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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부패는 망국의 지름길(29회)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정약용, 탕론(湯論)을 짓다. (2)
등록날짜 [ 2020년04월05일 18시19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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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신하가 군주를 갈아치우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국시대에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맹자(BC 372∼289)에게 한 질문이다. 『맹자』「양혜왕 하」편에 나온다. 

“제나라 선왕 : 은나라 탕(湯)왕이 하나라 걸(桀)왕을 내쫓고, 주나라 무(武)왕이 은나라 주(紂)왕을 정벌한 일이 있습니까?


맹자 : 책에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선왕 :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하였는데, 선생은 그 일이 옳다고 여기십니까?

맹자 :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고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합니다. 또한 적(賊)과 잔(殘)을 일삼아 저지르는 자를 필부(匹夫)라고 합니다. 나는 일개 필부를 죽였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군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제나라 선왕의 질문(탕왕이 걸왕을 내쫓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한 일)에 맹자는 책에 적혀 있다고 답한다. 맹자가 말한 책은『서경(書經)』이다.
 
탕(湯)왕이 걸(桀)왕을 내쫓은 이야기는 이미 지난 회(28회)에 이야기 했으니, 이번엔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 주(紂)왕을 내친 이야기를 해보자.

BC 1046년에 주나라 제후 무왕은 목야(牧野)에서 폭군 주왕(紂王)과의 결전을 앞두고 군사들에게 이렇게 훈시했다. 『서경』‘주서(周書) 목서(牧誓)’에  나온다.   

“옛사람의 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 하였다. 지금 주왕은 오직 한 여인(달기)의 말만을 듣고 있소.”  

당시에 은나라는 주왕의 애첩 달기(妲己)가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은나라 주왕은 원래 자질이 뛰어 났다. 말솜씨가 뛰어나고 행동도 민첩했다.


체력도 좋아 맨손으로 맹수를 때려잡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너무 총명하여 주변의 충고를 듣지 않았고, 지나치게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주왕이 유소(有蘇)를 정벌했을 때 유소는 주왕에게 달기를 바쳤다. 주왕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인 달기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이후 주왕은 정사(政事)를 아예 돌보지 않고 달기와 쾌락에 빠졌다. 달기는 주왕을 사로잡기 위해 복숭아꽃 꽃잎을 짜서 만든 '연지(燕脂)'를 뺨에 발랐고, 그녀 방에는 음란한 병풍이 펼쳐져 있었다.  

주왕은 녹대(鹿臺)라는 누각을 만들어 재물을 가득 쌓았다. 별궁 정원 앞 연못에는 술을 가득 채우고 고기를 숲처럼 즐비하게 늘어세운 뒤,  그 사이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발가벗은 젊은 남녀를 뛰놀게 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향락하였다.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졌다.

달기는 정부 인사에도 관여하였다. 주왕은 달기의 마음에 드는 신하만 중용하였다. 그의 주변에는 간신들로 가득 찼다. 미자(微子) · 기자(箕子) · 비간(比干) 같은 충신들의 직언을 싫어하여 그들을 내쳤다. 그리하여 미자는 나라를 떠났고, 기자는 노비가 되었으며, 비간은 죽임을 당했다.

주왕의 숙부인 비간은 사흘 동안이나 주왕에게 간언하였는데 주왕은 “옛 성현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는데 네 심장에는 과연 일곱 개의 구멍이 있는지 조사해 보자.”며 비간을 해부하여 그 심장을 꺼내보았다. 특히 참혹한 것은 주왕은 임신한 비간의 아내의 배를 갈라 태를 보는 악행도 서슴지 않은 점이다.  


아울러 주왕은 포락지형(炮烙之刑)을 실시했다. 이 형벌은 이글이글 숯불이 타오르는 구덩이 위에 기름을 바른 구리 기둥을 즐비하게 얹은 다음, 그 위를 맨발로 걷게 하여 건너가게 한 처형 방법이었다. 

무왕의 훈시는 이어진다.

“ 임금 주는 백성들에게 포학한 짓을 하며 간사하고 악독한 짓을 일삼고 있소. 나 발(發)은 오직 하늘의 벌 주심을 삼가 행하려는 것이요.”

마침내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폭군 주왕을 징벌했다. 두 나라는 목야에서 전투를 벌였다. 주나라 군사는 4만5천명, 은나라는 70만 명이었다. 은나라는 수(數)적으론 우세했지만 군사들은 싸울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주로 노예와 가난한 자유민이어서 적개심이 있을 리 없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은나라 군사들은 무기를 거꾸로 들고 앞다투어 투항했다. 폭군 주왕은 귀중한 보물을 감춰둔 녹대의 ‘선실(宣室)’에 불을 놓아 스스로 불타 죽었고, 요녀(妖女) 달기는 목을 매어 자결했다.

사진 1  다산 문화관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생가)

사진 2  유배 길 정약용 업적 (다산문화관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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