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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5회)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모기; ‘苛斂誅求 일삼는 탐관오리’
등록날짜 [ 2019년09월22일 19시48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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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년에 정약용은  황칠(黃漆) 시를 지었다. 이 시에서 정약용은 공납의 폐해를 지적했다. 공납(貢納)은 백성이 그 지방의 토산물을 조정에 바치는 것인데 황칠도 공납 대상이었다.

시(詩)를 읽어보자. 

그대 아니 보았던가. 궁복산(弓福山)에 가득한 황칠을 
금빛 액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지   
    
껍질 벗기고 즙 받기를 옻칠 받듯 하는데   
아름드리 나무애서 겨우 한잔 넘칠 정도    

궁복산이 어디인가? 강진 근처 어디 일 것이리라. 황칠나무는 해발 700m 이하의 전라도 · 제주도 해안지대에서 야생한단다. 
 
상자에 칠을 하면 붉고 푸른 색을 뺏어      
잘 익은 치자물감 어찌 이와 견줄손가.      

서예가의 경황지로는  더더욱 좋아서
납지(蠟紙) 양각(羊角) 모두 그 앞에선 쪽도 못쓰네. 
  

경황은 경황지(硬黃紙)를 말하는데 당지로 노란 물감을 들인 종이이다. 서예지로는 최고이다. 납지는 밀이나 백랍을 먹인 종이이고, 양각은 양각등(羊角燈)으로 염소 뿔을 고와 얇고 투명한 껍질을 만들어서 씌운 등이다. 그런데 다산은 황칠은  납지, 양각보다 단연 뛰어남을 강조한다.  

황칠(黃漆)은 금빛을 띠면서도 투명해 나무 바탕의 나뭇결을 생생하게 나타내어 목칠공예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고려도경〉에는 황칠이 조공품이라고 적혀 있고, 〈계림유사〉에도 고려의 황칠이 섬에서 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나무 명성이 온 천하에 알려져서        
박물지에 왕왕   그 이름을 올라있네       
   
공물로 지정되어 해마다 공장에게 실려 가는데
징구하는 아전들 농간을  막을 길이  없어    

지방민들 그 나무를 악목이라 이름하고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  
   
   

방납의 폐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지방 주민들이 황칠나무를 베었을까?
나무가 없어지면 공물로 바칠 이유도 없지 않는가.
 
지난 봄에 임금님이 공납 면제하였더니   
영릉복유 되었다니 이 얼마나 상서인가   
 

영릉복유(零陵復乳)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유종원(773∽819)의 〈영릉복유혈기(零陵復乳穴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영릉(零陵)에서 생산되는 석종유(石鍾乳)를 공물로 바치는데, 그것을 채취하기가 너무 힘이 들고 게다가 정당한 보상도 없어 지방민들이 석종유가 다 없어졌다고 보고하였다.

그 후 최민이 자사(刺史)로 와서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은 감복하여 석종유가 다시 생겨났다고 보고하였단다.

바람 불어 비가 오니 죽은 등걸 싹이 돋고   
가지가지 죽죽 뻗어 푸르름이  어울리네.    


한편  1804년 여름에 정약용은 주막집 토담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모기 한 마리가 왱하고 날아다니면서 물어뜯었다.

견디다 못해 정약용은 ‘얄미운 모기[憎蚊]’ 시를 지었다.   

맹호가 울밑에서 으르렁대도  
나는 코골며 잠잘 수 있고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있어도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모기 한 마리 왱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단다.

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
베 이불을 덮어쓰고 이마만 내놓으면
금방 새 울퉁불퉁 혹이 돋아 부처 머리처럼 돼버리고
제 뺨을 제가 쳐도 헛치기 일쑤이며
넓적다리 급히 만져도 그는 이미 가고 없어

싸워봐야 소용 없고 잠만 공연히 못 자기에
여름밤이 지루하기 일 년과 맞먹는다네.

몸통도 그리 작고 종자도 천한 네가
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
밤으로 다니는 것 도둑 배우는 일이요
제가 무슨 현자라고 혈식을 한단 말인가.

생각하면 그 옛날 대유사에서 교서할 때는
집 앞에 창송과 백학이 줄서 있고
유월에도 파리마저 꼼짝을 못했기에
대자리에서 편히 쉬며 매미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흙바닥에 볏짚 깔고 사는 신세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로다.

‘지금은 흙바닥에 볏짚 깔고 사는 신세(如今土床薦藁鞂)’라는 마지막 구절은 정약용이 기거한 토담집 방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의 강진 사의재는 너무 호사스럽다. 이 시 구절을 고증삼아 좀 더 누추하게 복원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인데.

그런데 어찌 보면 모기는 ‘백성을 가렴 주구하는 탐관오리’로 비유된다.  일종의 우화시(寓話詩)이다.


사진 1.  사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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