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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66회

김세곤 (칼럼니스트)충청도사 김일손, 이익과 병폐 26개조를 상소
등록날짜 [ 2019년11월11일 00시25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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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사 김일손의 상소는 이어진다. (연산군일기 1495년 5월28일자)

“신이 듣기로는 ‘재앙은 무단히 생기는 것이 아니요, 허물은 반드시 돌아가는 데가 있다.’ 하옵는데, 신이 충청도 한 도에만 매여 있어서 사방의 재앙을 알지 못하오나, 한 도를 가지고 보더라도 몇 달 동안에 재앙이 매우 심하였습니다. 지난 12월 27일에 서산(瑞山) 등지에 지진이 있었는데, 전하께서 상주(喪主)가 되신 뒤의 일입니다. 올해 정월 18일에는 한산(韓山) 등지에 지진이 있었고, 2월 초하루에 3분의 1이나 먹은 일식이 있었으며, 2월7일에는 대낮에 별이 떨어졌으니, 괴이함이 매우 심합니다.

옛날 위상(魏相)이 한(漢)나라 정승이 되고, 이항(李沆)이 송(宋)나라 정승이 되어, 날마다 사방의 재변을 임금에게 아뢰었으니, 오늘날의 위상과 이항의 직책을 맡은 자가 능히 위상·이항의 마음을 간직하여 위상·이항처럼 사방에서 일어나는 재변을 전하에게 아뢰고 경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나라 정승 위상(魏相 미상~BC 59)은 젊어서 『주역』을 배우고, 군졸사(郡卒史)가 되었다. 소제(昭帝) 때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대책(對策)이 좋은 평가를 받아 무릉령(茂陵令)이 되었는데 잘 다스렸다.

나중에 하남태수(河南太守)로 옮기자 지방의 호족들이 두려워했다. 선제(宣帝)가 즉위하자 대사농(大司農)에 임명되고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옮겼다. 대장군 곽광(霍光)이 죽자 그의 아들 곽우(霍禹)가 대장군이 되고, 형의 아들 곽산(霍山)이 영상서사(領尙書事)이 되어 권력이 집중되면서 횡포를 부렸다.


이에 그가 곽씨의 권한을 약화시킬 것을 건의하니 황제가 좋게 여겼다.

지절(地節) 3년(기원전 67) 위현(韋賢)을 대신해 승상이 되고, 고평후(高平侯)에 봉해졌다. 일찍이 선제가 경솔하게 출병하여 흉노(匈奴)를 공격했다고 충고했다. 또 한나라가 흥성한 이래 국가에 유익한 행사와 명신들이 말한 바를 조리 있게 아뢰어 선조(先朝)를 본받을 것을 건의했다. 대개 이런 건의는 받아들여졌다. 음양(陰陽)을 모든 일의 근본이라 생각했으며, 정치도 음양에 따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송의 재상 이항(李沆 947~ 1004)은 980년에 진사에 급제하고 우찬선(右贊善, 찬선은 왕세자의 교육을 맡던 관직)대부와 저작랑(著作郞, 국사편찬 담당 관직)을 역임했다. 986년에 우보궐(右補闕, 보궐은 황제 휘하의 사간원), 지제고(知制誥, 국왕의 교서 작성 직) 등을 맡았다.

991년 이항은 태종을 섬겨 강연에 참여했는데, 태종은 그를 보고 “품격 있고 단정하며 장중한 사람이다. 명백하게 존귀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992년에는 참지정사(參知政事, 송나라의 재상 다음 가는 벼슬)에 임명되었고 993년에는 허난(河南)지부(知府, 행정수장)를 지냈다.

태종이 아들 조항(훗날의 진종)을 황태자로 삼으면서 이항을 예부(禮部) 시랑으로 임명했다. 진종이 즉위하자 그는 직접 북벌에 나서면서 이항에게 수도에 남아서 지키도록 했다. 진종이 돌아오자 이항은 교외에서 그를 맞이했고, 진종은 그를 위로하며 문하(門下)시랑과 상서우복야(尙書右仆射, 상서성의 정2품 벼슬) 관직을 주었다.

진종은 자신이 채택한 치국 방법이 적합한지 이항에게 자주 의견을 구했다. 이항은 “겉치레만 있는 경박한 사람들을 임용하지 않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입니다”라고 했다. 진종은 그게 누구냐고 물었고, 이항은 매순(梅詢), 증치요(曾致堯) 등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나중에 증치요가 온중서를 보좌하여 산시(陝西)성을 관리하게 되었다. 이항이 지칭한 경박한 무리들은 이 일을 보고 모두 쾌재를 불렀고, 이항은 매우 언짢아하며 증치요를 파면하고  다른 사람을 온중서의 보좌관으로 천거했다.

진종은 간신들이 당파를 결탁하여 통제하기 어렵고 왕실이 쇠락해가니 간사한 자를 구별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항은 “아첨하는 사람들의 말이 충심인 듯하고, 간교한 자들의 말이 믿을 만한 듯이 느껴지지만, 이는 당나라 재상 노기가 덕종을 속이고 기만한 것과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진종은 “간사한 자들을 말로는 판별하기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발각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1004년에 이항은 병을 얻었다. 진종은 어의를 보내 진찰하도록 하고, 직접 찾아가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러나 이항은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일손의 상소는 이어진다.

“만약 천도(天道)가 아득하여 재앙과 허물을 추측하기 어렵다 해서 스스로 경계하여 반성하지 않는다면 전하와 여러 신하들의 복이 아닙니다.

신이 영춘현(永春縣)에 떨어진 이물(異物)을 보았는데, 세상에 장화(張華)가 없으니 누가 그 괴이한 것을 분변하겠습니까. 신이 듣자오니, 조정에서 쪼개어 보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의심한다 하는데, 신의 생각에는 돌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나 별이 떨어지면 돌이 되는 것이니, 이것 또한 공중에서 변화된 것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신이 감히 당장에 어떤 사건을 지적해서 그 재변에 해당된다고 증거 댈 수는 없사오나, 전하께서는 마땅히 몸을 되돌아보고 마음에서 찾아서 경계하고 삼가고 두렵게 여겨, 하늘의 꾸지람에 답하여야 할 때입니다.

하늘이 전하에게 임(臨)한 것이 바로 전하께서 여러 신하에 임한 것과 같아서, 전하께서 여러 신하에 경계하는 데는 형벌이 있고, 하늘이 전하를 경계하는 데에는 재변이 있으니, 그 일은 다르나 이치는 같습니다.”

김일손은 재변이 일어나면 하늘의 꾸지람으로 생각하고 임금이 삼가고 두려워해야 한다고 상소했다. 두려워 할 줄 알면 흥하고,  자화자찬, 자만하면 망한다.  

사진 1 자계서원 (경북 청도군)

사진 2 보인당 (자계서원의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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