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고종 41년) 7월 15일에 안종덕(1841∽1907)의 신의(信義)에 대한 상소는 이어진다.
“폐하는 오랜 도리를 가지고 정사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하들이 어진가 어질지 못한지를 환히 꿰뚫었고 착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 벼슬길에 나오기는 어렵고 악한 사람이 승진하기는 쉬웠으니, 이것을 놓고 보면 폐하의 마음이 남에게 믿음을 보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믿음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등용하지 못했고 악한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내쫓지 못한 것’이 바로 춘추시대 곽나라가 망한 까닭이니, 이것은 남이 권해서 될 일이 아니라 폐하 자신이 힘써 해야 할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혼군(昏君)은 간신의 말을 믿고 충신을 쫓아내었으니 나라가 망한 것이다.
“ 외교의 경우에는 더구나 신의가 중요합니다. 항간의 보통 사람들도 신의가 없이는 교제를 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나라와 나라 간에 교제를 하는 경우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지금 세계가 어지러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 대한제국은 피폐하여 무력과 재력을 가지고서는 물론 겨루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직 지켜야 할 것은 신의뿐인데, 신의란 스스로 세우는 것입니다.
저들이 저들의 강함을 이용하면 우리는 우리들의 의리(義理)를, 저들이 저들의 부유함을 이용하면 우리는 우리들의 인애(仁愛)를 가지고 우리 자신이 우리 일을 시행하면서 두려워하거나 의지하는 마음을 없애 버린다면 진(晉) 나라와 초(楚) 나라가 강하기는 하였지만 추(鄒)나라와 노(魯) 나라보다 더 강하지 못한 것처럼 될 것입니다.
돌아보건대, 삼천리 강토와 500년 왕업을 가지고 가만히 앉아 독립 자주권을 잃고 있으며, 세력을 믿고 달래며 위협하는 자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고 있습니다.
북쪽 나라에서 오면 북쪽 나라에 빌붙어 나라의 이권을 경중도 헤아려 보지 않고 그들에게 넘겨주고, 동쪽 나라에서 오면 동쪽 나라에 빌붙어 나라의 주권을 존망도 생각해 보지 않고 그들에게 넘겨줍니다.
날마다 치욕을 당하지만 감히 막지 못하고 강요가 끊임없건만 감히 거절하지 못합니다. 이러다가는 장차 국내 정사와 대외 실무가 모두 남에게 넘어가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게 될 것이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이 근원을 따져 보면 신의가 서지 못한 데 있습니다.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권세 높은 사람이 재능에 관계없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면 백성들이 본업을 저버리고 외세를 구한다.’라고 하였는데, 오늘날을 놓고 보면 이 말이 이미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진실로 폐하께서 깊이 살펴야 할 일입니다.
한편 지금 나라가 가난하기 그지없지만 탁지부의 연간 수입이 그래도 6, 7천만 민(緡)은 됩니다. 우선 내장원을 없애어 탁지부에 소속시키는 동시에 각궁(各宮)과 내수사(內需司), 훈부(勳府) 등의 저축까지 합하면 거의 수 억만민은 될 것입니다.
옛날 영조 대왕은 양역(良役)의 폐해를 없애기 위하여 함께 각궁에서 사적으로 받는 세금을 모두 거두어 균역청(均役廳)에 넘겨 삼군영(三軍營)의 비용에 보태게 했는데, 백성들이 지금껏 그 덕을 보고 있습니다.
만일 조종(祖宗)의 뜻을 체득하여 절약하며 신의를 베푼다면 수 천만의 군사를 키우고도 남을 것이니, 한 필지의 토지나 한 부대의 군사보다 큰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예를 연마하고 임금을 사랑하고 윗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리를 가르치면 무엇을 지킨들 고수하지 못하겠으며, 누구와 싸운들 승리하지 못하겠습니까?
나아가서는 여러 나라들과 패권을 다투고 물러나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강토를 보위할 있을 것입니다. 안에서 재물을 저축하면서 무익한 소비를 없애는 것이 밖에서 나라를 위축시켜 망국의 화를 재촉하는 것에 비해 그 이해 관계가 어떠하겠습니까?
재물을 풍부하게 할 수 있고 군사를 강하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형편이 이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이겠습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