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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고종 즉위 40주년 (6)

김세곤 (역사칼럼니스트)1902년 의정부 참정(參政) 김성근, 찬정(贊政) 윤정구, 장례원 경(掌禮院卿) 김학수 진연청 당상(進宴廳 堂上)임명
등록날짜 [ 2021년06월18일 14시01분 ]

1902년 4월 13일에 의정부 참정(參政) 김성근, 찬정(贊政) 윤정구, 장례원 경(掌禮院卿) 김학수를 진연청 당상(進宴廳 堂上)으로 삼았다. 이어서 고종은 진연청 당상 김성근, 윤정구, 김학수와  전선사 제조(典膳司提調) 이지용을 소견(召見)하였다.

고종이 말했다. "외진연(外進宴) 처소는 중화전(中和殿)으로 하고 내진연(內進宴) 처소는 함녕전(咸寧殿)으로 하며 의식 절차 중 어쩔 수 없이 올리는 주본(奏本) 외에 그 밖의 여러 가지 일은 황태자에게 말하여 시행하라.

이번 진연(進宴)은 나라의 형편과 백성들의 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간략하게 하여 나의 마음을 편안케 하는 것이 좋겠다.“(고종실록 1902년 4월 13일 2번째, 3번째 기사) 
 

4월 24일에 고종은 즉위 40돌 경축식을 음력 9월 17일(양력 10월18일)에 경운궁에서 거행하라고 조령을 내렸다.
내진연은 왕족들끼리 축하하는 잔치이고, 외진연은 신하들이 축하하는 잔치이다. 경축식은 내외 귀빈이 모두 축하하는 자리이다.

고종항제 출처: Public domain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고종 등극 40주년 경축연이 적혀 있다. “9월 17일을 고종 등극 40년 경축일로 정했다. 이에 청국, 일본,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에 주재하고 있는 우리 공사들에게 전보를 띄워 해당 정부에 조회하여 축하 사절을 요청하도록 하였다.”

5월 4일에 고종은 기로소(耆老所)에 가서 영수각(靈壽閣)을 봉심(奉審)하고 기로소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어첩(御帖)을 직접 썼다. 황태자와 영왕(英王) 이은도 따라 올라갔다. 예식이 끝나자 상의사 제조(尙衣司 提調) 이지용이 궤장(几杖)을 바치자 황제가 직접 받고나서 대신들과 기로소의 당상(堂上)을 인견(引見)하고 말했다.

"오늘의 이 일은 우리 황실에서 이미 시행한 전례가 있어서 조상들의 일을 잇는 의미에서 마지못해 시행하기는 했지만 속으로 개운치 못한 점이 있다."영돈녕원사 심순택이 아뢰었다.


"이런 훌륭한 일은 우리 왕조뿐만 아니라 만고(萬古)에 보기 드문 경사입니다.“

고종이 말했다.  "음식을 내릴 것이니 기로소의 당상이 받고 내가 대궐로 돌아갈 때에는 나의 행차를 따르지 마라."이어서 직접 지은 시(御製詩)를 내려보냈다.

선대의 법 공손히 따라서 의절(儀節)을 빛냈으니  恭遵先憲飾儀文
가상하다 황태자의 여러 차례 청함이여          嘉乃東宮請屢勤

이 날에 임금과 신하들 함께 모여 즐김은        此日君臣同樂意
한 대청에서 친밀하게 풍운을 통함이라          一堂密邇會風雲
(고종실록 1902년 5월 4일 양력 1번째 기사) 5월 5일에 고종은 중화전(中和殿)에 나아가 축하를 받고 대사령(大赦令)을 반포하였다. 이번이 세 번째 대사령이다.

" (전략) 우리 태조(太祖)는 하늘의 명을 받고 나라를 다스렸는데 존엄한 처지를 굽혀 기사(耆社)에 참여하여 임금은 60세에, 신하들은 70세에 기로소(耆老所)로 등급을 엄하게 하였으며 어첩(御帖)을 남기고 연회를 열어준 사실이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숙종(肅宗)께서 60세에서 1년 앞에 선대의 훌륭한 일을 이은 것은 좋은 일을 앞당기고 물리지는 않는다는 뜻을 취한 것이었다. 영조(英祖)가 51세에 미리 기로소에 들어간 것도 덕을 앞세우고 나이를 뒤에 놓는 옛 사람들의 원칙을 본받은 것으로써 엄연히 한 시대의 문헌(文獻)을 이룩했고 후대들이 법도가 되기에 진실로 충분하다.

돌이켜 보건대 짐은 변변치 못한 자질로 외람되게 장구한 위업을 이어받고 40여 년간 오로지 잘 다스려지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백성들에게 태평성세로 만들지 못했으니 마음속에서 근심을 놓지 못하였다.

더러 나에게 나라의 운수에 대하여 경계하기도 하였는데 백 살도 절반 고개를 넘어 이미 늘그막 나이가 되었으므로 태자가 하루에 세 번씩 문안하니 한편으로는 기쁘면서 한편으로는 두렵다.

종친인 신하들이 먼저 상소를 올리고 상신(相臣)들이 뒤에 연석(筵席)에서 청한 것은 물론 우리 황실의 예법이 그런 것이지만 스스로 돌이켜 보건대 내가 무슨 덕을 닦아서 선대에 견주겠는가?

업무에 부지런한 것에 겨를이 없어야 하는 것이지 어찌 태평성대에 견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황태자가 규례에 근거하여 강력하게 청하는 형편에서 효성을 끝내 굳이 물리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기로소에 들어가는 어첩을 쓰는 것으로 말하면 50세 이후에 더러 하는 것으로써 원래 일정한 규례가 없으며 떳떳한 법도는 세 선조 임금의 옛 법도는 그대로 따르는 것이니 이번이 네 번째의 경사가 된다.

이것은 선대의 일을 이어나가는 것으로써 반드시 지나치게 겸손할 필요가 없겠기에 기로소에 직접 가겠다고 마지못해 허락하였다. 올해 음력 3월 27일(양력 5월 4일) 새벽에 하늘과 땅, 종묘 사직에 삼가 고하고 먼저 진전(眞殿)을 전알(展謁)한 다음 영수각을 참배하였다.


궤(櫃)에서 선대의 어첩을 꺼내고 선대의 사적을 본받아 직접 어첩을 썼으며 왼쪽의 궤(几)와 오른쪽의 지팡이는 상의사에서 무릎을 꿇고 바쳤다. 천 년에 한 번 있는 임금과 신하의 경사스런 기회이므로 남극성이 빛을 뿌리고 500년 세월을 이어져 오는 일이므로 서루(西樓)가 더욱 찬란하다.

다 같이 경사를 축하하는 이런 때에 응당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아! 황태자가 따라와 시좌(侍座)하여 장수(長壽)를 축하하는 기쁨을 표시하고 기로들이 나와 대청에 함께 참가함으로써 나이 든 분들을 숭상하는 뜻을 부여하였는데 천하에 포고하니 모두 알게 하라." (고종실록 1902년 5월 5일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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