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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고종에 대한 비숍 여사의 평가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조선을 불행으로 이끄는 고종의 통치술
등록날짜 [ 2020년12월26일 17시22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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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지리학자 비숍 여사(1831∽1904)는 1894년 1월부터 1897년 3월 사이에 조선을 네 차례 방문하여 1897년 11월에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을 발간했다. 이 책은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면 고종에 대한 비숍 여사의 평가는 어떠했을까? 그녀는 1895년에 고종 부부를 네 번, 1897년에 고종을 세 번 만났다. 먼저 1895년 1월에 고종을 첫 번째 만났을 때의 비숍의 인상이다.

”왕(고종)은 키가 작고 누르스름한 얼굴을 지녔으며 약간의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신경이 예민하여 손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였지만 그의 자태와 예의범절에는 위엄이 있었다. 그의 얼굴은 유쾌한 인상을 풍겼다. 그의 친절한 본성은 익히 잘 알려져 있었다.”     
 


이후 그녀는 고종 부부를 세 번 더 만났는데, 이 만남에서 비숍 여사는  아래와 같이 고종을 평가한다.

“조선왕조는 쇠퇴해갔다. 왕은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서 성격적으로는 나약한 존재였으며 야심만만한 사람들의 손에 좌우되었다. 왕비의 강한 통제력이 쇠약해진 이후에 그러한 현상은 더욱 심하게 나타났다. (중략)


불행하게도 왕은 칙령이 법인 이 나라에서 측근들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는 목적에 대한 철저함과 집요함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훌륭한 개혁의 계획들이 그의 박약한 의지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비숍 지음 · 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집문당, 2015, p 263)

당시 조정은 친일파 김홍집 내각으로 왕의 권력은 매우 위축되었다. “왕은 일반적인 통치력이 부족했다. 그는 한없이 선량한 사람이었다.


그가 더 확고하고 강인하여 간사스러운 신하들에게 속아 넘어가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휼륭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의 나약한 성격은 그의 운명을 비운으로 이끌 수밖에 없었다.”(위 책 p 265)

1897년에 비숍은 고종과 세자를 경운궁에서 만났다. 이 기록은 그녀의 책 ‘제36장 1896년의 서울’에 적혀 있다.

“왕과 세자는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왕은 빅토리아 여왕을 위해 비숍이 국왕의 사진을 찍도록 허락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왕은 흥미롭게 카메라의 여러 부분을 관찰하면서 즐거운 웃음을 띠는 것 같았다.

왕은 러시아 공사관의 손님으로 1년 이상 있었다. 그의 신하들은 이를  국가적 수치로 생각했다. 왕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자유를 즐기는 동안 조선에는 이익되는 일이 없었다.

반항적인 관료와 김홍집 내각, 그리고 비양심적인 왕비, 또한 일본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신의 신변이 안전하다는 것을 발견한 국왕의 왕조는 가장 최악의 전통으로 되돌아갔다.

신하들의 어떤 견제에도 불구하고 그의 칙령은 곧 법이 되었으며 그의 의지는 절대적이었다. 이제 권력은 국왕을 둘러싸고 왕의 위엄과 탐욕을 등에 엎은 사람들의 몫이 되었으며, 아관파천에서 공을 세운 박상궁과 엄상궁의 뜻대로 행사되었다. (중략)

좋은 뜻에서 시작되었지만 항상 비척거리는 군주는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지를 모르고 있다. 왕의 호의를 믿고 우호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늘 무의미한 것이 되어 탐욕스러운 기생충들의 먹이가 되었다.


외국 모험가들의 도구는 지속성을 깨뜨림으로써 훌륭한 통치기구를 마비시키고 음모자들의 이해관계에 빠진 무분별한 사치에 동의함으로써 경제와 재정의 개혁을 어렵게 하거나 단절되게 만들었다.  

왕은 러시아의 지붕 밑에서 자유를 얻은 이래 단행했던 바와 같은 통치권의 변화를 단행하지 못했다. 나는 왕의 약점을 기록하는 것이 유감스럽다. 개인적으로 나는 왕이 모든 외국인에 그렇듯이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상냥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어느 정도의 애국심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그는 조선의 현재와 미래의 상황에 대해 가장 중요한 요소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의 성격이나 조선을 불행으로 이끄는 그의 통치술에 대한 언급이 없이 그냥 지나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이다.


굳이 그의 정상을 참작하자면 그는 특별히 가르침을 받은 5세기에 걸친 왕실 전통의 산물이다. 정치란 대신들을 서로 싸우게 하여 힘을 빼는 것이라고 배웠을 뿐이다.”(위 책, p 438-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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