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2월 8일 밤, 일본 해군은 중국 여순항에 있는 러시아의 극동 함대를 기습공격했다. 2월 9일에는 제물포에 정박한 러시아 전함 두 척을 침몰시켰다. 2월 10일에 일본은 러시아에 정식으로 선전포고했다. 1894년 청일전쟁 때처럼 기습공격 후 선전포고한 것이다. 이는 1941년 진주만 기습 때도 마찬가지였다.
2월 9일에 일본군이 서울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도망치고 구중궁궐도 텅비었으며 조정 대신들도 숨기에 바빴다. 나라를 지켜야 할 지도층이 흔들렸으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나라가 전쟁터가 되었는데도 국외중립 선언 이상의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 너무 안일했다.
그랬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 종군기자인 AP 신문기자 영국의 매켄지가 탁지부대신이자 대장원경인 이용익을 만났다. 이용익은 고종의 최측근 실세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매켄지가 1920년에 발간한 ’한국의 독립운동’에 나온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한국이 망하지 않으려면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말을 들은 이용익은 한국은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독립을 보장받았으니 안전하다고 즉각 대답했다.
매켄지(M) : 열강으로부터 보장받지 못한 조약은 쓸모없는 것이라는 것을 귀하는 모르십니까? 지금 한국은 개혁을 단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용익 (이) : 다른 나라가 어찌하든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중립국이라는 사실과 우리의 중립이 존중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M : 만약 귀국이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그들이 당신을 지켜주겠습니까?
이 : 우리는 미국과 약속을 했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용익은 이러한 입장에서 자기의 결심을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그로부터 3일이 지나자 러시아 선박 와리아크호와 코리에스호는 제물포에서 일본 함대의 포격을 받고 격침되었으며 일본군대는 한국의 궁궐을 점령했다.” (매켄지 지음 · 신복룡 역주, 한국의 독립운동, p 58-59)
2월 23일에 일본은 한국을 병참기지화하기 위해 한일의정서를 강제로 체결했다. 이 날의 ‘고종실록’을 읽어보자.
“한일 의정서(韓日議定書)가 체결되었다. (중략) 올해 2월 6일에 이르러서 두 나라 사이의 국교가 단절되었다. 9일 일본 함대가 러시아함을 공격하여 인천에서 2척을 격파하자 러시아함은 퇴각하다가 인천항)에서 자폭 침몰하였다. 10일 일본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12일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가 서울을 떠나 귀국하였다. 이에 이르러 국면은 변하였고 본 조약이 체결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것인가. 4월 14일에 경운궁에 큰불이 났다. 함녕전, 중화전, 즉조당, 석어당과 각 전각이 모두 불탔다. 이러자 고종은 미국공사관과 인접한 수옥헌에 임시 거처를 정했다.
4월에 알렌은 본국에 “고종 황제의 미국에 대한 기대가 당혹스럽다면서 고종이 1882년 한미수호조약 1조의 ‘거중조항‘을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1905년 1월 19일에 알렌은 “황제가 파천을 간청한다는 요청을 대한제국 관료로부터 접수했다.”고 미 국무부에 보고했다. 알렌은 “이런 요구는 다시 듣고 싶지 않다면서 황제가 공사관 담을 넘어오더라도 퇴거를 요구하겠다”고 보고서에 첨언했다.
1905년 들어서 알렌은 한국의 몰락을 예감하고 있었다. 고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알렌은 1903년 10월 14일에 적은 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고종을 포기한 것 같았다.
“러일전쟁이 발발하면 전승을 거둔 어느 한쪽이 ‘허구적인 대한제국(Fiction of Korean Empire)’을 파멸시키고 한국 국민들에게 약간의 자유를 부여할 것이다.” (1903년 10월 14일의 알렌 일기 중에서)
1905년에 알렌은 이렇게 적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이제 그날 이후 차갑고 음울한 침묵의 아침이 되어 버렸다. 백성들은 스스로를 통치할 수 없다. 이들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주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황제는 이 나라의 커다란 해충이고 저주이다. 그는 로마를 불태우며 놀아난 네로황제와 다를 바 없이 무희들과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군주이다.
한국인에게는 전쟁이 더 나은 조건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탐욕스럽고 비인간적인 관료들을 감시하고 더 많은 자유를 선사할 나라에 흡수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1905년 3월에 알렌(1858~1932)이 체임되어 귀국하고 모건이 신임 공사가 되었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알렌의 귀국을 적었다.
“알렌은 우리나라에 10여 년 동안 머물렀는데 귀국에 임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한국 국민이 가련합니다. 내가 일찍이 구만리를 돌아 다녀보고 위아래로 4천년을 역사를 보았지만, 한국 황제와 같은 인간은 또한 처음 보는 인간이었습니다.”
< 참고문헌 >
o 강준만 지음, 한국 근대사 산책 4 o 박종인 지음, 매국노 고종 o 매켄지 지음 · 신복룡 역주, 한국의 독립운동 o 황현 지음 · 임형택외 옮김, 역주 매천야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