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02월27일sat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사설ㆍ칼럼 > 김세곤칼럼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미국 공사 알렌의 고종 평가 (1)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대한제국, 전제군주제 즉 고종 황제 1인의 나라였다!!
등록날짜 [ 2021년01월20일 22시31분 ]

호레이스 알렌 (1858~1932)은 한말 외교사의 산 증인이다. 그는 1884년 갑신정변 때 절명 직전의 민영익을 살려내 고종의 어의(御醫)가 되었고, 1885년 2월 29일에 설립된 서양식 병원 제중원(濟衆院) 원장이 되었다. 
 

이후 알렌은 1887년 7월에 주미전권공사 박정양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주미한국공사관 고문으로 일했다. 1890년에 한국에 돌아온 알렌은 미국 공사관 서기관, 총영사, 대리 공사 등을 역임하고 1897년 7월에 전권공사가 되었고 1905년 3월 29일에 해임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1908년에 『조선견문기(Things Korean)』를 발간하였고, 『알렌의 일기』 등을 남겼다.    

1903년 9월,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5개월 전에 알렌은 미국 워싱턴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와 일본의 상황을 보고했다. 그는 러시아에 우호적이었던 반면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을 지지하여 언쟁도 있었다. 화난 루스벨트는 그를 파면시키려 했는데 국무장관이 겨우 말려 견책을 받았다. 

10월 14일에 알렌은 고향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서울의 캘훈이 보낸 편지 한 장을 받았다.

“레이몬드 크럼(양지아문 수석 측량기사 - 필자 주)이 이용익(내장원경 및 양지아문 총재- 필자 주)을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한다. 자기가 만약 공무를 띠고 미국 워싱톤에 파견된다면 국무성에 콜브란·보스트위크의 상환청구가 불법행위라는 것, 그리고 나를 공사직에서 해임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9월17일까지만 해도 고종은 이 계약에 동의하려 하지 않았고, 크럼이 대한제국 외부로부터 약간의 서류를 입수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이 일을 떠맡으려 하지 않았다.”

콜브란·보스트위크은 1898년 1월에 서울에 설립하였던 한성전기회사    (초기 자본금: 30만 원, 사장은 한성부 판윤 이채연)의 미국 파트너로서, 이들은 발전소와 전차 건설사업을 수행했다.

1899년 5월에 서대문에서 청량리에 이르는 약 8km의 단선궤도의 전차가 개통되었다.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였다. 고종황제가 청량리 바깥에 있는 명성황후의 능인 홍릉을 자주 다니면서 연을 타고 많은 신하를 동행하는 일로 인한 재정 낭비와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전차는 1900년에는 원효로 4가까지 확대되었다.

 전등 사업은 1898년에 시작해 1900년에 완성한 동대문 전등발전소를 들 수 있다. 이리하여 한성에 점화된 전등 총수는 5만5천 촉 등이었다. 1903년에는 전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마포에 제2발전소, 남대문에 변전소를 건설하였다.

그런데 콜브란·보스트위크은 한성전기회사로부터 전차 및 발전소 건설비 200만 원을 아직 못 받고 있었다. 이 비용은 한성부가 궁내부에 청구하였지만 궁내부는 지급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자 알렌은 1903년 9월 30일에 워싱톤의 주미한국공사 조민희에게  콜브란 · 보스트위크의 건설비 청구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고종에게 전문을 보낼 것을 요청했고, 조민희는 이에 동의했다. (알렌 지음 · 김원모 옮김, 알렌의 일기,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1, p 278-279)

한편 알렌은 1898년 9월부터 고용된 측량 주임기사 크럼이 한성전기회사의 자본금 30만 원의 7배나 되는 건설비 200만 원 청구 문제를 미국 국무성에 가서 해결하겠다 하고 또한 자기를 해고할 수 있다고 한 제안에 대하여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약간 화난 알렌은 캘훈이 보낸 편지 사본을 모건 주한 미국공사관 서기관, 미국 국무부에 보냈다.

알렌은  이 날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고종 황제가 허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나를 해치는 일에 동의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고종 황제를 포기한 지 오래다. 황제가 만기친람(萬機親覽 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하기 때문이다.  

I can scarcely believe that the Emperor - weak as he is-  would cosent a thing that would harm me, but I have long given him up as liable to do most anything.”

만기친람은 황제가 모든 일을 다 챙긴다는 부정적 의미가 더 강한 단어이다. 실제로 대한제국은 전제군주제 즉 황제 1인의 나라였다.

이 일기 뒤에 알렌은 다음 글을 덧붙였다. “나는 오히려 러시아와 일본 간의 사태에 관해 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흥분이 되는 전쟁 발발뉴스를 듣고 싶었다.
러일전쟁이 발발하면 전승을 거둔 어느 한쪽이 진정한 한국의 대군주 지위를 차지해서 허구적인 대한제국을 파멸시키고 한국 국민들에게 약간의 자유를 부여할 것이다.” (위 책, p 288-289)

알렌은 ‘허구적인 대한제국’ (Fiction of Korean Empire)’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다.

올려 0 내려 0
김세곤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김세곤칼럼>미국 공사 알렌의 고종 평가 (2)
<김세곤칼럼>외국인이 평가한 고종황제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미국 공사 알렌의 고종 평가 (2) (2021-01-23 19:23:17)
<김세곤칼럼>을사늑약 전야 (4) (2021-01-14 18:10:36)
광주시교육청, 2021년 퇴직교원...
김진만 ‘청산녹수’ 대표, 전...
전남도, 행안부형 마을기업 전...
광주 남구, 개청 26주년 기념 ...
순천시, 지역 관광 전문가들과 ...
광주시 쓴소리위원회 4차 회의 ...
나주 ‘금성산’ 시민공원조성 ...
현재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