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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민영익과 알렌 그리고 제중원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제중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헌법재판소라니 역사의 아이러니!!
등록날짜 [ 2020년11월21일 08시21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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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 2년 뒤인 1884년 10월에 김옥균(1851∽1894), 박영교(35세) · 박영효(23세 철종의 사위) 형제, 홍영식(29세) ·서광범(25세) · 서재필(20세) 등 20~30대 젊은 급진 개화파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갑신정변(甲申政變)이다. 청국과 결탁한 민씨 수구파를 척살하고 근대적 자주 국가를 만들고자 함이었다.

급진 개화파는 일본의 지원을 받아 일단 정변에는 성공했지만, 청나라의 신속한 개입과 일본군의 철수로 ‘3일 천하, 정확히 말하면 46시간 천하’로 끝났다. 1884년 10월 17일 밤 10시에 우정총국 낙성식(落成式) 연회에서 시작한 정변은 10월 19일 저녁에 관우를 모신 북묘에서 끝났다.

1884년 10월 17일 밤 7시, 서울 견지동 우정총국에선 낙성식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총판(總辦) 홍영식이 주관한 연회에는 미국 공사, 영국 공사, 독일출신 묄렌도르프 외교 고문, 청국 영사, 일본공사관 서기관을 비롯해 민영익·민병석·김홍집 등이 참석했고, 개화파 김옥균과 박영효은 물론 윤치호도 통역 자격으로 참석했다.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는 우정총국 밖에서 불길이 오르면 그것을 신호로 사대 수구파 인사들을 척살하고 곧바로 궁궐로 들어가기로 했다.

밤 10시경에 바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민영익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고 밖으로 나가자 자객이 달려들어 칼로 쳤다. 여러 군데 칼에 찔린 민영익은 안으로 도망쳐 들어와 연회장에서 쓰러져 사경을 헤맸다. 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묄렌도르프가 간신히 그를 구해 자기 집으로 옮겼다.


달려온 어의(한의사)들이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는 그를 치료하지 못해 당황하자, 묄렌도르프는 미국 공사관 소속의 선교사겸 의사 알렌을 불렀다. 알렌은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1881년 웨즐리언 대학 신학과, 1883년 마이애미 의과대학 졸업하고 미국 북장로교에서 의료선교사로 중국 상하이(上海)에 파송되었다. 그는 1884년 9월에 서울에 왔는데 미국 공사관 무급의사를 하고 있었다.

알렌은 지혈과 봉합 수술 등 서양 외과술로 24세의 민영익(1860∽1910)을 간신히 살려냈다. 이러자 중전 민씨가 가장 기뻐했다. 민태호의 아들 민영익은 중전 민씨의 부친 민치록의 제사를 지내도록 양자로 온 조카였다. 중전은 조카를 살린 알렌에게 감사의 뜻으로 10만 냥을 하사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50억 원이었다.


조카를 살려주었다고 50억 원이나 하사하다니 참으로 통 큰 중전이었다. 이렇게 중전은 나랏돈을 흥청망청 썼다. 더욱 놀란 일은 자신의 시의(侍醫 궁중 의사)였던 언더우드 부인이 결혼할 때 축의금으로 100만 냥 (500억 원)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국가 예산 400만 냥의 1/4을 축의금으로 주었으니 참으로 어이없다.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역사저널 그날 8 순조에서 순종까지, 민음사, 2017, p 95-98 )

한편 민영익을 살려준 알렌은 고종의 어의(御醫)가 된다. 이러자 알렌은 근대식 병원 설립안을 고종에게 제안했고, 이에 고종은 조선 백성 치료 기관이었던 혜민서와 활인서를 없애는 대신 광혜원(廣惠院) 설립을 허락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광혜원은 1885년 2월 29일에 설립되었는데 고종은 개원 13일 이후인 3월 12일에 제중원(濟衆院 널리 민중을 구제하는 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친필을 하사했다.

제중원 건물은 고종이 하사한 서울시 중구 재동에 있는 갑신정변의 주역 홍영식의 집(지금은 헌법재판소)이었다. 홍영식은 10월 19일에 북묘까지 고종을 수행했다가 청나라 부대에 난자당해 죽었다. 홍영식 아버지 전 영의정 홍순목도 손자, 며느리와 함께 약을 먹고 자살했다.

 
알렌이 이 집에 도착하니 피가 아직도 낭자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곳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고, 헌법재판소라니 역사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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