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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부패는 망국의 지름길(28회)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정약용, 탕론(湯論)을 짓다. (1)
등록날짜 [ 2020년03월29일 16시28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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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 영국의 액튼 경”

정약용의 탕론(湯論)을 읽었다. <다산시문집 제11권>에 수록되어 있다. 
 
글은 아래 질문으로 시작한다.

“탕왕(湯王)이 걸왕(桀王)을 추방한 것이 옳은 일인가? 신하가 임금을 친 것이 옳은 일인가? (湯放桀可乎? 臣伐君而可乎?)”  

제후 탕왕이 천자 걸왕을 방벌(放伐)한 것이 옳은 일인가? 소위 쿠데타가 정당한가? 

사마천(기원전 145-87)은 《사기(史記)》에서 “걸왕 때 하(夏)나라의 국력이 이미 쇠약하여 많은 제후(諸侯)가 떨어져 나갔다. 걸왕은 부도덕하였고, 현신(賢臣) 관용봉(關龍逢)과 이윤(伊尹)의 간언을 듣지 않았으며, 백성을 억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도덕군자로 알려졌던 상(商)나라 탕왕(湯王)을 하대(夏臺)에서 체포하는 등 폭정을 자행하였다.


이런 실덕(失德)으로 결국 탕왕(湯王)의 공격을 받아 남방으로 달아났다가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임금이 세운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재위: BC 1818∼1766)은 폭군(暴君)으로 황음무도(荒淫無道)하여 제후들과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걸왕은 총애하는 말희(末喜)에게 빠져서 정사를 전혀 안 돌보았다. 하루는 걸이 각지에서 잡아 온 여자와 춤판을 벌인 후 술을 한 잔씩 하사했다. 그런데 여자들이 매우 많아 술을 따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에 말희는 일일이 술을 따르지 말고, 술로 연못을 만들고 연못 둘레에 고기 숲을 만들어 즐기자고 제안했다.  공사가 끝난 후 걸은 말희와 함께 술로 만든 연못에 배를 띄운 후, 나무에 고기가 매달려있는 모습을 보며 무희들의 춤을 구경하였다. 1)

이러자 충신 관용봉이 간언했으나 오히려 죽임을 당했다. 노비 출신으로 벼슬한 이윤(伊尹) 역시 걸에게 간언하다가 겨우 죽임을 면했다. 제후의 우두머리 격인 방백(方伯)이었던 탕(湯)도 걸왕에게 여러 차례  진언했지만, 오히려 죽임당할 뻔했다가 진상품을 바쳐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후 여러 제후들이 걸을 쫓아낼 것을 탕에게 말하자, 탕은 책사 이윤과 함께 군사를 모아 명조(鳴條 산서성 안읍현) 땅에서 걸왕을 쳤다.탕은 싸움을 하기 전에 박(亳) 땅에서 군사를 모아 놓고 훈시를 하였다. 『서경(書經)』의  ‘탕서(湯誓)’가 그것이다.

“여러분에게 고하노니 잘 들으시오. 나 같은 하찮은 인물(小子)이 감히 난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요. 하나라 임금 걸이 죄가 많아 천명(天命)에 따라 그를 치는 것이요.

이곳에 있는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왕은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우리들의 농사일을 다 팽개치고 하나라를 치려 간다.’고 말할 것이요. 나는 여러분의 말을 잘 듣고 있소. 하지만 하나라 임금은 죄가 있소. 나는 하늘의 상제를 두려워하니 감히 그를 응징하지 않을 수 없소.

(중략) 여러분은 나를 도와 천벌을 하나라에 쏟아 주기 바라오. 내 너희에게 크게 상을 줄 것이오. 나는 식언하지 않소. 만약 여러분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나는 곧 여러분을 처자식과 함께 죽일 것이며 용서하지 않겠소 ” (김학주 역저, 서경, 명문당, 2002, p 159-162)

그리하여 탕왕은 걸왕을 몰아내고 상(商)나라를 세웠고, BC  1766년부터 13년간 재위했다. 
 

그런데 탕왕이 훈시하면서 ‘우리 왕은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우리들의 농사일을 다 팽개치고 하나라를 치려 간다.’는 말을 스스로 하는 것을 보면, 백성들은 탕이 걸을 치는 것에 대해 전폭적 지지를 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중국에선 신하가 임금을 갈아 치우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사진 1 강진군 다산 기념관

사진 2 다산과 목민심서 (다산기념관 내 전시)

1) 이래서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고사성어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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