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03월03일wed
 
티커뉴스
OFF
뉴스홈 > 사설ㆍ칼럼 > 김세곤칼럼
kakao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미국 공사 알렌의 고종 평가 (2)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당시 영국만 대한제국의 국외중립 승인
등록날짜 [ 2021년01월23일 19시23분 ]

1903년 6월 1일에 주한 미국 공사 알렌은 새로 개통된 시베리아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돌아본 뒤 영국, 프랑스를 경유하여 미국에 도착했다. 그는 9월30일에 워싱턴에서 시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면담했다.
 

이 면담은 극동에서의 러시아와 일본의 동향에 관한 것이었다. 알렌은 친러배일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하여 친일론자인 루스벨트 대통령과 격론이 벌어졌다. 
10월에 알렌은 고향 오하이오주 톨레도에 머물렀고, 10월 20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타고 11월 20일에 제물포에 도착했다.

한국에 돌아온 알렌은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견책을 받아 의기소침했다. 한편 1903년 말의 대한제국은 흉흉한 소문에 휩싸였다. 동학교도들이 일본인을 내쫒기 위해 다시 봉기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일본과 러시아는 전운(戰雲)이 감돌았다. 

이러자 영국 정부는 공사관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해병대가 승선한 순양함을 제물포에 파견했다. 이어서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도 경쟁적으로 군함을 제물포에 보냈고, 러시아도 1903년 12월 17일에 순양함 두 척을 제물포로 보냈다.

1904년 1월 2일에 고종은 고위 대신을 통하여 미국공사관에 파천을 요청했다. 알렌은 “전쟁이 터지면 황제가 공사관으로 오겠다는 요구를 거절했다.”고 미국 국무부에 보고했다.


프랑스공사관에 온돌방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고종은 프랑스 공사관에 피신할 것을 타진했지만 실행되지 못하였다.
이러자 고종은 1월 21일에 전시 국외중립(局外中立)을 선언하고 중국 지푸에 있던 밀사 이학균이 이를 각국 정부에 통고하였다.

국외중립을 선언의 주동 인물은 고종을 직접 움직인 이용익을 비롯하여 이학균 ·이인영·현상건, 프랑스인 교사 마르텔 및 벨기에인 고문 델코안뉴(M. Delcoigne) 등이었다.

국외중립 선언은 극비리에 추진되었다. 한반도의 전신 업무가 이미 일본의 실질적인 통제 아래 놓여 있었으며 왕궁 내부에까지 첩자가 많이 침투해 있는 상황에서 발표 직전까지의 보안 유지가 어렵고 외부의 방해 공작도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고종의 직접 명령을 받은 특사가 해외에 나가 기습적으로 각국에 타전하는 방법을 택하였던바, 이것이 1월 21일에 발표된 ‘지푸선언(芝罘 宣言)’이었다. 외부대신 이지용의 명의로 각국에 타전된 전시 국외중립 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러·일간에 발생하고 있는 미묘한 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그 두 국가와 한국과의 사전 협의가 어떻게 되든지를 불문하고 엄정중립을 지킬 확고한 결심을 하였음을 황제 폐하의 어명을 받들어 선언하는 바이다”

이 국외중립 선언은 일본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평소 중립 선언을 반대하고 한·일 밀약 체결에 진력하던 외부대신 이지용조차 자기 명의가 도용당하였을 뿐, 이 성명(聲明)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일본을 더욱 놀라게 했다.


심사숙고한 일본은 한국의 중립을 승인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무라 외상은 주한 하야시 공사와 긴밀한 토의를 거친 후에 ‘중립을 논할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러시아 측의 반응은 모호하였다. 러시아 정부는 의외로 방관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다. 이에 고종은 실망했으리라.  

그런데 미국은 아예 회답조차 안 했다. 주한미국공사 알렌이 본국 정부에  ‘한국의 전시 국외중립 선언’에 대한 회답을 자기 자신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한국 정부에 보낼 것인지 여부를 여러 차례 질의하였는데도 미 국무부는 러일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아무런 회답을 하지 않았다.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일본이 한국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싶다.”고 언급할 정도로 한국에 대해서는 일본에 의한 통제가 한국인의 악정(惡政)·청의 간섭·러시아의 관료적 독선보다 오히려 유리하다고 믿고 있었다.

오로지 영국 정부만이 1월 22일에 국외중립을 승인했다. 이러자 고종은 러일전쟁이 나면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생길 때 영국공사관으로 피신할 수 있는지를 영국 공사 조던에게 타진했다. 하지만 영국 공사는 고종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 참고문헌 > 

o 김용삼, 지금 천천히 고종을 읽는 이유, 백년동안, 2020, p 350-354

o 량치차오 · 최형욱 엮고 옮김,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글항아리, 2014, p137

o 박종인 지음, 매국노 고종, 와이즈맵, 2020, p 267-269

o 알렌 지음 · 김원모 옮김, 알렌의 일기,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1

올려 0 내려 0
김세곤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김세곤칼럼>미국 공사 알렌의 고종 평가 (3)
<김세곤칼럼>미국 공사 알렌의 고종 평가 (1)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김세곤칼럼>미국 공사 알렌의 고종 평가 (3) (2021-01-27 18:14:08)
<김세곤칼럼>미국 공사 알렌의 고종 평가 (1) (2021-01-20 22:31:18)
<김세곤칼럼>을사늑약 톺...
순천시, 광주⋅전남 최초 ...
광주 남구, ‘2022년도 신재생 ...
전남도, ‘우리동네 복지기동대...
영광군,「2021년도 스마트 복합...
광주 서구, ‘공동주택 우수관...
강정희 전남도의원, 여수산단 ...
현재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