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1월 21일에 추진한 대한제국의 국외중립(局外中立) 선언의 원조는 1900년에 대한제국 고문관 샌즈가 추진했던 ‘영세중립화론’이었다.
1897년 10월 12일에 대한제국이 탄생하였다. 고종은 자주 독립국임을 대내외에 선포하였다. 이 시기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간의 세력균형이 모처럼 이루어진 때여서 미국 공사 알렌의 지적처럼 외견상으론 유일하게 한국에 종주국이 없었던 시기였다. (1906년 6월 미국 해군대학 강연에서)
1899년 봄에 알렌이 휴가차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에 고종을 알현했다. 이때 고종은 ‘미국이 열강의 협조를 얻어 한국의 영토를 보전하고 중립화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해 줄 것’을 희망하면서 알렌이 직접 미국 정부와 교섭하도록 요청했다.
이에 알렌은 매킨리 대통령과 헤이 국무장관을 만나 고종의 친서를 전달했다. 그러나 매킨리 대통령은 ‘미국의 불간섭주의’를 이유로 고종의 요청을 거절했다.
한편 고종은 약관 26세의 정통 직업외교관인 주한미국공사 서기관 샌즈에게 중립화 정책 추진을 맡겼다. 1899년 10월 21일에 궁내부 고문관에 취임한 샌즈는 취임하자마자 한국이 러·일 양국의 대립에서 벗어나 스위스나 벨기에처럼 영세 중립국이 되려면 내정개혁과 교육개혁부터 해야 한다고 정부 고관을 설득하였다.
하지만 샌즈의 내정개혁은 처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우선 궁내부 관리들부터 부패했으며 특히 엄귀비는 샌즈의 내정개혁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샌즈는 1930년에 발간한 『조선비망록(Undiplomatic Memories)』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당초에 환상 속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희망과 관심을 잃은 채 경쟁 관계에 있는 두 강국인 러시아와 일본에 그들의 운명을 완전히 던져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내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대궐 안에는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일본과 러시아가 싸울 경우 조선이 중립을 지키는 것이었다. 중립화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고, 조선과 모든 나라 사이에 절대적인 평화조약을 보장하려면 일차적으로 내정개혁과 교육 개혁이 필요했다.
그러나 조선에는 보통 교육이 없었다. 과거시험은 현대적인 조건과는 맞지 않았고 공직 선발에는 개인적 친분과 뇌물수수가 폭넓게 자행되고 있었다. 문과에 합격하려면 문중 배경이 좋거나 엄청난 뇌물을 바쳐야 했다. 과거 합격자는 관직을 얻고자 쓴 경비를 국민들에 대한 과세의 구실로 거두어들였다. 자유재량적 과세는 국내적 무질서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다. (한편 과거제도는 1894년에 폐지되었다.)
지금도 관직 임용에 뇌물 수수 관행이 너무도 심하여 이를 직업으로 삼는 일본인 고리대금업자까지 등장했다. 그들은 어떤 지방 관직을 얻는데 필요한 뇌물 준비금을 후보자에게 빌려주고 한 달에 토지와 농산물 거래때의 통상적인 이자인 12%로 빌려주고 공직을 얻은 뒤 짧은 기간 내에 되받아 냈다.
뇌물은 황제에게까지 올라가는 데 조선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뇌물을 그렇게 비도덕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땅과 백성은 황제가 바라는 대로 처분할 수 있는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왕은 곧 국가이다. (이는 1899년 8월에 제정한 ‘대한국 국제(大韓國 國制)’에 명기되어 있다.)
모든 땅과 백성은 황제의 것이고, 모든 소득은 황제 것이며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처분한다. 관리들은 황제의 징세 청부업자일 뿐이다. 지방행정도 부패하였고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샌즈 지음·신복룡 역주, 조선비망록, 집문당, 2019, p 127-128)
1900년의 대한제국 시절에도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처럼 부패가 만연하였다. 1900년 12월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청나라 공사 서수붕은 고종의 매관매직을 비웃었다.
“서수붕이 처음 고종을 뵈었을 때 조선의 기수(氣數)가 왕성하고 풍속이 아름답다고 칭찬했다.
고종이 의아하게 여기고 그 연유를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본국은 벼슬을 팔아 먹은지가 십 년도 되지 않았는데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져 종묘사직이 거의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귀국 조선은 벼슬을 팔아먹은 지 30년이나 되었는데도 제위(帝位)가 아직 편안하니 기수가 왕성하지 않거나 풍속이 아름답지 않고서야 어찌 이럴 수 있겠습니까?’
고종은 크게 웃으며 부끄러운줄 모르자 서수붕이 나가면서 말했다. ‘슬프구나, 대한의 백성들이여’” (황현 지음 · 허경진 옮김, 『매천야록』, p 282 ) 그랬다. 대한제국은 탄생 13년 만인 1910년에 망했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