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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영국인이 본 조선 사회 부패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고종, 아관파천 중 1894년 갑오개혁 모두 뒤집은 것
등록날짜 [ 2020년12월30일 10시29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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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는 망국의 지름길이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1819~1901 재위 1837∽1901) 시절에 수상을 한  글래드스턴(1809~1898)은 이렇게 말했다. 명언이다. 부패는 나라를 좀먹는다. 영국 수상이 이토록 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했으니 19세기 말에 영국은 의회민주주의를 통한 세계 최강국이 되었고 ‘해가 지지 않은 나라’란 명성을 얻었다.   

 
그러면 조선사회의 부패는 어느 정도인가? 영국의 지리학자 비숍 여사(1831∽1904)의 기록을 살펴보자. 그녀는 63세인 1894년 1월부터 1897년 3월 사이에 조선을 네 차례 방문하여 1897년 11월에 영국에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을 발간했다.

비숍은 1894년 1월에 제물포에서 관아를 보았다.   

“언덕꼭대기에는 관아가 있다. 형벌의 방법은 관아의 벼슬아치들이 죄인을 잔인하게 채찍질하고 죽도록 때리는 것이다. 죄인들의 괴로운 부르짖음이 영국 선교관과 인접한 방까지 들려온다.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거의 모든 관아가 악의 소굴로 되고 있다.” (비숍 지음, 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집문당, 2019, p 24) 그녀는 1894년 5월에 북한강 여행을 하면서 바가미 마을에 적힌 희귀하고 신선한 푯말을 보았다.

“양반의 노비가 바가미를 지나갈 때, ‘그가 공손하고 태도가 좋다면 무사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곤장을 맞게 될 것이다.’라는 푯말을 보았다. 참 희귀하다. 조선의 악담 가운데는 양반이란 특권계층에 대한 것이 많다.


양반이란 존재는 자신의 생계를 위해 직접 일하지 않는다. 그의 노비들은 마을 사람을 위협하고 못살게 굴며 그들의 가축이나 계란을 댓가 없이 강취했다. 바가미의 푯말은 바로 그 점을 잘 반영하고 있다,(위 책, p 95-96)

비숍 여사는 ‘계급의 특권은 문서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그 전통은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註)를 달았다. 이어서 그녀는 양반층의 횡포를 지적했다. 

“ 많은 수의 하층민들이 무거운 조세를 부담하고 양반들에게 억압당하고 있으며, 양반은 그들의 노동을 대가 없이 이용함은 물론 도조라는 명목으로 무자비하게 수탈해 가는 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다. 


  상인이나 농부에게 돈이 생겼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양반은 빚을 갚으라고 독촉한다. 그것은 사실상 조세나 다름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거절하면 그 사람은 부당한 죄목으로 투옥되어, 그나 그의 친척이 대납할 때까지 곤장을 맞거나 열악한 음식을 먹어 가며 그 돈이 나올 때까지 양반 집에 감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반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돈을 꾸어 주었다고 억지를 쓰는 방법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원금이나 이자 같은 것은 당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양반이 집이나 전답을 살 때 그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며, 어떤 관리들도 그 지불을 강요하지 않았다.” ( 위 책, p 96쪽)

한편 비숍은 1895년 10월부터 12월까지 3번째로 조선을 방문한 후 중국을 여행했다. 그녀는 1896년 10월부터 네 번째로 조선을 방문하여 1897년 3월에 영국으로 떠났다,

이 시기는 1895년 10월 8일에 일어난 왕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 단발령,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과 1897년 2월20일 경운궁(지금의 덕수궁) 환궁이 일어난 격변의 시기였다.


그녀는 “1896년 가을에 다소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9월 24일의 칙령은 내각의 명칭을 의정부로 환원하였다. 국왕이 3년 전의 구시대의 논리로 되돌아간 것이다.”(위 책, p 389)라고 적었다.

이 날의 고종실록에는 ‘고종이 내각을 다시 의정부라고 고쳐 부르도록 조령(朝令)을 내렸다’고 적혀있다. 

"지난번에 역적 무리들이 나라의 권한을 농간질하고 조정의 정사를 뜯어고치면서 심지어는 의정부(議政府)를 내각(內閣)이라고 고쳐 부른 것은 거의 다 명령을 위조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제도와 법이 무너지고 중앙과 지방이 소란해졌으므로 모든 관리들과 만백성이 걱정하고 분노하며 통탄하고 놀라워한 지가 이제 3년이 되었다. 국가의 오륭(汚隆)에 관계되는 것이 역시 크니 이제부터 내각을 폐지하고 도로 의정부라고 고쳐 부를 것이다.

제도를 새로 정하는 것은 바로 옛 법을 그대로 따르면서 새 규정을 참고하는 것으로서 일체 백성들과 나라에 편리한 것이라면 참작하고 절충하여 되도록 꼭 실행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온갖 제도를 경황없이 고치는 일이 많으니 민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조령이 믿음을 받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이번의 제도는 내가 밤낮으로 근심하고 애쓰면서 타당하게 만든 것이니 모든 사람들은 다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고종실록 1896년 9월 24일)

고종은 아관(러시아 공사관)파천 중에 1894년 갑오개혁을 모두 뒤집은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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