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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을사늑약 톺아보기 (1)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 11월 17일, 을사늑약의 날
등록날짜 [ 2021년02월24일 14시45분 ]

11월 17일은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잃은 치욕의 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11월 18일 01시에 외교권을 강제로 박탈당했다.

11월 17일의 상황을 시간대별로 살펴보자. 이 날은 세 번의 회의를 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오전 11시 일본 공사 주재 회의, 오후 3시 고종황제 주재 회의 그리고 오후 8시 이토 히로부미 주재 회의였다.

11월 17일 오전 11시에 참정대신 한규설 등 대신 8명은 이토가 16일 손탁호텔 모임에서 말한 대로 일본 공사관에 모였다. 그런데 일본 측에서는 이토는 나타나지 않고 일본 공사 하야시가 좌장을 하였다.

하야시는 대신들에게 외부대신 박제순에게 전달한 조약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정부 대신들은 어느 누구도 선뜻 의견을 내놓지 않고 침묵만 흘렀다.

비로소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말문을 열었다. “이 문제는 비록 이토 대사가 폐하께 아뢰었고 공사가 외부에다 공문을 보냈지만 우리들은 아직 외부에서 의정부에 제의한 것을 접수하지 못하였으니 지금 당장 토의하여 의결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중추원에서도 여론을 널리 수렴해야만 비로소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자 하야시 공사는 언성을 높이며 반박했다.

“귀국(貴國)은 전제국가인데 어찌하여 입헌정치 흉내를 내어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려 합니까? 대황제가 응당 한마디 말로써 직접 결정하는 것인데 의견 수렴 운운으로  모면하려고 하느냐?”

회의장은 다시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이러자 하야시는 공사관에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궁내부대신 이재극에게 전화를 걸어 고종을 알현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점심을 마친 후 하야시는 오후 3시쯤에 대신들을 이끌고 대궐로 향했다. 수옥헌에서 하야시는 고종의 알현을 요청했지만 고종은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거절하였다. 조금 있다가 고종은 대신들과 어전회의를 열었다. 하야시는 옆에 붙은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전회의에서 대신들은 하야시 공사와의 회담 내용을 고종에게 보고하였다. 고종은 몹시 괴로워하면서 대책을 여러 번 물었다. 대신들은 조약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고종은 일단 결정을 미루자고 했다.

이때 이완용이 절박하게 아뢰었다.

“이 안건의 가부가 눈앞에 닥쳤는데도 ‘안 된다.’는 한마디 말로 밀어붙이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습니까? 우리 여덟 대신들이 막아내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지금 하야시 공사가 폐하를 만날 것을 청하는데, 폐하의 마음이 오직 한 가지로 흔들리지 않는다면 천만다행이겠지만, 만일 너그러운 도량으로 할 수 없이 허락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부분에 대하여 미리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완용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자는 뜻이었지만, 고종과 대신들 모두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자 이완용이 또 아뢰었다. “신이 미리 대책을 강구하자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는 수 없이 허락하게 된다면 조약의 내용 중에 첨삭하거나 개정할만한 중대한 사항이 있을 것이니, 이에 대하여 상의하자는 것입니다.”

이완영의 이 말은 조약 체결 거절은 불가능하니 현실적인 대안을 찾자는 것이었다. 여기에 현실주의자의 함정이 드러난다. 조약 체결을 할복자살이라도 하면서 거절해야지 조약안을 놓고 첨삭 · 수정을 하자니 이게 매국의 징조이다.  

이완용의 말에 고종도 “이토 대사도 말하기를 이번 조약에 대해서 만일 문구를 첨삭하거나 고치려고 하면 응당 협상하는 길이 있겠지만, 완전히 거절하려고 하면 이웃 나라 간의 좋은 관계를 보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를 미루어 보면 조약의 문구 조정은 가능할 것 같다. 학부대신의 말이 타당하다.”고 동의하였다.

이후 회의는 조약안의 첨삭, 수정과 관련하여 진행되었다. 고종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이 조약 초고는 어디 있으며 어느 것을 고치겠는가?”하였다. 이때 이하영이 품속에서 이토가 준 조약문을 찾아내어 고종에게 바쳤다.

이완용이 또 나서서 의견을 말하였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이 조약 제3조 통감의 아래에 외교라는 두 글자를 명백히 명시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훗날 우환거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어 권중현이 아뢰기를, “신이 외부에서 얻어 본 일본 천황의 친서 부본에는 우리 황실의 안녕과 존엄에 조금도 손상을 주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번 조약 조문에는 여기에 대하여 언급이 없습니다. 이것도 응당 따로 한 조목을 만들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하였다.

고종은 “그건 과연 옳다. 농상공부 대신의 말이 참으로 좋다.”고 대만족을 표시하였다. 회의가 거의 끝날 무렵에 대신들은 모두 똑같이 아뢰었다. “이상 아뢴 것은 실로 미리 대책을 강구하는 준비에 불과할 뿐입니다. 신들이 이토 대사를 만나서는 한 마디로 체결을 거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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