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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외국인이 평가한 고종황제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게일의 『전환기의 조선(1909년)』
등록날짜 [ 2020년12월29일 13시29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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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에 게일 목사가 지은 『전환기의 조선』을 읽었다. 캐나다 출신 게일(Gale 1863∽1937)은 25세인 1888년에 조선에 와서 1890년부터 성서공회 전임 번역위원으로 일했다.


1900년에는 연동교회 목사를 하였고, 1903년에는 황성 기독청년회(YMCA)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그는 1928년까지 연동교회, 평양신학교 등에서 강의와 설교를 했으며 은퇴 후 영국에서 살다가 별세했다. 
 

이 책은 8장인데 제1장 지리와 민족, 제2장 조선의 현재 상황, 제3장 한국인의 신앙, (중략) 제7장 조선의 응답, 제8장 조선의 미래로 되어 있다. 
이중 ‘제2장 조선의 현재 상황’에는 1907년에 퇴위한 고종황제의 평가와 1905년 민영환의 자결이 적혀있다. 그러면 주요 부분을 읽어보자.

“조선은 처음부터 가부장적 정부 형태였다. 이러한 제도 아래서 백성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억압받고 짓밟혔지만, 그것은 관습에 따라 취해진 억압이었으며 관습은 법보다 상위였다. 

그들에게 애국심이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관리가 오랫동안 휘둘러 온 수탈로부터 멀리하는 것이었으나, 문호가 개방되고 서구의 생활방식이 유입되자 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제 조선은 새로운 시대를 깨닫고 거기에 스스로를 맞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시대는 조선을 영원히 내던지고 분쇄하고 말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조선은 이 새로운 세력들과 연계를 가질 기회가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이어서 게일은 ‘고종황제’에 대하여 평가한다. 그가 고종을 직접 만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언론이나 주변 이야기를 듣고 고종을 평가했으리라.

“조선에서의 위대한 아버지는 그의 백성들을 유례없는 비탄의 상태로 빠뜨리고자 하나님이 선택한 폐위된 황제(필자 주 : 고종 1852-1919, 재위 1863-1907)였다. 그런 상태 아래에서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 생각한다 할지라도 조선이 꿈꿔왔던 것보다 더 많은 희망이 가려진 것이다.

비록 황제가 20세기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과 또한 다른 외부 세력을 잊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말했던 루이 14세처럼 말할 수 있었다.

고종의 걸음은 퇴보했던 것이다. 근세에 이르기까지 동양의 군주들은 움직이면서 퇴보적인 행진에 호감을 가져 왔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시선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머리 뒤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요순시대(BC 2300년)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주 늦게까지도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단지 그들이 태어난 과거만을 꿈꾼 채 모든 종류의 혼란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퇴위한 황제는 그 자신의 땅을 비천하게 만들고자 하나님에게 이용된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다. 고종을 어떤 새로운 시대와 접촉케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친절하고 점잖으며 종종 동정심에 가득찼으나, 개혁을 하려는 생각은 그의 마음에 마성(魔性 사람을 미혹시키는 악마와 같은 성질)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어제의 친구를 고문할 것이고 그를 끌어내다가 당장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시험해왔던 지난 20년 동안 모든 점에서 실패했다. 이것이 오늘날 조선의 지위를 정치적으로 고려하면서 기억해야 할 첫 번째 사항이다. 조선은 퇴위한 황제에 의해서는 그가 살던 시대와 접촉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일은 ‘고종황제’에 이어서 ‘일본’이란 제목의 글을 쓴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요소는 곧 일본이다. 왜냐하면 퇴위한 황제와 그의 백성들은 모두 일본을 몹시도 싫어했기 때문이다. 아주 옛날부터 그들은 일본을 왜노, 왜놈이라는 모욕적인 용어로서 지칭했던 것과 는달리 일본은 조선사람들을 한객이라고 불렀다.


아무도 그들을 융화시킬 수 없었다. 일본인들은 부처와 신도에 기도했던 반면에 조선인들은 공자를 숭배했다. 일본은 무(武)를 숭상했던 것과는 달리 조선은 문(文)을 숭상했기 때문에 일본을 경멸했다.

조선의 통치자들은 당시에 살던 시대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마음과 감정 그리고 전통에서 조선인들은 일본인들과 거리가 있었으며, 더욱이 여기에는 동일한 시대에 점차로 동일한 방을 차지하려는 세 가지 요소, 곧 20세기라는 시대 상황, 대한제국의 황제, 그리고 일본의 정신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절망적이고 무저항적인 침묵 상태로 될 때까지 조선 사람들은 물과 불처럼 혹은 나무와 번개처럼 서로 상충했으며, 발로 채이고 산산이 부서지고 저항하도록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황제와 백성들은 일치되지 않았다. 에슨 3세가 몇 년 전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대한제국의 황제는 백성을 신뢰하지 않고, 백성은 일본인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일본인은 황제를 믿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황제는 일본인을 불신하고, 일본인은 그 백성을 불신하며, 백성들은 황제를 경멸한다.”

(게일 지음·신복룡 역주, 전환기의 조선, 집문당, 2019, p 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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