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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칼럼>을사늑약 전야 (10)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11월 16일 이토, 손탁호텔에서 대신들을 설득하다.
등록날짜 [ 2021년02월23일 09시27분 ]

11월 16일 오후 4시에 이토 히로부미는 정부 대신과 원로대신들을 자신의 숙소인 손탁호텔로 불렀다. 어제 고종이 내각과 상의하라고 했으므로 각료들을 직접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손탁호텔은 독일 출신 여성 손탁(孫澤, 1854∼1925)이 운영한 호텔이다. 그녀는 1885년 10월 주한 러시아 공사 웨베르(Waeber)를 따라 내한하여 25년간(1885∼1909) 한국에서 생활했다.

손탁은 웨베르 공사의 추천으로 궁내부(宮內府)에서 외국인 접대업무를 담당하면서 고종 및 민왕후와 친하였고, 고종은 1895년에 정동에 있는 한옥 한 채(현 이화여자고등학교)를 하사했다.  

손탁호텔은 1894년에 발족한 사교친목단체 정동구락부(貞洞俱樂部)가 활동한 장소로 유명하다. 정동구락부 회원은 국내인은 민영환·윤치호·이상재·이완용 등이었고, 외국인은 미국 공사 실(Sill)과 프랑스영사 플랑시를 비롯해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등이었다.
 

이들은 1895년 10월에 민왕후가 시해되자 반일 활동을 주도하여 1896년 2월에 고종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시켰다. 
이후 손탁호텔은 1902년에 2층으로 신축하여 호텔과 식당, 커피숍을 운영했다. 지금은 없어지고 이화여자고등학교에 표석만 남아있다.

 


한편 이토의 초대를 받아 참가한 각료는 참정대신(총리) 한규설, 내부대신 이지용, 법부대신 이하영,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군부대신 이근택, 탁지부 대신 민영기 등 7명이며, 참정대신을 지낸 심상훈이 원로대신 자격으로 참석했다. 외부대신 박제순은 일본공사 하야시와 조약 문제를 협의하고 있어 불참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토는 자신의 사명이 외교권 문제임을 밝히고, 어제 고종으로부터 각료들과 협의하여 결정토록 하겠다는 약속이 있었음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신들에게 고종의 명령을 직접 받은 적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한규설은 “대사의 사명은 황제에게 들었으나 외교의 형식이나마 남겨주기 바란다.”고 간청했다.

이토는 “한국은 본래 청국의 속국이었던 것을 일본이 청일전쟁 후에 독립시켜주었다. 이번에 러시아와 전쟁을 한 것도 한국의 독립과 영토를  보전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면서 한국은 임금과 신하간에 음모가 많은 데다 나라를 지킬 만한 힘이 없어 항상 동양평화의 화근이 되고 있다.”고 윽박질렀다.


이어서 이토는 대한제국이 보호조약을 거부한다고 해서 일본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
토의 말이 끝나자 법부 대신 이하영이 말했다.

“한국이 오늘 이만큼 독립국이 된 것은 모두 일본의 원조와 보호 덕택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용익을 프랑스와 러시아로 보내 내통하게 하면서 일본의 의심을 살 행동을 했으니 오늘과 같은 결과가 초래 된 것도 우리의 책임이다.” 

이하영은 고종의 최측근이자 친러파 이용익이 1905년 6월에 비밀리에 출국하여 프랑스와 러시아에 원조를 요청한 사실을 이토 앞에서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참으로 황당하다.


이어서 학부대신 이완용이 이하영의 발언을 거들고 나왔다.

“일본은 한국 문제로 두 번이나 전쟁을 치러 이제는 러시아까지 격파했으니 한국에 대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일본은 타협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니 우리 정부도 일본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발언이 끝나자 이토는 이완용을 주시하였다. 이하영이나 이완용이나 초대 주미한국 공사관(미국 워싱턴 DC 소재)에서 근무한 친미파였다. 그런데 이들은 이제 기회주의자가 되어 친일파로 변신한 것이다.

이완용의 발언이 끝나자 이토는 “이번 조약안은 절대로 내용을 변경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자구나 사소한 표현 수정은 쌍방이 서로 협의할 여지는 있다”라고 말했다.

이러자 참정 한규설이 외교의 형식만이라도 남겨 달라고 또 다시 간청했으나, 이토는 동양평화론을 들먹이며 ’절대 불가‘라고 못 박았다.    

손탁호텔에서의 면담에서 보호조약 반대 의사를 표명한 대신은 아무도 없었다. 면담은 내일(11월 17일) 오전 11시에 일본 공사관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7시 반에 끝났다. 

( 참고문헌 )

o 윤덕한 지음, 이완용 평전, 도서출판 길, 2012, p 208-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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