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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동학농민전쟁과 청군 파병 요청 전말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민영준, '청군 조선에 들어오면 일본군도 들어올 것이므로 형세 위태로울 것'
등록날짜 [ 2020년11월25일 16시37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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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3월에  동학교주 최제우가 처형된 이후, 2대 교주 최시형의 노력으로 삼남·경기지방에서 동학의 교세가  확장되었다. 1893년 3월에 동학교도 2만 7천 명이 보은에서 모여 교조 신원 운동을 벌였다. 당황한 조정은 3월 25일에 어윤중을 양호 선무사로 삼아 내려보냈다. 이날 고종은 어전회의를 열어 청나라 군대 파병을 거론하였으나 대신들은 반대했다.

그런데 어윤중이 동학교도들을 설득하자 뜻밖에도 동학교도들은 4월 3일에 자진 해산했다. 하지만 강경파들은 전라도 금구에서 반봉건 · 반외세 집회를 별도로 열었다.

1894년 1월 10일 밤에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분노하여 전봉준이 주도한 농민들이 봉기했다. 11일 새벽에 고부 관아를 점령했는데 조병갑은 도망하고 없었다. 그런데 안핵사 이용태는 사태수습은 커녕 주모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잠시 피신한 전봉준은 3월 20일에 무장에서 봉기하여 고부 관아를 다시 점령하고 3월 25일에 백산에서 8천 명이 모여 ‘호남창의대장소’를 창설했다. 이어서 동학농민군은 황토현 전투와 장성 황룡천 전투에서 관군을 대패시키고 4월 27일에 전주성을 점령했다. 

이러자 고종 부부는 동비(東匪)를 빨리 토벌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극도로 불안했다.

더구나 중전은 초토사 홍계훈이 급히 보낸 동학군의 편지를 보고 대원군이 동학군을 배후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학군의 편지엔  “국태공(대원군)에게 올립니다.”라는 구절이 있었고, 홍계훈은 1882년 임오군란 때 시해당할 뻔한 중전을 등에 업고 궁중을 빠져나간 충복(忠僕)이었다. 

이윽고 중전이 병조판서 민영준을 불렀다. 그리고 청나라에 원병을 청하라고 하였다. 민영준은 난색을 표했다.

그는 천진조약에 ‘출병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먼저 통지하고 똑같이 각각 병력을 보낸다.’고 되어 있어 청군이 조선에 들어오면 일본군도 들어올 것이므로 형세가 위태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실록 1896년 9월 27일의 민영준이 해명하는 상소에도 나와 있다.)
 

이러자 중전은 홍계훈이 보낸 동학군의 편지를 내보이면서 크게 꾸짖었다.

“못난 놈! 내 차라리 왜놈의 포로가 될지언정 다시는 임오년의 일은 당하지 않겠다. 여러 말 하지 말라!”

이러자 민영준은 원세개를 만나 파병을 요청했고, 원세개는 이홍장에게 급히 전보를 띄워 알렸다. 이에 이홍장은 청군 파병을 허락했다.

여기서 조정이 원세개에게 청군 파병을 요청한 글을 읽어보자.

“본국 전라도 관할 태인, 고부 등은 백성이 흉하고 사나워 본래부터 다스리기 어려웠습니다. 요즘 동학에 붙은 동비(東匪) 1만여 명이 무리 지어 공격하여 10여 군데 고을을 빼앗고 전주성을 함락했습니다.

조정은 군대를 보내 진정시키려 했지만 동비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항전하여 우리 군대를 격파시켰습니다. 이처럼 흉측한 자들이 오랫동안 소란을 피우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입니다. 더구나 그들이 다시 서울로 북상하도록 놓아둔다면 그 피해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군대는 신생 조직이고 숫자도 적고 전투를 안 해본 군인이어서 그들을 섬멸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흉악한 무리들을 오랫동안 놓아둔다면 중국에까지 우려를 끼치는 바가 많아질 것입니다. 

지난 임오년(1882년)과 갑신년(1884년) 두 차례의 내란 때도 모두 청군에 의지해서 진정시킬 수 있었듯이, 이번에도  귀 총리(원세개)에게 원군을 간청하오니 속히 북양대신에게 전보를 쳐서 군대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속히 와서 우리 군대 대신 소탕해 주셨으면 합니다.” (황현 지음 · 임형택 외 옮김, 역주 매천야록 (상), P 340-342)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박은식은 『한국통사(韓國痛史)』 ‘제2편 27장 청군을 요청한 전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임금과 왕비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청나라 군대를 불러서 자기 백성을 진압하려 했으니 이게 제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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