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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부패는 망국의 지름길(32회)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정약용, 탕론(湯論)을 짓다. (5)
등록날짜 [ 2020년04월26일 10시09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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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탕론(湯論)을 정독한다.     

“탕왕이 걸왕을 추방한 것이 옳은 일인가? 신하가 임금을 친 것이 옳은 일인가? 이것은 옛 도(道)를 답습한 것이요 탕 임금이 처음으로 열어놓은 일은 아니다.”

다산은 탕왕이 처음으로 혁명을 한 것이 아니라고 논한다.    

“신농씨(神農氏) 후손들의 덕(德)이 쇠진하여 제후(諸侯)들이 서로 공격하고 정벌하자 헌원씨(軒轅氏)가 무력을 동원하여 조공을 바치지   않는 자들을 정벌하니 제후들이 모두 귀의하여 왔다.


그리하여 헌원씨는 염제(炎帝 신농씨의 별칭임)와 판천(阪泉)의 들판에서 전쟁을 벌였고 세 번 싸워 승리를 거둠으로써 신농씨를 대신하여 황제(皇帝)로 군림하였다. 이상은『사기(史記)』오제본기(五帝本紀)에 보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신하로서 임금을 친 것은 황제(黃帝 헌원씨의 별칭)가 창시한 일이다. 따라서 신하로서 임금을 친 것을 죄주려면  헌원씨가 가장 나쁜 악이 되니, 탕왕에게 따질 필요가 없다.”

다산은 신하가 임금을 친 것은 황제(헌원씨)가 염제(신농씨)를 친 것이 최초이며 그 근거로 사마천(BC 145~86)이 쓴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를 거론한다.

황제(黃帝)는 성은 공손(公孫)이요, 이름은 헌원(軒轅)이다.


헌원은  수레와 수레 끌채라는 뜻으로 그가 수레를 발명했다는 신화와 관련 있다.

염제(炎帝)는 불을 관장하는 농업과 의술의 신(神)으로 삼황(三皇) 중 한 사람이다. 염제는 인간에게 이로움을 준 공로를 인정받아 성지(聖地) 판천(阪泉)의 수호자가 되었는데 그 후손이 신농(神農)씨이다.  1)

그런데 황제가 살던 시대는 각 부락이 서로 얽혀 혼전을 벌이고 있었고 신농씨는 이미 쇠퇴해 있었다. 이에 황제는 병사를 훈련시켜 조공을 바치지 않는 씨족들을 정벌하고 안으로는 덕을 베풀었다.

또한 생산력을 높이고 백성들을 어루만져주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황제 헌원씨는 판천(阪泉, 지금의 하북성 탁록현 동쪽)에서 염제 신농씨와 세 차례 큰 전쟁을 하여 승리하였다.

다산의 글은 이어진다.

“대저 천자(天子)의 지위는 어떻게 해서 소유한 것인가. 하늘에서 떨어져 천자가 된 것인가, 아니면 땅에서 솟아나 천자가 된 것인가.


생겨진 근원을 더듬어보면 이러하다. 5가(家)가 1린(隣)이고 5가에서 장(長)으로 추대한 사람이 인장(隣長)이 된다. 5린(隣)이 1리(里)이고 5린에서 장으로 추대된 사람이 이장(里長)이 된다. 5비(鄙)가 1현(縣)이고 5비에서 장으로 추대된 사람이 현장(縣長)이 된다.


또 여러 현장들이 다 같이 추대한 사람이 제후(諸侯)가 되는 것이요, 제후들이 다 같이 추대한 사람이 천자가 되는 것이고 보면 천자는 여러 사람이 추대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산은 아래로부터 추대를 받아 제후도 되고 천자가 되었다고 논한다.

요즘 같으면 풀뿌리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이 대목은 다산의 글 <원목 (原牧)>과 비슷하다.  <원목>의 관련 부분을 읽어보자.  


“옛날에야 백성이 있었을 뿐 무슨 목민자가 있었던가? 백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한 사람이 이웃과 다투다 해결을 보지 못한 것을, 공정한 어른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가서 해결을 보고 감복한 나머지 그를 추대하여 이정(里正)이라 하였고, 또 여러 마을 백성들이 자기 마을에서 해결못한 다툼거리를 가지고 식견이 많은 어른을 찾아가 그에게서 해결을 보고는 그를 추대하여 당정(黨正)이라 하였으며, 또 여러 고을 백성들이 자기 고을에서 해결못한 다툼거리를 가지고 어진 이를 찾아가 그에게서 해결을 보고는 그를 추대하여 주장(州長)이라 하였고, 또 여러 주(州)의 장(長)들이 한 사람을 어른으로 모시고는 국군(國君)이라 하였으며, 또 여러 나라의 군(君)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방백(方伯)이라 하였고, 또 사방(四方)의 백(伯)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그를 황왕(皇王)이라 하였다. 따지자면 황왕의 근본은 이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목민자는 백성을 위하여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진 1  다산초당 편액

사진 2  정석  (다산초당 뒤)


1) 신농은 삼황(三皇)중 한 사람이고 황제는 오제(五帝)중 한 사람이다. 삼황은 수인(燧人) · 복희(伏羲) · 신농(神農)이고, 오제는 황제(黃帝) · 전욱(顓頊) · 곡(嚳) · 요(堯) · 순(舜)이다. 삼황오제는 중국 최초의 왕조인 우임금이 세운 하(夏) 왕조 이전에 출현한 전설상의 제왕인데,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 역사의 시초를 ‘오제본기’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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