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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을사늑약 전야 (7)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고종, 이토에게 애걸하다.
등록날짜 [ 2021년02월06일 16시14분 ]

이토는 외교권 박탈 또한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한 것이니 불만을 갖지 말고 수용하라고 고종을 협박했다. 치명적 말실수를 한 고종은 뭐라고 반박하지도 못한 채 잠자코 듣기만 했다. 다 듣고 난 고종은 갑자기 사정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주한일본 공사관」 기록을 읽어보자 

고종 : 짐이 가져온 사명의 취지는 짐이 양해한다.  대외관계 위임에 관한 일은 결코 그것을 거부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바라는 것은, 귀국은 그 내용의 실질을 취하고, 우리에게는 그 형식의 명분을 보존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토 : 형식이란 무슨 뜻인가요?   고종 : 서신 왕래의 일과 같은 것이다.  이토 : 무릇 외교에는 형식과 내용의 구별이 없습니다. 이제 이 책안  (策案)은 확고하여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 사본을 휴대하였습니다. 먼저 이것을 폐하께 바칩니다. 그리고 그 체결에 관한 필요한 조건은 우리 대표자로 하여금 공식 절차를 밟아서 귀국 당국에 교섭시키겠습니다. 이들의 일은 저의 권능이 아니며 오로지 외교관의 권능에 속합니다. 이미 하야시 공사가 필요한 훈령을 받아 가지고 왔습니다.

조약문 사본은 지난 10월 27일 일본 각료회의에서 결정한 것이었다. 이를 읽어보자. 일본국 정부 및 한국 정부는 두 제국을 결합하는 이해 공통의 주의를  공고케 하는 것을 원하여 이 목적으로 아래의 조관을 약정한다. 

제1조 일본국 정부는 도쿄 소재 외무성으로 하여금 이후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완전히 지행, 감리 지휘하며 일본국의 외교 대표자와 영사는 외국에 있어서의 한국의 신민과 이익을 보호한다.

제2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타국과의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하는 임무를 맡는다. 한국정부는 이후 일본국 정부의 중개에 의하지 않고서 국제적 성질을 갖는 어떠한 조약이나 약속을 할 수 없다.

제3조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로 하여금 한국 황제폐하의 궐하에 한 명의 통감(統監)을 둔다. 통감은 경성에 주재하고 친히 한국 황제폐하에게 내알(內謁)할 권리를 갖는다.


일본국 정부는 또 한국의 각 개항장 및 기타 일본국 정부가 필요로 인정하는 곳에 이사관(理事官)을 둘 권리를 갖는다.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아래 종래 한국 주재 일본 영사에 속한 일체의 직권을 집행하고 아울러 본 협약의 조관(條款)을 완전히 실행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일체의 사무를 처리할 수 있다.

제4조 일본국과 한국과의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과 약속은 본 협약의 조관에 저촉하지 않는 한 모두 그 효력을 계속한다. 조약 초안에는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 뿐만 아니라 경성에 통감을 둔다는 내용까지 있었다. 이는 단순한 외교권 박탈이 아닌 통치권 이양이었다.

고종 황제는 이 초안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읽으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참으로 착잡했을 것이다. 비참함이 한꺼번에 밀려왔을 것이다. 어쩌다가 42년간 다스린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고종황제는 1852년 음력 7월 25일에 태어났다. 반면에 메이지 천황은 1852년 양력 9월 22일에 태어났다. 두 사람은 동갑이었다. 왕위에 오른 것은 고종이 먼저였다. 고종은 12살인 1863년 12월 13일에 즉위했다. 메이지는 그보다 4년 뒤인 1867년 1월 9일에 천황이 되었다.

고종이 즉위한 1863년 당시 조선은 일본보다 그렇게 허약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입헌군주제를 하여 부강해졌고, 고종은 무능과 부패, 그리고 외세의존으로 나라는 망가졌다. 조선은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를 끌어들인 이후 실질적으로 청나라의 감독을 받았다.


이후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 난을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제압하려 하지 않고 전봉준 같은 동학 지도자들을 만나 한 번이라도 설득했더라면, 1898년 말에 군대를 동원하여 독립협회를 해산시키지 않고 국민과 함께 외세를 막아내고 부국강병을 추진했더라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는 치욕은 막았으리라. 역사는 냉혹하다. 전제군주의 길은 몰락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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