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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을사늑약 전야 (4)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고종의 밀사 헐버트
등록날짜 [ 2021년01월14일 18시10분 ]

1905년 10월 2일에 앨리스 일행이 부산에서 일본으로 떠난 후 고종은 민영환을 비롯한 몇몇 대신들과 비공식 모임을 열었다. 이 모임에선 1882년 5월 22일에 체결된 한미수호통상조약 제1관의 ‘거중조정’ 조항 즉 “만약 조약국의 어느 한쪽이 제3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을 경우 다른 한 국가는 원만한 타결을 가져오도록 주선을 다함으로써 우의를 표시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집중적으로 논의되었다.
 

아울러 대한제국이 일본의 압박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협력을 얻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황제의 친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황제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여 도와달라는 간절한 친서를 썼다. 밀사는 선교사 헐버트를 선임했다. 헐버트는 고종의 친서가 도중에 일본인들에게 탈취당할 것을 우려하여 주한미국공사관의 파우치 편으로 워싱턴에 보냈다.

이어서 고종은 11월 12일에 모건 미국 공사에게 루스벨트 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전달해주도록 부탁했으나 모건은 거절했다. 한편 고종의 밀명을 받은 헐버트가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시카고를 거쳐 워싱턴에 도착한 날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다음 날인 11월18일이었다. 

루스벨트는 헐버트에게 외교 사항이므로 국무부에 가라면서 접견을 거부하였다. 국무장관 루트는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하루 면담을 미루다가, 서울의 모건 미국 공사에게 미국공사관 철수를 훈령하고 난 다음 날인 11월25일에 헐버트를 만났다. 그는 헐버트에게 매우 냉랭했다.

상원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헐버트가 한국의 사태를 설명하자, 그들은 “당신은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기대하는가? 미국이 대한제국 문제로 일본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11월 26일에 헐버트는 고종 황제로부터 전문을 받았다. “짐은 총검의 위협과 강요 아래 최근에 한·일 양국 간에 체결된 이른바 보호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함. 짐은 이 조약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결코 동의하지 아니할 것임. 이 뜻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기 바람.   대한제국 황제 ”

이 전보는 일본이 이미 장악한 국내 전신망을 이용하지 않고 사람을 청나라에 보내 보낸 것이었다.

며칠 후 헐버트는 고종의 전문을 가지고 국무부장관 루트를 만나 설득했다. 하지만 루트는 ‘미국으로선 할 일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기야  서울의 미국공사관은 이미 11월 28일에 철수한 뒤였다. 
 

미국 부영사 스트레이트는 미국공사관 철수를 “난파선에서 뛰어내리는 쥐 떼 들처럼 뛰쳐 나갔다.”고 AP 기자 출신답게 적었다.
한편 고종은 헐버트를 파견한 직후에 또 다시 민영환의 친동생인 주프랑스 공사 민영찬을 미국에 급파했다. 민영찬은 12월 11일에 루트를 만나 고종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민영찬이 루트를 만난 5일 후인 12월 16일에 주미한국 공사관 김윤정은 외부대신 임시서리 이완용으로부터 주미한국공사관의 문서 및 재산을 일본공사관으로 넘기라는 훈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루트에게 통보함으로써 대미 밀사의 모든 교섭은 끝나고 말았다.


루트는 12월 19일에야 민영찬에게 회답했는데 ‘주한미국공사관이 일본공사관에 이양되었다’고 통보했다. 김윤정은 공사관을 일본공사관에 넘겨주고 귀국했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헐버트는 그의 저서 『대한제국 멸망사(1906년)』에서 을사늑약의 풍경을 이렇게 적었다. 

“심지어 전 국민들이 일본의 강압적인 태도에 치를 떨고, 민영환 같은 조선의 몇몇 관리들은 자살로써 망국의 설움을 맞으려 하는 동안에 조선 주차 미국공사 모건은 서울에서 한민족의 멸망을 초래한 일본인들과 함께 축배를 들고 있었다.”
 

“후세의 역사가들이 오늘날의 일을 되돌아보면 미국 정부가 한 민족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얼마나 오만하고 사려 없는 태도를 보였던 가를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민영환은 한국의 독립을 찬탈하는 강제 행위를 저지시키려고 갖은 애를 다 쓰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그는 역사의 증언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조국을 위해 죽는 일보다 더 기꺼운 일은 없다.’라는 말이 진리라는 것은 한국이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이다.”  

< 참고문헌 >

o 헐버트 지음 · 신복룡 역주, 대한제국 멸망사, 집문당, 2019, p 272-279

o 강준만 지음, 한국 근대사 산책 4, 인물과 사상사, 2007, p 152,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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