 일본은 유구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켰다. 

네 욕심만 채우느라 지금 이리 죽여 놨으니   汝今私慾恣殄瘁
말하려니 내 기가 받쳐 오르네.               我欲言之氣上衝

어찌해야  번개 같은  벼락도끼를 얻어다가   安得雷公霹靂斧
네 족속들 모조리 잡아 이글대는 용광로에다 처넣어버릴까 
                                          盡將汝族秉畀炎火洪鑪鎔

 

벼락 도끼로 모두 찍어서 이글대는 용광로에 처넣고 싶은 것이 어찌 송충이 뿐일까? 선량한 백성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탐관오리는 모두  송충이다. 지금은 어떤가? 우리 사회를 좀 먹는 송충이들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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