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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을사늑약 전야 (6)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고종, 치명적 말 실수를 하다.
등록날짜 [ 2021년02월05일 11시00분 ]

이토는 “한국은 어떻게 해서 오늘에 생존할 수 있었는지, 또한 한국의 독립은 누구 덕택이었는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때 고종이 갑자기 끼어들면서 “그 점에 대하여는 짐도 잘 알고 있다. 1885년의 천진조약(天津條約), 1895년 마관조약(시모노세키 조약)과 함께 우리나라의 독립을 명확히 한 것은 완전히 일본의 힘에 의한 것으로서 실로 또 경의 다대한 노력에 힘입은 바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종은 ‘조선이 독립국가가 된 것은 완전히 일본의 힘에 의한 것’이라고 한 발언은 치명적 실수였다. 이는 1904년 8월의 제1차 한일협약(고문  정치)의 문제점을 거론하면서 일본이 대한제국의 주권을 침해한다고 했던 종전의 발언을 완전히 뒤집는 발언이었다.

‘아차! 실수였다.’고 생각한 고종은 1896년 2월에 있었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던 아관파천이 부득이한 조처였음을 장황하게 변명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스스로 모순에 빠지고 만 고종의 말실수를 외교협상의 달인 이토가 놓칠 리 없었다. 이토는 갑자기 고종의 말을 끊고 재빠르게 반격했다.

“지난 1885년에 천진에 가서 청나라와 한국의 지위를 결정하는데 이홍장은 한국을 형식적 속국으로부터 명실상부한 속국으로 만들려 하였습니다. 실제로 그 중거는 당시 원세개가 군대를 이끌고 경성에 와 있었다는 한 가지 일에 비추어 보아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거절하여 귀국의 독립을 견지해서 이를 관철했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충주에서 피신 중인 민왕후가 청나라를 끌어들였다. 이후 대원군은 청나라에 유폐되고 한국에는 청나라 군대가 상주하였다. 그런데 1884년에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청나라 원세개는 일본군을 제압하여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이후 청나라는 한국을 실질적으로 속국 취급하였는데 이토가 1895년에 천진조약을 맺으면서 이홍장의 주장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토의 발언은 이어진다.

“또한 1894년에 이르러 동학당의 소란을 이용하여 청국이 군사를 귀국에 파견하자 청일전쟁이 일어났는데, 청나라의 패전으로 시모노세키 조약이 성립되었습니다. 우리는 한국 백년의 미래를 궁리하여 요동의 땅을  청나라로부터 할양시켰지만 러시아가 삼국간섭을 하여 우리로 하여금 요동의 점유를 철수시켰습니다.   

이후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를 연장하여 여순에 도달하였고, 군항을 여순에 축조하여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호응해서 제해권을 장악하며, 육상에서도 역시 철도를 연결하는 등 그 하는 바가 분명 한반도를 바다와 육지로 포위하여 병탄에 필요한 준비를 완벽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일본은 인명을 걸고 거액의 재물을 내던지는 것도 돌보지 않고 무기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제 전승의 결과 귀국의 영토를 보전했음은 사실이 보이는 바이요, 천하의 공론이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간 귀국에서 이따금 우리의 조치에 대해 다소의 고통과 불만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바이며, 우리나라의 고충을 살펴 참는 것은 조금도 과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토는 마치 일본이 조선의 영토보전을 위해 러시아와 싸운 것처럼 말하고 있다. 식민지 침탈 야욕은 아예 숨기고 괘변을 늘어 놓았다.  이제 이토는 면담의 본론을 꺼냈다.  

“동양평화가 이제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평화를 항구히 유지하고, 또 동아시아 장래의 사단을 두절하기 위해서는 두 제국 간의 결합을 한층 공고히 하는 것이 극히 긴요하다고 생각하신 우리 황제께서는 특히 저를 파견하셔서 그 요건을 폐하께 직접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요건은 귀국의 외교를 귀국 정부의 위임을 받아 우리 정부 스스로 대신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정은 폐하의 정부가 행하여 종전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는 첫째 동양의 화란을 근절하고, 둘째 귀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견실히 유지하고, 셋째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려는 선의적인 대의에 기초했습니다. 그러므로 폐하는 세계의 추세를 살피고 국가 인민의 이해를 돌아보셔서 즉시 동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외교권을 박탈하겠다는 이토의 본색이 드러났다. 외교권 박탈 또한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한 것이니 불만을 가지지 말고 수용하라는 것이다. 치명적 말실수를 한 고종은 뭐라고 반박하지도 못한 채 잠자코 듣기만 했다. 다 듣고 난 고종은 갑자기 사정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 참고문헌 >

o 신명호 지음, 고종과 메이지의 시대, 역사의 아침, 2014, p 29-49
o 국사편찬위원회, 신편 한국사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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