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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23회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정약용, 파지촌의 아전 시를 쓰다.
등록날짜 [ 2020년02월09일 18시01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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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은 1810년에 ‘용산리’ 시에 이어 ‘파지리(波池吏 파지촌의 아전)’ 시를 지었다. 파지촌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강진 군 어느 마을이리라.

이 시는 아전들이 파지마을에 들이닥쳐 마을에 농부라고는 없는데 애꿎은 고아와 과부를 결박하여 성 앞에 세워놓았다. 이윽고 도망 못 간 선비 한 사람을 잡아서 나뭇가지에다 거꾸로 매달고 마을 사람들에게 세금 독촉을 하였다.  

‘파지리’는 두보의 ‘신안리(新安吏 신안 마을)’ 시의 운을 차운하여 지었다. 두보는 759년 안사의 난 때 관군이 장안과 낙양을 수복한 후에 사공참군으로서 낙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반란군에게 대패한 관군이 신안마을(하남성 신안현)에서 보충병을 뽑아 출정시키는 장면을 목격하고 시를 지었다. 

먼저 ‘신안리’의 주요 구절을 읽어보자

우연히 신안 마을을 지나가는 길
떠들썩한 병사의 점호를 보다.

그 고장 관리에게 연유 물으니

“ 저들 나이 어리고 체구 작거니
그 어찌 낙양성을 지켜 낼꼬?
(중략)

관군이 상주를 수복한다기
얼마나 기다렸나. 평정할 그 날
그러나 반군의 세력이 커서
패하여 도망쳐 돌아올 줄이야!” 

(후략)

그러면 다산의 ‘파지리’ 시를 읽어보자.     

파지리(波池吏 파지촌의 아전)

아전들이 파지촌에  들이닥쳐        吏打波池坊
시끄럽고 소란하기 군대 점호같구나.  喧呼如點兵

역병에 죽은 시체에 굶어 죽은 시신 뒤섞여       疫鬼雜餓莩
마을에 농부라고는 한 명도 없어                 村墅無農丁

애꿎게 고아, 과부 결박하여          催聲縛孤寡
등에다 채찍질, 앞으로 끌고가니      鞭背使前行

개처럼 욕먹고  닭처럼 몰리어        驅叱如犬鷄
사람들 행렬이 성(城)까지 이었구나.  彌亙薄縣城

그 중에 가난한 선비 한 사람         中有一貧士
가장 수척하고 외로워 보이는데       瘠弱最伶俜

하늘을 우러러 죄 없음을 호소하는    號天訴無辜
구슬픈 원망소리 끝없이 이어지네.    哀怨有餘聲

하고 싶은 말일랑 감히 못하고       未敢敍衷臆
눈물만 비오듯 쏟아지는데           但見涕縱橫

아전 놈 화내며 멍청하다고           吏怒謂其頑
욕보여 다른 사람을  겁주려고        僇辱怵衆情

높은 나뭇가지 끝에 거꾸로 매달아     倒懸高樹枝
상투를 나무뿌리에 닿게 하고는        髮與樹根平

“소견없는 놈아 무서운 줄 모르고     鯫生暋不畏
네가 감히 상부의 명령을 거역해       敢爾逆上營

글을 읽었으면 의리를 알 터이니                     讀書會知義
임금에게 내는 세금은 서울에다 바쳐야 할 것 아닌가.  王稅輸王京

너에게 유월까지 말미 준 것만 해도    饒爾到季夏
너를 적잖게 은혜 베푼 일인데         念爾恩非輕

포구에 묵고 있는 큰 배가             峩舸滯浦口
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 ”          爾眼胡不明

아전이 위세 부리는 건 바로 이때라     立威更何時
이리저리 지휘하는 아전들이란.         指揮有公兄

아전은 지방 관청의 실무 집행자이고 전근 없이 한 곳에서 평생 근무하여 그 지방을 소상히 알고 있어 백성 착취가 더 심했다.

다산은 『목민심서』「이전(吏典)」 ‘아전을 다스림(束吏)’에서  아전의 착취를 이렇게 적었다. 

“백성은 토지로 논밭을 삼지만,  아전은 백성을 논밭으로 삼는다.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을 농사짓는 일로 여기고, 머릿수를 모으고  마구 징수하는 것을 수확으로 삼는다. 

이것이 습성이 되어서 당연한 짓으로 여기게 되었으니, 아전을 단속하지 않고서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다.”

아전 중에서도 전라도 아전의 착취는 지나치게 심했다. 오죽했으면 매천 황현(1855∼1910)이 『매천야록』에서  ‘전라도 아전은 조선 3대 폐단’ 중 하나라고 적었을까.
 
“운현(대원군)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조선에는 세 가지 커다란 폐단이 있으니 ‘충청도 사대부, 평안도 기생과 전라도 아전이 그것이다’.(황현 지음 허경진 옮김,매천야록, 서해문집, 2006, p 60)  
   
사진   1. 정석 (다산 초당)  

       2. 정석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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